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면서 약 2~3년 주기로 그런 질문, 의문에 답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런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언제 그런 답을 했었나 찾아보니 2008년 3월 29일자 포스트가 그것이더군요.
그동안 또 시절이 변했고 제 블로그를 찾아오시는 분들의 영혼세대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런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저는 인터넷이 있기 이전에, 통신문화가 있기 이전에, 어두 컴컴한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보던 시대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한국산 만화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해적판 식으로 마구 제본된 만화를 만나보던 시대였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대본소 만화 자체가 국산 만화작가로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장사속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던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까지 만화가게를 하시던 큰이모 댁에서 방학 때마다 놀러가서 몰아보던 저에게 있어서 그런 환경은 굉장히 현실적인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맞벌이에 바쁜 부모님이 방학시즌 동안 저를 그곳에 처박아 두신 것이지만요. 이상한 현실이지만 저는 그것을 통해서 한국 만화시장의 현실이라는 것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고 하겠지요.
시절이 변해서 나름 그것을 돌아보면 1970~80년대 한국 만화영화 시장이 일본산 작품들을 배껴서 만들던 시대에도 대부분의 소년들은 "와~ 아~" 하면서 신나하면서 살았습니다. 문화저작권같은 것은 일반 사회에서 생각도 못하던 시절입니다. 어떻게 보면 2010년대 이전의 수많은 중국 짝퉁문화에 대한 반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1980년대 한국 문화시장이었지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여러가지 짝퉁 시장을 철거시키는 과정이 있었고 그 안에서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표면적인 만화영화 부분은 그렇게 때려잡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볼 때 수많은 짝퉁, 해적판 만화 시장은 왜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에 따른 적개심이 그렇게 존재하면서 왜 그렇게 돈이 되는 장사를 위해서 일본문화의 한 부분들을 들고 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시 되는 부분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그런 부분은 지금도 이어져서 가끔 보면, "일본만화같은 것은 돈을 내고 보는 것이 아니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봐주는 것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일본 xx글 만화이니까" 라는 소리를 하는 이도 보게됩니다. 실제 재미라는 것은 있어서 심심풀이는 되지만 적개심을 가지고 접하는 이웃나라 문화라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실제 제가 살면서 성장해올 때도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공산당, 일본이라는 나라는 무척 적대적인 형태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고 하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거쳐오지 않은 세대인 저라고 해도 그런 영향력 아래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요.
문화적으로 이해가 되는 즐거움, 싸구려 문화로서 만화출판시장을 크게 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한테 나쁜 짓을 한 일본이 가진 문화아이템이라는 것은 마구 가져다 써도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낄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시절에 있어서 한국화(일본만화이니까 아무래도 일본문화스러움을 보여준 장면들이 있는데 그것일 일부러 고쳐서 일본것이 아니게 고치는 작업) 수순을 거친 작품을 접하면서 이게 한국작품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덕분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 있어서 '마징가'나 '미래소년 코난', '은하철도999'는 우리나라 작품이었지요.
한동안 '우주소년 아톰'과 '유성가면 피터', '마린보이'는 우리나라 이야기였고 우리나라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고 지나왔기 때문에 더더욱 '일본만화'라는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보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게 제가 그런 것을 찾아보게된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원작(原作)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그리고 일본 작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못들어온 작품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는 점이지요.
