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를 하다가 살짝 유럽 이야기가 나왔는데 돈이 없는 상태로 유럽을 돌아다닌다면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한다는 의미로서 자전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 의미로서 유럽 5~6개국을 거치면서 자전거 여행을 했는데 그때는 말도 안 통하고 스마트폰 같은 것이 있지도 않아서 길 잃고 헤매는 생고생이 주였던 여행이었습니다. 사실상, 여행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좀 그렇지요.
어릴 때는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만 돈 주고 개고생을 했던 경험상 나름 새로운 인식을 키울 수 있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믿었던 친구(외국어를 잘하는 줄 알고)와 함께 무작정 내달린 것인데 말이지요. 참고로 이 친구는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출발은 인천에서 했고, 화물선에 동반해서 자전거 2대와 캠핑장비(? 침낭과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간이 천막 같은 것). 그리고 지갑과 지도, 간이 회화용 사전 한 개 정도 들고 갔습니다. 참고로 저는 카메라를 들고 갔고 당시 필름을 현지 조달하겠다는 야망을 품었지만 현지에서 잘못해 슬라이드 필름을 구입해서 찍는 바람에 귀국한 후에 엄청 훌쩍였습니다. 36컷 필름 60통, 2160장은 나올 수 있었지만 실수한 것 빼고 약 1600여 장이었는데 이 중에서 70% 정도가 슬라이드 필름이어서 환등기를 켜서 작동시켜야 추억을 돌아볼 수 있는 바보짓을 했지요.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 스위스를 살짝 걸쳐서 프랑스에 가고 이후 스페인을 조금 돌다가 영국으로 가서 귀국 비행기를 타는 코스였습니다.
제일 고생한 것은 불어로 표기된 남부지역에서 비바람은 부는데 허허벌판만 보이고 어딘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굶어가면서 하루를 지샌 것인데 결국 몸살감기 걸린 상태로 자전거를 끌고 열심히 내달린 것이지요.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관광이고 뭐고 없이 그냥 뻗어만 있었더랍니다. 심지어 찍은 사진들도 다들 핀이 나가있었고 몸이 비실거려서 훌쩍였습니다. 여행 전과 후 몸무게가 13kg이나 차이 났으니 확실히 고생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견문을 넓힌다는 여행의 목적과는 상당히 많이 벗어난 경험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첫 번 유럽여행은 거시기한 추억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어디를 가도 '한국'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아직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동양애가 돌아다니면 "일본에서 왔냐?" 라는 소리만 들었던 추억이 진하게 남았다고 하겠지요. 의외로 일본어가 통한다는 것 때문에 국제 인식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탈리아는 이후 5번 정도 돌아다녔고 로마는 11번 정도 들렸지만 정작 콜로세움 안쪽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때뿐이라는 묘한 추억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쪽은 툭하면 공사, 보수공사, 개수공사를 하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겉모습은 볼 수 있어도 안쪽까지 가보기란 참 어렵지요. 제일 뭐 했던 것은 모 영화 촬영 일정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뭐, 사실 크게 달라질 것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요.
사실 유럽이라는 장소는 관광보다 일로 돌아다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라 한 군데, 또는 도시 한 두 곳만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체를 돌아보기란 또 어렵습니다. 한국인치고는 조금 이른 시기에 나가돌아다닌 것도 있다 보니 한국인 행세 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으로 하고 다니는 것이 더 편한 경우도 많았고요. 그런 시간을 돌아보면 묘하게 다른 감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감상을 돌아보면 그나마 건강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탈리아에 대한 인상이 좋은데, 아무래도 날이 맑았고 유럽에 와서 굴러다니는다는 흥분 때문에 멘탈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진들을 돌아봐도 확실히 체력이 남아있던 때와 고갈되었을 때의 상태가 많이 다른 것을 느끼니까요.
물론 이후 여러 가지 기준을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것과 달리 신세대의 도시문화와 달리 유럽의 고전적인 도시는 상당히 정체되어있는 미(美)를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추억으로서 돌아볼 수 있는 감상적인 개성이 있지만 최고급 시설을 통해 여행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 여행객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곳이 맞습니다. 어지간한 숙박소에서 바퀴벌레와 함께 자는 것이 기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남자라는 생물학적 특성상 그냥 버티고 넘어간다고 해도 여성분들이라면 권하기 어려운 구성이었다고 하겠지요.
관광 강국이다 보니 가질 수 있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지만 확실히 근대적인 시설을 가진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양하게 소비되는 금전적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투어 여행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대가 변해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가볼 수 있는 유럽이라는 지역은 확실히 그때와는 많이 다른 변화감을 느낍니다. 알게 모르게 와이파이도 되고요. 물론 한국 서울보다는 많이 느립니다만 필요한 몇 가지 정도는 확인해볼 수 있는 재미를 알려줍니다. 몇 번 돌아보면 '수제가죽문화'를 통한 기성품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탈리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것은 장인이 직접 손질해서 만든 가죽 가방 등이었는데 몇 개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18년 정도 사용하면서 그 매력을 계속 생각해보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디지털 장비에 특화된 부분이 없다 보니 결국 방구석에서 먼지를 먹고 있지만 루이~라던가 샤~, 에르~ 뭐라는 브랜드와 상관없이 노 브랜드로서의 명품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곳이 유럽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 가서는 환전이 제대로 하기 어려워서 (아직 유로화로 통일되기 전이다 보니 프랑화와 달러화 환전이 호텔과 은행을 제외하고는 어려웠지요) 아이템 구입이 어려웠고, 파운드 환전이 쉬웠던 영국에서 우산과 비옷 등을 구입했던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대부분 제품 브랜드에 대한 인식보다 필요한 물품으로서 구입을 한 것이지만 8~10년 정도 사용하는데 꾸준히 매력적인 개성을 보여준 것 때문에 좋은 것이 가지는 품성이라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여전히 대중적인 인식에서는 그냥 유명한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뿐이라고 하겠지만요.
좋은 것은 틀림없이 사용자의 마음을 안도시켜주지만 결국 그 안에서 자신이 만나보고 경험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재인식하는 과정을 밟게 해준 것은 유럽의 고전적인 인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그 전통의 모습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굉장한 것이지요.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유명지역은 그 고전적인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축법이나 구성이 무척 살벌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함부로 외관을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공사비 용이 엄청난 것을 보면서 이런 전통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희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있는 몇몇 취미인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다 보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는 보이는 것이 지금은 안 보이거나 그때는 못 본 것이 지금은 보이는 경우라고 하겠지요. 결국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라는 것을 해외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부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한다는 개성으로 가지고 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때 미처 보지 못 했던 많은 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말이지요.
어떤 곳을 가더라고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다른 것을 경험하고 그냥 맹~때리고 오는 것과 달리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난 어디 어디 가봤거든"
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경험치라는 것이 인생의 윤택함을 만들어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