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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Adult

그러면 만보를 이야기 합시다



얼레, 만보가 만보를 이야기한다고? 하면 뭔가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블로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본자료를 이번에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이번에 방구석 창고 하나를 털었는데 그중에서 1980년대 자료들이 조금 나왔습니다.

제 아이디 만보는 만화일보(漫畵日報)를 줄인 말입니다. 1989년을 전후해서 이 기획을 만들어 한국 취미만화계와 동인계 소식을 정리하는 동인지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당시 예산은 무료 배포지로서 80~100만원 정도를 예상하고 시작을 했는데 이때 모인 자료가 조금 많아지면서 그 정리에 고생을 하다가 결국 자폭하고 말았지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제가 생각을 잘못한 것이지요.

처음에는 계간지를 목적으로 했는데 자료양이 조금 많아지고 자료조사 호응이 재미있어지면서 우선 책을 만들어 내놓는 것에 주목을 했어야 하는데 이번호와 다음호, 그리고 그 다음호까지를 계산에 넣으면서 작업을 하다보니…… 흑흑, 도저히 한 번에 처리할 수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대부분 학생시절을 만끽하는 인간들이 주축이다보니 자주 모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획, 제작 자체가 대부분 저 혼자였습니다. 덕분에 취재한 자료나 지방동호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원고를 완성하는 가운데, 특이성이라는 재미만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다만,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그에 따라서 진행을 해야하는데 아직 창간호도 못만든 상황에서 자꾸만 쌓여가는 자료들만 생각하면서 '이번에 쓰고 2호에 쓰고 3호에 쓰고' 등등을 생각하면서 진행하다보니 자꾸 실제작이 늦어지게 된 것이지요.

물론 나중에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름 자료정리를 잘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우선 그냥 책장 한곳에 넣어두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보니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나 다시 꺼내들어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페이퍼가 많이 얇아보이는 것은 제 취미DB를 1996년에 작업하면서 많이 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의견, 감상이라는 것이 다 달랐지요. 이 만보는 당시 유니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에서 활동을 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관련 취미인들에게 인터뷰 요청 및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알아볼 수 있는 동호인들 그룹에 연락을 해서 글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통화료가 상당히 나왔습니다. 1989년 기준으로 전화비가 20만원 가까이 나왔으니 조금 바보짓이라고 하겠지요.

이 글을 쓴 이는 현재 한국에 없고 일본에서 근무중입니다. 결혼해서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친구인데 이 글을 쓴 후에는 삼성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조금 웃긴 일이지만 이 때 알게된 취미인들 중에 10여년이 지난 후 소식을 들어보면 대기업, 게임업체(한국, 일본, 미국), 병원, 모 한국워드 제작업체, 수출입 유통회사, 애니메이션 업체, 출판사, 경찰청, 법원, 금융, 여행사, 음악 공연기획, 영화사, 연예사무소 등에서 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더불어 프로만화가로 데뷔를 한 사람도 있고, 현행 모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만화가 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형태로 진행을 할 때는 대부분 학생이나 백수, 또는 꿈을 쫓아 무언가를 준비하는 상황들이었지요.


'만화일보'의 제작의도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것을 쪽팔려하거나 숨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즐긴다는 의미였지요.

다만 제작초기 컨셉을 조금 잘못잡아서 너무 많은 자료들을 모아받은 것이 실수였다고 하겠습니다. 주변에 아는 인맥하나만 동원해서 약 600페이지 분량 텍스트과  200장 이상의 일러스트를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게다가 이것은 시간을 거듭해갈 수록 계속 늘어나서 최종적으로 약 4000여 페이지 분량이 되어 갔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동인생활과 출판 아르바이트를 조금 해보면서 제작기준에 따른 변화나 느낌, 주제의식을 잡고 우선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을 알게되었지만 이것은 조금 나중일이라서 결국 만화일보가 세상에 빛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마다 생각을 해보는 기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읽는 다는 것 이상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때를 전후해서 약 42명의 의견, 감상에 대한 글들을 받았습니다. 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어떤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의견들을 정리한 글들인데 통신에 쓰던 것과 달리 조금 다듬어서 보내달라는 요구를 잘 수용해서 보내주었고 저는 그것을 차곡 차곡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시작 자체는 1987년 별 생각없이 시작한 부분이지만 1989년에 이르러 제법 넓은 영역을 수용할 수 있었고, 더불어 인맥을 만들어가면서 3~4단계까지 넘어가게 되니까 참 많은, 다양한 직종에 있는 이들과 만나볼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 그렇게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에 대한 감상을 주로 하는 전반부와 중반부는 일러스트 및 작화가들 그림을 넣고, 후반부는 조금 마니악한 작품해석이나 이해를 써나갈 생각이었지만 우선순위를 만들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누구는 2~3장으로 끝나는 글이었지만 누구는 10여장이 넘는 글을 보내왔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넣는다는 전제로 작업을 할 때 참 고생을 하게되었지요.