문명화된 사회라는 것은 본래 굉장히 이성적인 형태로 작동을 하지만 아직 통제력이 부족한 한 소년은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없이 그런 것을 구할 수 있다고 알려진 곳을 찾아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장소로서 알려진 곳은 이태원, 종로 세운상가, 그리고 명동 중국대사관 앞이었습니다. 3군데 다 꼬맹이가 찾아 돌아다녀보기에는 이런저런 위험성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주 가볼 수는 없고 가더라고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이 세곳을 어슬렁거리면서 알게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취미인맥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초기에는 정식으로 공부를 한 것이 아니어서 일본어 자체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히라가나 라는 명칭도 모르고 대부분 무협지를 읽어서 알게된 한자실력을 기반으로 독해에 들어간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읽기 쉬운 것이 일러스트가 많은 화집이었고 그리고 만화였지요. 다만 앞서 말한대로 정보에 대한 제한이 굉장히 많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작품 하나를 찾아보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책이나 화집, 책자를 구입했을 때 동봉된 광고용 전단지들은 저에게 큰 정보원이었습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작품들을 찾아나갔습니다. 한국 해적판 원작들을요. 물론 마음에 든 작품만 찾는 것이었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에 전혀 모르던 새로운 작품, 작가, 세계를 알게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서 제법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덕분에 기존에는 몰랐던 세계,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럴지도 모르는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대부분의 만화책이 다 그러하듯 그림과 칸 구성을 봐 가면서 저는 굉장히 빠른 이해력을 얻을 수 있었고 정확한 상황은 아니라도 해도 만화책의 내용 50% 정도 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을 늘려가면서 얻은 지식을 바방으로 재인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일본어해독능력이 높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 감정상태, 제가 습득한 이해력이 더 높아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싸움을 해보기 전과 후, 사랑을 해보기 전과 후, 어딘가를 여행해 보기 전과 후 등과 같은 경험이해가 얼마나 높아지는가에 따라서 그것을 이애하는 영역에 차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초콜릿을 먹어본 애가 보고 이해하는 초콜릿을 먹는 장면에 대한 이해와 먹어보지 못한 애가 가지는 감상이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겁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핫케익이라는 것을 만화책을 통해서 먼저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도 있겠지만 결국 만화책을 보고 느끼는 것도 그 독자가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진 다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여친을 사귀었을 때도 공통점이라는 것을 그런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지요. 과거에 서로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그 안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와 이해가 공통된 결과, 또는 비슷한 결과를 가지면서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재미라는 것은 대부분 경험을 통한 것과 그것을 예상, 상상해서 얻어지는 것도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만화책을 본다는 것은 여전히 시간낭비, 인간사회에 있어서 필요없는 부분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저 향락적인 문화에 시간을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에서 만난 것은 순정만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연결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이성으로 볼 수 있는 여성적인 심리에 대한 이해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조금 틀린 것은 제가 보기 시작한 1980년대 일본 만화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에서 1980년대 상황에 연결해볼 때 그것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같은 1980년대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시대에 따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이해와 감상이라는 것은 전혀 다르게 반영되고 있었으니까요.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될 수 있는 정신적인 공간대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만화라는 공간 안에서 볼 수 있는 구성이라는 것을 신경쓰게 되었고 그 것을 보는 재미를 더 깊이있게 가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남자가 보는 만화와 여자가 보는 만화, 10대일 때 보는 만화와 20대, 30대일 때 보는 만화,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내놓은 이들의 견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결국 나에게 있어서 보는 것이 즐거운 작품이지만 그것을 비지니스로서 완성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지요. 그런 점들을 경험해가면서 더욱 진~한 무언가를 원하게 되기도 하지만요.
저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만화책을 통해서 얻은 것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면서 세계사, 유럽사에 대한 기대심을 키웠고 결과적으로 저는 세계사를 상당히 잘하는 녀석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공부, 점수제에 있어서 말입니다. 재미있었거든요. 그리고 국사와 문학, 표현, 사회, 심리, 계산된 인생이나 판타지 등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무협지를 기반으로 한 유행을 가지고 나갈 때, 일본은 추리와 SF, 그리고 오컬트라고 할 수 있는 신비한 것에 많은 흥미를 두고 있었지요. 그런 것들을 동시간대에 접할 수 있었던 저는 나름 폭넓은 취미영역을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것도 결과적으로보면 미주지역, 유렵에서 유행했던 근대문화의 흐름을 거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그 나라의 문화를 거치면서 조금씩 정착된 고형문화를 가지고 그 안에서 다시 발전되어 고착화되어갑니다. 그 기준 중 하나가 지금은 '인터넷 문화환경'이지요. 가끔 현실 생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학생들 모습이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의 만화에 대한 접근도를 보면 대부분 인터넷을 통한 접근방식을 알려줍니다. 뭐 집주변에 학교들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이런저런 모임이나 행사에 가보면 다양한 연령대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의 주제, 관점, 그리고 취미로운 흥미점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과거에는 떠벌이는 것을 좋아했지만 근래에는 남들이 하는 말이나 주제, 흥미에 대한 접근이 어떤가를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가장 많이 알게되는 것은 역시 인터넷 환경, 그리고 그것에 목을 매는 모습 같은 것을 보게됩니다, 저는 아무래도 통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더 넓은 취미인 영역을 찾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하면 근래에는 자료로서, 단편적인 지식으로서 흡수되고 마는 환경으로서 만화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그런 과정 중 중요한 포인트로서 만화를 본다는 것을 취미로 가질 수 있게 되어간다고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