TO-Y -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의 정석

이 작품은 상당히 오래전에 연재를 했지만 그런 것 이상으로 작가인 카미죠 아츠시가 보여준 충격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그림 자체 매력보다 짙게 그려진 음영 표현과 선명한 캐릭터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일본 만화학과 선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이렇게 흑과 백의 조화를 기준으로 확실한 선을 그을 때는 누가 보아도 잘 그린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쉽다고 하는군요. 그것이 일본 흑백만화가 가진 기본 성향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강한 대비로 인해 작품 감상을 흐트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스타일리쉬한 작품에 대한 감상 이전에 작품 자체가 재미없으면 볼 맛이 나지 않는 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 10권으로 완결되어있고 나름대로 멋을 부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재 당시에는 굉장한 인기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말입니다. 그 시대 한일을 비롯하여 대만 동인들에게도 따라할만한 멋을 보여준 작가이면서 작품이었다고 하겠습니다. - 1996
소년만화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개성이라는 점을 볼 때 이 작가 카미죠는 시대를 카고 났었다는 말을 하게됩니다. 더불어 시대의 변화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그는 화풍에서 알아볼 수 있듯이 에구치 히사시(江口寿史)와 오오토모 가츠히로(大友克洋)에게셔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습니다.
데뷔 시기에 나왔던 단편들을 보면 만화작가로서 대중적인 패턴에 맞추어서 작업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지만 실상 작품 자체는 무척 재미가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풍부하지 못한 개그센스를 억지로 짜내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겠지요. 더불어 인물이나 개성적인 표현, 정지된 화상과 같은 구성은 잘 만든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보면 정지된 듯한 연출로서 액션구도나 표현에 있어서는 약한 면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경우, 당시 80년대 만화작가들이 생각하는 기본기에는 많이 부족한 면이 있는 만화작가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그가 이 작품을 통해서 당시 동인을 비롯한 여러가지 작품 세계관에 변화를 주었던 사건, '배경 빼먹고 그리기'를 시도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고 생략해가는 형태로서 단순하게 표현하는 과정을 밟았습니다. 스크린 톤 사용보다 흑백 음영구조로 표현되는 대비구성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고 이런 부분은 이후 새로운 신세대 만화가, 동인들이 사용하고픈 스타일로 정착하게 됩니다.
이 책자 뒷표지에 나온 것처럼 기본 작가들이 사용하는 수채나 컬러잉크 쪽이 아니라 컬러 마커를 기반으로 한 표현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개성점으로 거듭 강조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이 만화 자체는 별로 재미있지 않습니다. 이미 한 시대가 지난 록밴드 이야기나 아이돌 가수 드라마는 순정만화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장르에서 다 건드렸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런 스토리를 가지고 어느정도 연재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한 스토리를 가지고도 제법 긴 10권짜리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작화, 작풍의 큰 변화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센스가 있어보이는, 기존 작가들이 표현하는 기본만화작법과는 다른 맛으로 표현한 재미가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은 당시 사제 제도를 통한 작가스튜디오와도 구분이 되는 동인작가 출신, 젊은 피를 가진 작가들이 가진 개성적인 표현이자 연출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기존 작가, 속칭 2~2.5세대 만화작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만화출판계의 정석을 많이 바꾸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이런 작품구성은 말 그대로 그런 센스를 가진 사람들이 특징이 있게 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일본에서도 이런 타입을 선호하는 팬층이 존재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가는 선, 복잡하지 않게 캐릭터만 부각시켜서 칸에 넣어두는 방법들은 이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에 와서 보면 일상적인 표현 중 하나이지만 이때만 해도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이 어느정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성으로서 스토리 중간 중간에 어떻게 해서든 부드러운 터치의 개그를 넣는 것은 너무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가 차가워 보인다는 말이 많기도 했습니다 - 더불어 감정표현에 약한 일러스트 작가라는 비난도 있었지요)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 작화에서 벗어나 배경의 생략, 애니메이션 필름컷에서 보는 듯한 컷 구성을 통해서 시퀀스들을 연결해 나가는 표현들이 자주 사용되고 