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함 야마토
일본 / 宇宙戦艦ヤマト
TV Series
SF 드라마
1974년 10월 6일 - 1975년 3월 30일
전 26화
감독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 아시다 토요오(芦田豊雄) 등
제작사 오피스 아카데미 → 토호쿠 신샤(東北新社)
감상매체 TV VHS LD DVD
스토리-감동 20 : 16
스토리-웃음 15 : 3
스토리-특색 10 : 9
작화-캐릭터 15 : 15
작화-미술 10 : 7
음악 10 : 8
연출 10 : 8
Extra 10 : 8
74 Points =
아니 볼 것이 없어서 이런 옛날 1974년에 나온 구닥다리를 보나?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반성이 없어서 만든 이따위를 보아야하는가? 이런 작품 감상을 쓴 이는 구닥다리에 사상이 불건전한 인물이다… 라는 말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기쁘겠네요. 일본만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여러 가지 시점 전환을 다양하게 가지시는 것이 더욱 자기성숙에 도움이 된다고 보이니까요. 실제로 일본에서도 이미 야마토는 지난 이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명작 만화’일 뿐이지 그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품은 아니라고 보니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세대에서 보는 야마토는 추억을 돌아보는 작품이지 결코 대작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에 말레시아에 놀러갔을 때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을 더 위해주는 그곳 사람들 정에 기뻤지만 그만큼 일본에 대한 전쟁 때문에 발생한 잠여의식(潛余意識)이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일본에서 사귄 게테라는 말레시아 친구가 일본 만화영화를 보면서 좋아했던 기억도 선명하게 떠오르더군요. 역사 의식 속에서 남아진 기억으로 만화영화라는 순수예술을 논하기란 그리 달갑지 않은 방법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사람들 중에서 야마토를 보면서 “좋다!” 라고 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것이 꼭 지탄 받아야하는 일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야마토는 재미로서 볼 훌륭한 SF애니메이션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MBC에서 1981년 <우주전함 V호>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했습니다. 더불어 이 방송이 나왔을 때 아무리 V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야마토’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비판론이 국내에서 일었던 것도 추억을 하게됩니다. 때문에 지금에 와서도 이 작품이야기를 하게되면 여러 가지 당시 있었던 논쟁을 떠올리게 됩니다. - 1996
사실 이 만화영화를 볼 때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막 컬러TV방송과 더불어 컬러TV보급이 이루어질 때입니다. 한국 방송사정상 원활한 컬러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초기에는 방송 프로그램 중 30% 정도만 컬러였습니다. 때문에 <마징가Z>같은 작품을 흑백으로 본 사람과 컬러로 본 사람이 혼동되는 시기였다고 하겠습니다. 나름 흑백으로만 보다가 컬러화면으로 본 마징가의 위용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지요. ‘코난’이나 ‘날아라 태극호 : 타임포칸’ 그리고 이 작품은 굉장히 선명한 컬러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때문에 나름 색다른 스타일로 보여주는 오락작품으로서 즐거웠을 뿐이라고 하겠지요. 나중에 여러 수입서적 판매점들에 갔을 때 보였던 야마토 관련 자료집 등을 보면서 참 색다른 재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후에 여러 가지 영화, 그리고 그 제작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더 흥미를 느꼈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 영문표기가 무척 많아서 영문을 사용하는 취미인들과 이야기할 때 혼동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골수 팬들에게는 역시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표기한 ‘Cosmoship’이 기준이 되겠지만요. 현재 영문표기는 Space Battleship이지만 초기 영문표기는 Space Cruiser였습니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방송 타이틀이 ‘Star Blazers’였기 때문에 이래저래 많은 이들에게 혼동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Cruiser 표기가 순양함을 말하는 것으로 판명되면서 결국 다시 스페이스 배틀쉽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마츠모토 팬들에게는 코스모쉽이라고 칭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본래 기획 자체도 <우주전함 코스모 : 宇宙戦艦コスモ>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세상사를 느끼게 합니다.
