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무아의 경지에 빠져 걷는다는 일.
이 무슨 맹맹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철학의 길을 제가 걷는다고 해서 철학의 도에 심취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의 유혹에 빠질 수 없을 정도로 묘한 예쁨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쪽은 말 그대로 계절, 느낌이 좋을 때 걸을 때, 또는 혼자가 아니라, 연인, 웬수와 걸을 때 전혀 다른 마음의 울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는 봄철에 예쁜 꽃잎이 휘날리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알려져서 그렇지만 꾸준히 많은 사람들이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만나보고 싶어서 조금 늦은 시간대를 고르기는 했는데 아직 저편으로 넘어가는 노을 때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밝은 편입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잡고 이동을 하지요.
확실히 봄과 여름철에 왔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날 수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혼자잖아요.
혼자 사색을 할 수 있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좋은 자극이 되지만 저에게는 역시 철학적인 부분보다 시각적인 자극이 더 강하다 보니 에헤헤하면서 두리번 거리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철학의 길을 늦은 시각에 걸어본 기억이 없다 보니 은은하게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을 보면서 묘한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사실 이 주변은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별것이 있는 점포가 몇개 있습니다.
전에 여기서 죽공예품을 산 기억이 있는데 묘하게 정감이 가서 다시 돌아보니,
이렇게 앙증맞은 귀여움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아기자기한 귀여움은 세상을 행복의 계단으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낮이 길 때는 은은하게 재미있는 컬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늦은 가을 시간에도 그 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환한 꽃잎 날리던 봄철과 비해보면 확실히 좀 아슬아슬한, 감상적인 부분이 어딘가에서 샘솟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낙엽, 단풍이 떨어지는 모습이라는 것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뭔가 어필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게 하지요.
요런 저런 추억의 가게들을 좀 돌아보면서 가끔 보이는 저편 넘어의 노을과 구름들이 예쁩니다.
이런 날씨와 구름은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마음껏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 주변도 봄철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구석 하드디스크를 뒤지면 봄철 사진이 나올 것 같은데 그것이랑 비교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뭐 마음 속에 담긴 그 장면들을 혼자만 떠올리면서 에헤헤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요.
이 작은 천에 골목골목을 잇는 작은 다리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주는 운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다르면서도 비슷한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이런 구성을 가진 작은 모습들이 소중하게 다가올 때가 있거든요.
아마도 그런 것이 인간이 사색을 하게 되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길도 걷는 방향에 따라서 좀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화려한 봄철과 다르게 은근히 앙상한 가지가 보이는 것 때문에 주변이 트여 보이는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어영부영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에서 [우루시의 쓰네사부로] 철학의 길 점포를 만나게 됩니다.
일본을 오가면서 선물용품으로 괜찮은 것 중 하나가 칠기 제품인데 저는 주로 젓가락 제품들을 선호합니다.
우선 가볍고 쓰기 편하고 예쁜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칠기 공예는 근대화 산업에 밀려서 많이 퇴색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일본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대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적으로도 괜찮은 제품군이 많아서 좋아합니다.
일본 교토에 오게 되면 아무래도 자기나 도기, 칠기 관련 제품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는데 이쪽 제품은 은근히 등급이 좋고 대중적인 제품군과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아합니다.
물론 그랜드 명품점과는 다른 형태로 대중성에 더 염두를 두었기 때문에 주문제품이 아닌 이상 가격대가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가족,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할 용도로 고를 수 있는 나무 칠기 젓가락은 언제나 일본을 오가면서 구입하는 물품 중 하나인데 이곳에서 예쁜 애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에헤헤 했습니다.
'우루시'는 우리말로 옻칠을 말하고 일본의 인간 국보를 비롯하여 장인들이 제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느낌이 좀 더 있습니다.
점장이 말하길 점포마다 조금씩 제품군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나중에 도쿄에 갈 때 한번 들러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도쿄 긴자점은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주문품이나 지역 선호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제품 종류가 달라지는데 이쪽은 뭐 나중에 자주 가는 아사쿠사 주변을 돌아보면서 추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젓가락도 예쁜 것을 손에 넣었지만 예쁜 술잔도 있어서 몇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그윽하게 저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이 예쁜 색깔과 마을 정서를 담고 싶었는데 문제는 타이밍과 거리에 불이 들어오는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삼각대를 가지고 셔터스피드를 최대한 맞추면 어찌 되겠지만 정말 어렴풋이 들어오는 길 가로등 불빛이 약해서 분위기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조금 더 해가 지고, 옅은 푸른빛이 깔릴 때, 가로등 불빛이 예쁘게 올라오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지만 그게 참 어려운 타이밍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일본, 특히 교토와 같은 지역은 은근히 도로 불빛이 약해요.
