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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카도카와 그리고 미디어 팩토리

제법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모르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 끄적여 둡니다.

아주 일반적인 것은 아닌것처럼 들려도 사실 카도카와의 전성기와 번영, 그리고 투쟁을 통해서 8~90년대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부분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일본 카도카와쇼텐(角川書店)이 이름을 바꾼 주식회사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株式会社角川グループホールディングス)는 1954년에 세워진 그룹입니다.

그리고 미디어 팩토리(メディアファクトリー : MEDIA FACTORY,INC)는 1986년 12월 1일에 만들어진 곳입니다.


둘 다 취미로운 이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친숙한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을 비롯하여 다양한 극영화, 책자분야에 있어서 가희 일세를 확고하게 구분해 만든 카도카와 그룹의 이면속에서 큰 형제간 골육분쟁이 있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근래 세대 분들이나 딴 나라에 계신 분들에게는 좀 먼~~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로서도 카도카와 관련이나 미디어 팩토리 양쪽과 다 일을 조금씩 해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는데 그 무시무시한 형제간의 불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 것이 한 수 바뀐 형태로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요.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일본 3대 출판업계(쇼가쿠칸 / 코단샤 / 카도카와)로서 자리를 잡은 카도카와는 카도카와 겐요시(角川源義)에 의해서 창업된 곳입니다.

초기에는 그렇게 큰 구성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착실한 형태와 선진적으로 시작한 다른 업체들보다 튼실한 구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한 업적으로는 또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식농사였습니다. 국문학자이면서 사업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카도카와 겐요시는 본래 조금 있던 집안 자식이었는데 아버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감동을 받았던 국문학쪽을 진학을 하면서 이쪽 시장을 내다보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본래 경영쪽을 바랐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문학 쪽 이상으로 상재(商才)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서점출판 산업을 동반한 형태로 자신의 취미적인 부분을 잘 연결해서 이 카도카와를 설립하게 되었지요. 카도카와는 출판 서점업계에 있어서 상당히 후발주자였는데 기획력이 좋았던 관계상 아주 빠른 성장을 기록하게 됩니다. 본래 있었던 시장에 진출한 신규, 극것도 인텔리 출신 카도카와가 좋은 의미로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요.


1950년대에 이미 일대를 이루어낸 카도카와 겐요시는 이후 카도카와 천황(角川天皇)이라는 사내명칭을 얻을 정도로 독선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 호색가로 알려졌고 화를 내면 상당히 X영역에 도달하는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애인 등을 비롯한 자기생활에 너무 자유로웠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장남 카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는 상당히 반발적인 기준을 가지고 아버지가 이룬 회사 카도카와 쇼텐을 이어받게 됩니다.

초대 창립자는 1976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고 58세의 나이에 급절을 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카고카와 겐요시의 큰딸  헨미 쥰(辺見じゅん) 큰 아들 카도카와 하루키(角川春樹), 둘째 카도카와 츠구히코(角川歴彦)는 분야별로 이 카도카와 쇼텐을 운영하게 됩니다.


우선 카도카와 하루키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절조없는 아버지를 미워했던, 반발했던 그였지만 의외로 아버지의 유전적인 면을 가장 많이 닮은 그는 상당히 모험정신이 강한 사업확대를 시작합니다. 영화산업으로 발을 뻗은 것이지요. 영화 감독, 프로듀서로서 활약을 했던 것은 그런 부분에서 또 다른 재미를 보여준 점이라고 하겠지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2문학부 사학과를 합격했지만 아버지가 국학원대학(國學院大學)에서 이사를 맡고 있었던 관계와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서 그쪽으로 진학한 그는 대학 전에는 검도부를, 대학에서는 복싱에 열중하면서 자기 해방을 꿈꾸었고 조금 요상한 사건도 벌입니다.

3학년생 일 때 시부야 하치(ハチ) 강아지 동상 광장에서 "나의 혼은 스사노오노 미코토 : 俺の魂はスサノオノミコト"라고 주장을 합니다.

일종의 자기 정신극복방법이었다고 하겠지만 "나는 절대다. 나는 완전이다 나는 신이다 : 私は絶対だ。私は完全だ。私は神なのだ" 라는 발언을 하면서 절대적인 자기관을 맞추려고 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광언(狂言)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상당히 전형적인 있는 집 자손으로 독재적인 자기주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비해 동생에게는 탤런트 성이 없고, 너무 얌전하다는 식으로 공식적으로 비난을 하는 형편이었는데 이런 부분은 실제 업무상으로도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동생 카도카와 츠구히코 이야기입니다.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제1 정경부(政経学部)를 졸업한 그는 (아버지의 의견에 못이겨 학교를 바꾼 형과 달리) 졸업과 함께 1966년 당시 카도카와 쇼텐(角川書店)에 입사를 합니다. 영화산업 등 엔터테인먼트 성향에 독자적인 진행방향을 가지고 나갔던 형과 달리 동생 츠구히코는 1975년에 전무, 1992년에 부사장으로 자리를 올립니다.

