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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아이돌 문화와 아이돌 가요

우선 이 포스트는 더워서 쓰다가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길어서 여타 블로그에서는 입력도 안되니 더욱 훌쩍였지요.

그래서 버전은 0.5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버전 1로 만들고 싶지만 더워서 그냥………에헤헤.

 


 

실질적으로 아이돌이라는 구성은 연예계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아니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젊은 틴(TEEN)세대 배우들의 활약과 가수가 등장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면면으로 동시에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지금에 와서는 젊은 시기에 데뷔를 해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배우, 탤런트 그리고 성우등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며, 근래에 와서는 인터넷 동영상이나 사진이미지 등을 통해서 화제를 모은 인물에게도 그런 명칭이 포함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서양문화권에서는 전통적인 아이돌 존재를 프랭크 시나트라로 보고 있는데 1950년대의 엘비스, 1960년대의 비틀즈가 전형적인 데뷔와 동시에 아이돌의 호칭을 받은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음악적 활동영역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서구 문화권과 달리 일본은 독자적인 젊은이 지향성 문화세태를 지칭하는 형태로서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실력파라는 것도 존재했지만 우선은 전략적으로 잘 짜여진 매력포인트를 가지고 다양한 팬층을 포함하게 되면서 등장하게 되는 것 때문에 데뷔 이전부터(연습생 레슨을 받는 후보생들) 팬들을 확복하는 시스템도 만들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를 대표하는 오디션 방송 스타탄생을 통해서 그 아이돌 붐이 일어났고 대표적인 여성 아이돌 핑크 레이디와 야마구치 모모에가 스타성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도에 들어서 전형적인 일본 여성 아이돌 붐을 일으킨 4인방이라고 하면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 카와이 나호코(河合奈保子)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 코이즈미 쿄코(小泉今日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일본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국민적 아이돌(国民的アイドル)이라는 호칭은 초기에 국민적 미소녀(国民的美少女)라는 이미지로 세상에 나온 고토 쿠미코後藤久美子를 비롯한 미모의 아이돌을 포함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유행어가 되어버렸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일본에서는 독자적인 문화로서 전일본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全日本国民的美少女コンテスト : 1979년부터 오스카 프로덕션, TV아사히, 다양한 레코드 회사가 주최)를 시작해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이 단어 형태는 굉장히 묘한 밸런스를 가지는데 당시 아이돌 =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지칭하는 형태에서 묘하게 미소녀도 아이돌로 불리게 됩니다. 특히 이 부분은 서양과 달리 미소녀들이 여러 가지 유명 오디션을 거쳐서 CM등에 등장하게 되면서인데 이 부분은 또 국민적 미소녀와 달리 발굴된 미소녀에게 그 호칭을 사용하게 됩니다.

 

덕분에 이 아이돌이라는 호칭 하나로 무언가 정보를 얻으려고 했던 저는 엄청난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다행히도 관련 학문(?)을 연구하던 친구가 있어서 그 구분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돌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여러 가지 함축성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연결되는 형태를 보였다고 하겠습니다.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는 가수또는 노래를 중심으로 한 단체를 지향하는 단어에서 TEEN세대에 데뷔하여 다양한 연예계 활동을 하는 가수, 배우, 탤런트, 그리고 미소녀까지 포함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걸출한 아이돌(본래의 의미대로)도 등장을 했지만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가 난립하게 된 원인은 일본 문화가 그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 ‘반짝 스타나 일부 세대, 계층에게만 인기를 얻는 존재에게는 아이돌이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1990년대 중반까지였지만 이후 여러 가지 장르가 다변화되면서 성우 업계의 아이돌, 산업계의 아이돌, 요리계의 아이돌 등을 거쳐서 AV계의 아이돌까지 마구 마구 저변을 넓히면서 지금에 와서는 그 아이돌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숭배하게 되는 우상적 이미지는 보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별도로 아이돌 시기를 거쳐서 > 멀티 탤런트 > 스타 > 슈퍼스타 라는 변화기를 거치는 경우도 보지만 영원한 아이돌이라는 형태로 불리기도 합니다.

1990년대말과 21세기에서 이어지는 호칭은 카리스마로 변화되었지만요.

 

이후 이 아이돌이라는 단어 구분은 다양한 계층, 세대에게 알려져 있고 호감을 얻을 것.

인기가 오랜 시간 유지될 것. 으로 규정되었고 업계에서는 방송에 등장했을 때 시청률을 얻을 수 있는 존재를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라고 한다면 좋아했던 만화작가 아다치 미츠루 만화를 비롯하여 치바 데츠야 작품에서 나온 몇 몇 명칭을 보고 그 아이돌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다치는 주로 아키나를, 치바는 야마구치와 핑크레이디를 거론 했던 탓에 도대체 얼마나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기에 이렇게 자주 만화에서 거론되는 것일까?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마침 빽판 시장을 통해서도 그 판을 만나볼 수도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지요.

