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敎育 : education] 의 본질
지식의 총량을 따지는 것으로 구분되는 분류 기준에 의해서 교육 상태를 판단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본래 그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구성원을 만들고자 하는 근대적인 해석이 아니라 개인의 자각, 사회 적응 능력, 그리고 언어와 단체생활에 필요한 일반성과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 개성의 발달에 있어서 필요한 수단으로 시작을 했다.
단, 여기서는 3가지 논점이 존재한다.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가르침을 받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 교육과정과 결과를 대다수가 인정해야 한다.
50년 경력의 목수가 10살짜리 아이에게 목공을 가르치는 경우 필요한 컬리큐럼 목수의 교육수준과 더불어 아이의 인지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공공교육은 대다수의 아이(미지식 습득자)를 한꺼번에 가르치는 통계를 잡고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성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준점을 만들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게 된다. 가르치는 자에 대한 교육의 방법도 전문 지도가 따로 필요하게 된다.
이런 부분들이 그런 사회가 속한 이들의 규범, 통속적인 인정 과정을 통해서 더 넓은 인지도를 가진다.
고대 교육 시대는 지역적으로 한정적인 분야와 삶에 필요한 부분을 가족단위로 교육했다. 글과 언어, 사회 구성과 의식주 분담에 의한 필요성 지식은 초기에 어려웠지만 씨족사회가 발달하고 인간의 두뇌발달에 의해서 계속 증가되었다.
특히 기록문화에 따라서 지식의 전달, 습득 단계의 통일, 규합, 재정리 과정을 통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우수한 전달 방법을 교육의 3단계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가장 빠르고 우수하게 널리 알려진 방법은 2가지이다.
군사훈련과 농사법이다.
야생동물과 싸워서 이겨내는 방법부터 같은 인간문화끼리 벌어지는 충돌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서 군사훈련이 일반화되고 이외에는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살아남고 먹고사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농경, 목축, 행상 등 필요에 의한 교육을 얻게 된다. 이것은 대부분 그 인간의 최소단위 소속원, 가족에게만 전수되는 형태로서 인정되고 이후 독자적인 문화권으로서 부족, 민족 단위로 거래되는 부류적 수단으로서 정착한다.
예술 분야는 대부분 개인의 자질에 의해서 따로 구성되는 형태를 가지므로 교육이라기보다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통해서 습득 과정이 이루어졌고 그를 통해서 사회적 이익을 발생시켰을 때 인정되는 과정을 거친다.
정치와 경제적 통념에 의해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개념을 이해시키고 그것으로 인간계급을 구분하는 형태로 나누어지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 가축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중심의 교육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기초적으로 필요한 수단의 이해는 보통 현대사회의 인간 기준으로 약 8~12세면 다 습득을 할 수 있고 이해가 가능하다. 단 이것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바꾸어 재구성해 개성적인 삶의 바탕을 마련하는 시기는 그 배 이상으로 걸리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보면 13~23세 정도까지 가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지될 수 있는 연령을 보게 된다.
현재의 대부분의 근대 교육은 이러한 바탕을 가지고 교육제도의 구분을 가지는데 이 구분 중 일부 기준은 군사, 농경 교육 등으로 새롭게 구분하기도 한다. 전문 기술, 고등기술을 배우고 응용할 수 있는 기간도 역시 13~23세로 보는데 초기 8~12세의 5년간 / 전문 기능을 습득해 독자적인 개성으로 만드는 10년간이라는 구성은 나라별, 종족별, 문화별로 다른 기능을 가진다.
이후 세계화 과정을 통해서 증명할 수 있는 제도, 인증된 교육의 기준을 통합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단계별 교육제도와 졸업제도, 졸업장이라는 문서가 가지는 능력별 구성과 더해져서 인간 개인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성적표 기준은 여러 가지 인간 계급 구분을 두는 차별적인 행동이라는 평가가 많기 때문에 이후 교육자과 피교육자의 관계상에서 인정된 가능성을 통해 추천되는 과정들이 고려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사회교육제도의 근반은 교육 그 자체보다 종교, 신념적인 구성에 의해서 결정된 사항이 많기 때문에 사회단체, 국가별로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사상이 담긴 기본을 가르쳐 소속사회형 인간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소속 단체, 그 나라, 그 민족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기준, 독단적인 아집이나 편견을 가진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커리큘럼을 통해서 인류 전체가 가진 생각과 사고의 통합을 이루고 이것에 맞추어진 올바른 인식 과정을 통한 교육의 보급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단체,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이익, 이권에 맞물리는 것이 싫기 때문에 기득권의 이익과 기존 사회 개념, 통념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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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돈을 벌겠다는 의미로서 유지되는 장치로서 전락한 교육기관이라는 것은 실제 교육의 전당이 아니라 영리단체이며 이익집단의 구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단계일 뿐이다. 즉 돈 받고 졸업장이라는 것을 줘서 그것을 가지고 사회에서 인정되는 증명 장치로서 활용한다는 것 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라고 하겠다.
대부분의 교육기관이 가지는 기본 소양은 초기 1~2년 안에 완성될 정도이고 그 외에는 대부분 단체 활동과 사회규범에 맞는 인간, 인격형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더불어 인간관계를 형성해서 인맥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이 형태는 교육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에 맞춘 교육방법이 완성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개인 교육과 단체 교육의 중점을 완성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은 소수 형태로 구성된 교육자(서비스 제공자) 와 학생이 구성에 따라서 진행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방법을 원하게 된다.
실제 인구 자체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연령별 교육수준과 참 의미로서의 교육과정은 꾸준히 계속될 수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되는 형태를 통해 선대가 가르칠 수 있는 것과 학생이 교육자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부분이 연결됨으로써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은 해결 방법이다.
폭력을 비롯하여 사회적 불안요소에서 어린 생명체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지식과 감성이 충분히 무르익을 시간을 주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학교 자체가 기관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커뮤니티 센터로서 확립되어 다양성을 만들 수 있는 기관이 되는 것을 바라지만 정작 그런 현실을 이루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 아직 인류의 미개한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