그는 출판분야에 있어서 상당히 선진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엇고 TV정보지인 '더 텔레비젼 : ザテレビジョン'이나 '도쿄워커 : 東京ウォーカー'같은 생활감각이 넘치는 책자들을 내놓으면서 강력한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재능은 굉장히 친화적이면서 출판부분에 있어서 높은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만, 영화관련이나 여타 미디어 잡지 부분에 있어서 큰 소재를 만들어낸 카도카와 하루키의 그림자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극적인 충돌을 일으킵니다.

1992년 9월, 카도카와 하루키에 의해서 강제로 해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즉 부사장으로 승격한 그 해에 바로 경영방침에 대한 대립이라는 것 때문에 화를 낸 하루키는 바로 동생 츠구히코를 짤라내 버린 것입니다. 이 부분이 있기 이전에 둘 사이에 여러가지 경영적인 의견이나 라이프 방식 자체가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극단적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큰 아들은 오히려 가장 아버지와 닮은 부분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조용한 둘째 아들은 큰 아들에게 쏠린 관심 덕분에 차분하게 자기 인생을 짜맞추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사라진 이후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가던 둘은 결국 한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조금 문제였습니다.

물론 분야별 영역이 달랐기 때문에 초중기에는 잘 진행될 수 있었지만 90년대에 들어서 극영화 부분에서 상당한 성공과 후퇴를 반복한 하루키의 야망이 표출화되면서 결국 두 인물, 아닌 형제는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이때 게임분야 자회사인 카도카와 미디어 오피스 사장을 겸임하고 있었던 츠구히코는 경영선에서 밀려난 순간 바로 미디어 오피스 직원 대부분들과 함께 퇴사를 합니다. 츠구히코는 친분이 있던 다른 회사 주부의 친구(主婦の友)사에 도움을 받아 '미디어 웍스 : メディアワークス'를 창업합니다.


그렇습니다. 둘은 같은 핏줄을 가진 형제가 나누어 대립하는 회사가 된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반면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한다면 기이한 인연인데 다음 해인 1993년, 카도카와 하루키는 이사회에 의해서 사장직을 해임당합니다.


카도카와 하루키는 상당히 다양한 엔터테이너 성을 가지고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자기관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카도카와 영화사에 크게 공헌했던 3아씨, '카도카와 세아씨(角川三人娘)'라고 불리웠던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ひろ子)와 하라타 토모요(原田知世) 화타나베 노리코(渡辺典子)가 너무 독선적인 카도카와 진행에 반발을 하는 형태로 독립을 해버리고 출판관련으로 확실한 지위를 쌓아가는 동생을 억지스럽게 추출시켜버리는 행동으로 화를 불렀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TV방송 등에 나가서 너무 돌출적인 행동을 보여주면서 체통없는 정신이상자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1993년 8월 29일 드디어 코카인 밀수 사건으로 인해 체포를 당합니다.

덕분에 본래 기이한 행동을 보였던 그는 약물 중독으로 인한 거시기한 형태였다는 말이 나오고 바로 이사회는 그를 해임하게 됩니다.

돈으로 재판을 연기하고 연기했지만 결국 2000년에 최고법원에서 징역 4년짜리 실형을 받게되고 복역을 하게된 그는 2004년까지 수감되었고 그 안에서도 돌출행동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형무소 안에서 이지메를 당했다고 알려집니다.


카도카와 쇼텐과 미디워팩토리는 사실 같은 구조에서 출발했던 이들이 나누어져서 다시 분열된 형태로 볼 수 있는데 초반에는 상당히 경쟁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전격(電擊)'시리즈를 비롯한 독자적인 노선을 가지고 확립하는 가운데 카도카와 쪽 영역과 살짝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회사 자체는 카도카와 츠구히코에 의해서 운영되는 방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카도카와와 반카도카와 형태로서 산업전선을 일구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은 알게 모르게 출판업계의 자존심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까놓고 둘을 비교하는 일이 적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가지 분야별 진출이나 확장에 있어서 서로의 영역에 미묘하게 얽히지 않는 방향을 갖추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추식회사 카도카와 그룹 홀딩즈가 된 카도카와 쇼텐은 2011년 11월 15일자로 미디어팩토리를 흡수, 자회사로 만드는 형태로 자리를 잡게되었지만 이런저런 취미문화 부분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해온 미디어 팩토리는 여전히 분사된 형태로서 독립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참고로 미디어 출판관련도 수작업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카도카와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전자출판 구성을 가지고 있는 미디어 팩토리 등으로 나누어지기도 해서, 같은 카토카와 혈통이라고 해도 이 둘은 다른 성격을 가진 다른 분야의 형제출판사라는 말을 하게됩니다.


더불어 참고로 1994년 1억엔짜리 보석금을 내놓고 보석생활을 한 카도카와 하루키는 1995년, 현행 카도카와 하루키 사무소(角川春樹事務所)를 설립합니다. 이쪽은 조금 마이너하다고 해도 상당히 가치가 있는 기존 여성소설, SF소설, 호러소설 분야 등을 재개척해서 장르분야에서 여전히 강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영화산업 분야에도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었던 그는 <싸나이들의 야마토 : 男たちの大和/YAMATO>를 2005년에 내놓으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더불어 다시 참고하자면 카도카와 츠구히코는 2007년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러나 일선에서 멀어진 이후 그렇게 표면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이먼에서는 이런저런 방침에 영향을 미치지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