이것은 출판, 기획, 편집을 해본 이라면 알 수 있는 고생인데 초기 판형만 결정했지 페이지 수나 구분을 어떻게 할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심하게 만들었지요.




게다가 지금같은 시기라면 이 메일로 글을 받고, 첨부파일로 받고 말일이지만 이때만 해도 플로피 디스크로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플로피도 비쌌습니다) 결국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프린트를 받게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덕분에 개개인이 사용하는 프린터나 잉크 상화에 따라서 모양새가 다른 종이들이 쌓입니다. 저는 당시 라이카에서 나온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어서 TXT파일을 받아 편집형태를 맞추어 가려고 했는데 그 계획도 무산되어 받은 자료들을 기초로 일일히 타이핑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진행되니 당연히 기획준비가 미비한 점과 시간부족으로 인해 훌쩍 하게되었습니다. 게다가 학교를 안 가고 놀다가 걸려서 된통 혼나고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 만보 출간 기획은 한동안 정체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한 곳에 모아둔다는 생각은 계속 되었기 때문에 만보 기획은 1992년까지 진행되게 됩니다. 비록 혼자뿐인 기획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블로그에 정리되어 있는 '만보 회고록'이나 '만보기록'은 대부분 이런 시기에 작성된 텍스트가 기본입니다.

총 16회의 모임과 22회의 잡담회, 그리고 이런저런 교류회를 거쳐서 완성된 녹취기록들은 나름 재미있는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하겠지만 워낙 방대하고 중구난방식 기록이다 보니 그것을 재정리 하는 것도 상당한 일이 되고 말았지요.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 자료에 대한 조사는 각자의 책임, 몫이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정리한 자료들은 나름 노력의 흔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뭐 이때 노력하던 인간들은 이후에 다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간들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대단히 성공을 하게되어서 사회 기반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세대들이 즐기는 한국산 게임들 중 유명작품 5~6개가 이 때 모임에 속한 취미인들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때만 해도 대부분 우물 안 개구리 스타일이었지만 이제는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베트남, 대만 등에서 자리를 잡고 일하는 이도 있는 만큼, 만화책 보면서 에헤헤하던 인간들이 어떨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이때 중학생이던 사람부터 대학생, 간이 직장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행방불명된 (물론 취미계에서) 사람도 있지만 사회에서 저명한 존재로서 에헴~ 하고 살고 있는 모습도 보게됩니다. 나름 이런 꿈들은 한국어판 뉴타입을 진행할 때 풀어낼 기회를 보았지만 워낙 옛날 자료에 돈을 받고 파는 잡지에 쓰려고 하면 그 글들에 대한 개개인들의 허락을 다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여전히 이후에도 저는 한국 동인,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취미동인지를 꿈꾸기도 합니다.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서 그런 것을 써보기도 하지만요.

한 때는 한국형 슈퍼로봇대전 게임을 만들어 배포하려고 생각을 했지요. 태권V나 캉타우, 로봇킹, 레스톨 등이 들어간 오리지널 한국판 로봇게임이었지요. 역시 동인게임으로 만들어서 이익을 무시하고 그냥 널리 알린다는 생각에 진행을 했지만 결국 이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어느정도 진행하다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본래 제가 하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관리직이라서 조금 맹맹해지기는 했지만 취미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취미로운 열정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은 대부분 한 때의 열정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만보라는 아이디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런 시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10년 20년이 흐른 후에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취미로운 열정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