지금이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당시 프로듀서 니시자키 요시노부(西崎義展)가 무시프로덕션(虫プロダクション)의 야마모토 에이이치(山本暎一)와 함께 1973년 이 기획을 내놓았을 때는 나름 애니메이션 작품 세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식 SF소설이 영향력이 강했던 시대에 이어서 미소냉전기를 맞이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여러 가지 불안감이 대두되던 시절에 미지의 적에 의한 방사능 공포는 확실히 먹혀들어갈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 작품도 요상하게 방송 당시에는 그렇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같은 방송 시간대에 나왔던 작품이 불후의 명작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アルプスの少女ハイジ>때문이라고 하겠지요. 다만 이 작품은 흥미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재방송, 그리고 그 SF설정에 빠져든 팬층과 애니메이션정보를 취급한 잡지 등을 통해서 새로운 분위기를 알게 된 이들이 이 작품에 주목을 하게되고 이 팬들의 지지덕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형태가 바로 이 작품 때문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에 수많은 이들이 추억으로 열심히 도전을 했겠습니까?
초기는 비주류였지만 그 설정과 연출이 가진 느낌이 이후에 인정을 받아서 커다란 붐으로 발전한 스타일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기존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보여주는 스타일과 달리 굉장히 비장한 감각을 보여주었던 스토리 전개가 화제였다고 하겠지요. 특히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우주로 떠나가는 그들을 태운 녀석이 과거 전쟁의 잔해로 기억되는 야마토였다는 점에서 더욱 멋진 매력을 부여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웃겼던 것은 초기 방송판과 후기 재방송판, 그리고 그것을 편집한 극장용 작품에서 보여주는 느낌이 많이 달랐는데 초기 TV방송은 당시 스폰서가 요구하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서 기획 초기 단계에 나왔던 3~4쿨 기획(초기에는 52화 제작 예정)이 전부 먹혀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빨리 막을 내렸고, 이후 재방송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극장용 작품과 함께 2부작, 3부작 구성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혼돈 상황에서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보니 나중에 가서는 조금씩 설정이 바뀌는 현상도 보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 1970년대에 일어난 애니메이션 화제성을 가지고 붐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작품세계는 이때부터라고 말을 하게됩니다.이후 전통적인 애들작품이 아니라 청소년, 성인들이 즐겨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인식된 마츠모토는 큰 명성을 얻게 되고 <은하철도999>, <우주해적 캡틴 하록>, <천년여왕>이라는 작품 라인으로 엄청난 인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게 됩니다. 이런 붐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여타 제작사들도 기존에 유행한 슈퍼로봇 스타일과 다른 리얼한 연출이 더해진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고 <기동전사 검담>이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의미로서 기억하게 되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TV시리즈로서 제작된 ‘야마토 2’와 <야마토여 영원라라! : 宇宙戦艦ヤマトII ヤマトよ永遠なれ!>까지를 나름 베스트이면서 메인 골격으로 보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설마 이것이 나중에 3, 사랑의 전사들, 영원히, 완결편, 부활편 등으로 이어지고 나중에 ‘0기획’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좀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확실히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더불어 이 우주선 디자인들을 한 스튜디오 누에(スタジオぬえ)의 마츠자키 켄이치(松崎健一)가 만들어낸 그 재미는 참으로 신선한 구성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1999년이라는 세기말 불안감, 그것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절망적인 상황,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우주전함과 그것을 타고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모습 등은 확실히 여타 작품과 달리 인간드라마가 더 진하게 그려진 작품이 아니 었나 합니다. 다만 여전히 느끼는 의문스러운 것은 이스칸달, 그리고 데슬러 총통이 가진 인간성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고로 이 작품에 마츠모토 레이지가 참가한 것은 1974년으로 기획이 시작된 1973년에는 이런저런 쇼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릭터나 제작상황 구성을 보면 마츠모토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마츠모토 골수 팬들에게는 마츠모토가 있었기 때문에 야마토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기 1973년 기획과는 다른 형태로서 완성된 것이 마츠모토에 의해서인데 이때 처음 악의 권화 가라미스(ガミラス)라는 명칭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작품 시리즈에서 주목하던 것이 이시쿠로 노보루(石黒 昇)쪽이었습니다.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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