배경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그 부분에 집중적으로 페이지를 나누어 배경만으로 캐릭터의 심정을 표현하는 등, 당시 기준으로 스타일리쉬한 표현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대부분 패셥잡지나 사진집,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서 성장하게 된 비디오 세대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말도 하기에 속칭 'X세대 만화'의 선두로서 거론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특징으로 본다면 순정만화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군들에서 흰 종이는 당연히 칠을 해서 메꾸어야 하는 부분으로서 존재를 했지만 카미죠는 흰 여백 자체를 센스있게 작화의 일부분으로서 남겨놓아 이후 세대의 작가들, 타지마 쇼우(田島昭宇)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대표적인 3~4세대 작가로서 일본만화의 한 개성을 표현했지만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니고 이런 스타일이 너무 고정되어서 개성아닌 개성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역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는 만화가 아사다 히로유키(浅田弘幸)도 동세대 작가겸 친구로서 상당히 개성적인 발전을 하게되는데 기존 만화작법과 세련된 표현연출에 대한 개성적인 연구는 다양성이 넘치는 일본만화계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카미죠는 초기에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그림구성에 있어서 수정액, 화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펜작업이 실패하면 전부 다 다시 그리는 방법을 선택하고 잡지 연재당시와 달리 원고가 만화책자로 만들어질 때 다시 그리는 구성이 많았던 점들 때문에 편집진과도 원만한 관계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추가로 다시 그리는 원고는 별도로 원고료가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가적인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어서 이래저래 아티스트 적인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작가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2005
이때를 생각해보면 역시 록큰롤, 밴드 붐과 더불어 청춘 드라마의 한 장르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예능계, 방송인, 가수, 밴드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만화들은 상당히 많았고 그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왔던 동인녀 출신인 일본 취미인에게 물어보면 60년대말, 70년대는 거의 그런 만화가 대부분이었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작품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메이저 3대 소녀만화잡지를 비롯하여 소년지, 동인책자들에서도 록밴드를 결성하고 사랑과 열정을 동시에 분출하는 개성은 사랑받는 소재였고 BL관련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소재로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뻔한 장르로서 전락을 해버렸다는 말도 하게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화책에서 표현할 수 있는 청춘성공스토리 안에서 공식과 같은 패턴이 성행하게 되면 독자층들은 어느정도 식상해져서 금세 유행이 지나버릴 수도 있다고 하겠지요. 이 작품 '토이'는 밴드 붐 초, 중기가 아니라 거의 말기 수준, 이제는 그런 만화를 그리는 것에 작가나 독자들도 어느정도 질려가는 상황에서 나왔던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음악장르를 소재로 쓴 만화로서 특징이 있는 개성이라고 하면 소리 표현을 무음처리 했다는 것입니다. 본래 대부분 디리리링~ 쿵쾅 쿵쾅, 아아아아~ 같은 여러가지 의성 의태어들이 표현되면서 나왔던 기존 음악만화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그냥 그림, 사진과 같이 존재하는 구성만 있을 뿐 소리 부분에 대한 교편은 전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그림만 있고 글씨가 안보이는 구성이지요. 보는 독자들이 알아서 상상을 하라는 여지를 남겨준 것으로 이 것은 나름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동인계에서는 가끔 그런 형태가 있었다고 하지만 메이저 잡지에서 연재되는 만화에서 그런 표현을 쓰고 넘어갔다는 것은 나름 큰 일이었다고 하겠지요.
관련 잡지나 밴드라이브 등을 직접 경험하고 다닌 것을 잘 살려서 표현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구성을 가지고서 살아남은 작품, 작가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카미죠가 가지고 있던 작화력, 표현기법은 확실히 여타 구성돠는 다른 면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80년대 중후반까지 당당하게 "디리리링~ 두다다다당~ 아아아아아아~"하는 의성, 의태어 식자 표현이 존재했던 음악장르 만화에서 이런 표현이 사라지고 그냥 작화력으로 표현하는 구성을 가진 만화들이 늘어나 지금은 많은 작품들이 이런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음악, 소리를 표현한다는 것이 배경음으로서 특징있게 변화되는 과정을 겪은 작품도 있지만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 같이) 소리를 중심으로 한 그림표현에 있어서 음악을 그림으로서 전달한다는 것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시도는 그 때를 풍미할 수 있었던 정석으로서 가치를 발휘했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