그래서 빛을 예쁘게 담으려면 그만큼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데 저는 노력도 열정도 없는 취미 여행객이다 보니 그냥 대충 담아둡니다.
물론 문명의 힘을 빌려 포토숍으로 어찌어찌하면 좀 괴기는 하겠지만 저는 사실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냥 이렇게 올려둡니다.
나중에 리터칭이나 필터링을 하게 되면 좀 더 에쁜 뭔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늦은 시각 철학의 길 가을밤을 걸을 때는 거의 이 정도 밝기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밤기운이 들어서면서 아까보다는 조금 더 밝은 가로등 빛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하지요.
최대한 진동을 잡고 셔터스피드를 떨어트려서 잡으면 이 정도까지는 찍을 수 있지만 숨도 멈추고, 셔터찬스를 잘 잡아야 하니 좀 그렇기도 합니다.
저속 연속촬영을 해볼까 했지만 그것도 좀 그렇고요.
그래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분위기만 담아둔다는 생각으로 셔터만 눌러둡니다.
이미지 리터칭이라는 것이 정말 하는 분들이나 하는 것이지 저처럼 그냥 기록 이미지만 남기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귀찮은 일이거든요.
결국 노이즈 감수하고 그냥 막 찍어두기도 합니다.
근래에는 이런저런 리터칭, 필터들이 있어서 많이 고쳐볼 수 있으니까 언제나 마음이 내키면 건드릴 지도 모르겠지만 인적 없는, 조용한 골목길이라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사실 정말 이런 시간에 이런 어둑어둑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저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6~70m정도 떨어진 곳에 한두 명 있는 것 같은데 말소리를 들어보니 프랑스인 같았습니다.
게다가 철학의 길 주변은 일반 가정 주택 외에도 신사가 몇 개 있어서 은근히 묘한 분위기를 느끼게도 해줍니다.
은근히 무서운 감에 빠지기 쉬운 분이나 영적인 접근에 이해가 있으신 분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저야 단풍 구경이라는 절대적인 룰루랄라 상태이다 보니 주변 색과 빛.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나긋한 분위기를 담는데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사실, 요 때는 정말 색깔과 분위기가 예뻤습니다.
저편으로 넘어가는 노을 색이 거의 마지막으로 색을 뿌리고 있었고 조금씩 밝아오는 길 가로등 색깔이 예쁘게 갈라지고 있었거든요.
쳇, 할 수 없이 필터 써봤습니다.
노이즈는 그냥 넘어가고 그 감상적인 순간을 기억하는데 있어서 이런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하겠습니다.
정말 이럴 때는 삼각대 가져다 놓고 차분하게 시간 들여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로 아기자기하고 예쁜 도네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주말 전이고, 평일날 저녁, 가을 분위기 물씬 배어 나오는 하늘과 거리를 보면서 걷는 기분은 언제나 맛난 추억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예, 앞에서 말했듯이 약 30분이면 충분히 걸을 거리를 저는 3시간 정도 돌아다녔습니다.
뭐, 이런저런 점포도 들리고, 사진도 찍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새로운 점포도 발견하고 했지만 무엇보다 예쁜 노을이 함께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 자전거로 오갈 때 봤던 안내판이 있어서 다시 바라봅니다.
그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동서남북만 바라보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는데 지금은 길을 알기 때문에 묘하게 추억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저쪽에 있는 버스정거장 안내문을 보니 곧 도착하는 버스가 32번과 203번입니다.
그래서 바로 온 203번을 타고 그 유명한 교토 '기온'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예, 기온이지요.
봄과 여름의 낮과 밤을 본 기온이지만 가을 저녁때 기온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습니다.
뭐, 교토 여행의 기본 중의 기본인 기온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요.
정적이 펼쳐지는 이쪽과 달리, 그 동네는 확실히 왁자지껄한 열기와 차분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