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질환 : 精神疾患 : Mental disorder] 과 구원
근대의학에서는 육체 장애와 달리 지적장애와 함께 인격장애와 자폐증 형태를 정신질환으로 포함하고 있지만 고대에는 구분이 없이 일반 사회에서 인지할 수 있는 '보통 보다 덜떨어진 상황을 보이는 자'를 이런 구분에 두었다.
속칭 '바보'는 정신질환자, '병신'은 육신 질환자로 대표되는 단어와 같이 말이다.
사회적 '인격장애'에 대한 구분은 이후 사회병리학의 체계 정리와 함께 따로 정리되지만 근대의학, 해부학과 심리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결정된 정신질환은 외부요인과 내부 요인으로 나누어진다.
유전 병리학에 따른 과정을 밟으면 유전자 변이에 의한 결핍 요인이 주가 되지만 정신장애와 정신질환의 후천적 발생 요인을 염두에 보면 환경적 외부요인을 주요 우선 과제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일반 사회에서 규범과 제약을 두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적인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지켜지지 않는 폭력적, 비이성적, 또는 너무 뛰어난 관찰력으로 비판적인 인물에게 지정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정신질환은 이용되어 왔다.
더불어 종교권이 가장 쉽게 파고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수단'으로서 정신질환이 이용되기도 했다. 사회, 국가에 대한 정리와 유지 수단으로 큰 영향을 발휘한 민중 선동 방법으로 큰 범위를 가지고 있었던 종교단체는 대부분의 의료 행위, 또는 구원 문화를 펼쳤는데 그것으로 병, 질환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일상적인 과정에서 제일 거론되기 어려웠던 정신질환자에 대한 궁극적인 치료보다는 그것을 안도시키고 구원해서 자신들의 해결 능력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사례로 삼게 된다. 그래서 초기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방법으로서 확립된 것은 정기적인 주입식 세뇌를 통해서 자기합리화, 그리고 단순한 복종적 인간화를 시키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런 형태는 근대까지 이어져 실험과 수술을 통해서 단순하게 만들어 버리는 형태를 우선시하기도 했다.
해결방안으로서 그것이 맞는가 안 맞는가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완벽한 결과 보고에 있어서 설정된 것이 맞추어질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종교와 달리 병리학, 특히 과학 이론에서는 사회병리로서 외적 요인을 관찰하게 되는데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을 오랜 시간 관찰하여 그들이 일반인과 어떤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평가, 보고, 축적해서 다시 재분산시켜 다양한 설정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고대 종교단체에서는 격리 수용식 정신질환자 관찰기관이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비신앙적인 행동에 대한 심리 전략이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미개인들은 자신들이 미개하다는 것을 모른다.
외부에서 미개하지 않은 이들이 와서 미개하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삶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들은 이런 부분에서 폐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적 폐쇄성, 인격장애자에 대한 기준으로도 거론된다.
단, 역사적으로 유명하게 알려진 몇몇 지도자, 권력자들도 이런 정신적 질환 증세를 보여왔던 것을 보아, 선천적인 정신질환이 있다고 해도 일반 사회적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성을 달리 볼 수 있고, 오히려 정신질환이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집중할 일에만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좋았다고 보는 견해도 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확률적인 부분으로서 인간의 두뇌 환경 개발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해석된 몇 가지 사례로서 존재할 뿐, 전체의 이야기는 아니다.
유전적요인으로서 거론된 DNA 분석은 아직까지도 발전적인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여된 부분을 화학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방안(또는 실험 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반면 이런 형태로 시작된 장애 치료 환경을 통해서 인간이 숨겨진 잠재력, 두뇌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로도 보고 있다. - 이 부분은 이후 인간 잠재력, 초능력과 연계된다.
급격한 스트레스의 증가로 인해서 정신질환이 악화될 수도 있고, 정신질환의 극적인 표현 방법으로서 관찰력과 인지력이 증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통한 발전 방법, 치료방법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쪽은 비인간적인 인권문제로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어느 정도 정체되어 있다.
융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널리 분포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현대인, 과학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적은 사람은 선지자, 깨달은 자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보 주 ▶▷▶
인간의 생활패턴이라는 것이 무의식중에 사회가 규정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방 안에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르게 사회가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라는 형태로 우리들의 삶방식을 유지시키려고 한다.
반면 개인의 생각과 의지가 무조건 같은 방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사회는 우선 규율 안에서 정의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귀찮아 한다. 대중적인 인식이 어느 형태를 갖추는 것은 좋지만 그 형태가 너무 복잡하면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규율과 패턴이 정형화되었을 때 관리하는 쪽은 편하지만 인간 개인의 개성치가 그렇게 한정 지어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입장은 계급사회에서 말하는 구성에 치중된 관리 방법이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지 않은 형태이다. 전체주의와 개별주의의 대립이라는 형태를 말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질환자에 대한 부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수에 대한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관심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현실은 어느 정도 인식과 사회역량이 갖추어질 때 가능한 것으로 보통과 다른 것을 이상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정확하게 인지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상호 간 존중과 이해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사랑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