 

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을 통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당시 일본 아이돌 가수의 존재가치는 엄청난 지명도를 가진 음악방송 더 베스트 텐(ザ・ベストテン)네 등장하는 가 못하는 가에 달려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단독 아이돌 체재는 이후 1990년대로 이어지는 밴드 붐과 함께 많이 쇠퇴되었다고 하겠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들에게 그 영향력을 보여준 80년대 아이돌들은 제법 많은 시대까지 살아 유지됩니다.

 

1980년대는 일본 아이돌 시대의 황금기라는 호칭을 듣는데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무시무시한 정통파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에 이어서 바로 가창력을 인정받은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가 등장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 이름만큼은 노래를 알건 모르건 얼굴과 노래를 한번 정도 보거나 들어본 이들이 존재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마츠다 세이코는 엄청난 히트곡을 자랑을 합니다. 평생에 빅 히트곡 1~2개만 있어도 평생을 먹고 살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베스트 앨범은 2~3장 짜리 CD로도 부족해서 10여장 가깝게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중에서도 다시 초 히트곡만 따져본다고 해도 어지간한 콘서트 2개 분량은 되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진정한 아이돌로 거론하게 됩니다.

80년대의 아이돌 시장을 이끈 마츠다 세이코와 나카모리 아키나를 비롯하여 카와이 나호코(河合奈保子)와 코이즈미 쿄코(小泉今日子), 하야미 유(早見優) 등은 굉장히 강력한 아이돌 전선을 이루었고 이후 1985년 전후로 등장한 아이돌 쿠도 시즈카(工藤静香 : 오냥코 클럽 소속 활동기까지 포함해서)와 마카야마 미호(中山美穂). 혼다 미나코(本田美奈子), 사이토 유키(斉藤由貴), 미나미노 요코(南野陽子) 아사카 유이(浅香唯)등이 80년대 후반에 이어 90년대까지 자신들의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참고로 나카야마 미호, 미나미노 요코, 아카사 유이, 쿠도 시즈카는 당시 아이돌 4천왕(アイドル四天王)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물론 남성 아이돌도 그 맥을 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타하라 토시히코(田原俊彦)와 콘도 마사히코(近藤真彦)는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가희 난공불략의 인기를 자랑하게 됩니다. 콘도는 맛치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1981년에 발표한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가 초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곡은 1981년도 연간순위 21위이고 제 23회 일본레코드대상 최우수신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큰 히트를 했고 여러 장소에서 알게 모르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자신들의 활약장소를 변화시킨 마츠모토 이요(松本伊代)나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ひろ)도 멀티탤런트이면서 영원의 아이돌이라는 장소에 가까운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80년대는 독립형 아이돌은 물론이요 다양한 그룹형 구성을 가지고 상업화된 구성을 굉장히 다양한 형태를 선보였는데 이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90년대에 들어서 이들의 다양성은 더욱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소녀대와 소년대가 등장한 시기이고 이들의 명성과 음악적 이해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이해받아 음성적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팬층을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전통, 고전전인 분류에 따르면 일본에서 아이돌가수를 성립시킨 1970년대의 고야나기 루미코(小柳ルミ)나 미나미 사오리(南沙織), 아마치 마리(天地真理) 시대부터 1988년전후의 히카루 겐지(GENJI)활동기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의 존재와 비율은 사실 방송기준으로 음악, 엔터테인먼트, 버라이어티, 광고, 심지어 뉴스나 스포츠 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아이돌만으로 방송편성을 기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반발성 의견, 또는 다른 형태로 이해되는 아이돌 설에 따르면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따라 부르기 쉬운 리듬과 멋들어진 가사를 가지고 표현되는 영역으로 보기 때문에 팝, 대중가요라는 부분으로 볼 수 있지만 여타 음악, 록이나 포크송, 재즈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성에서 볼 때 이쪽 음악에 속한 가수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언더그라운드와 R&B, 소울같은 형태가 등장하면서 뉴에이지 사운드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형태로 아이돌로서 성립시켜야 할지 구분에 더욱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시기를 거치고 있을 때 알게된, 친분을 쌓게된 그들의 연구와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지금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야 단순하게 과거에 빽판으로 알고 있던 몇몇 아이돌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결국 그 세계에 대한 철저한 이해론까지 덩달아 얻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여성가수에 대한 구분이 이전과 달리 다양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과정과 달리 전문성을 구분한 가수성향과 미소녀로서 데뷔하여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한 연예활동을 하면서 팬층을 확보한 후에 상업적인 형태로 발매하는 싱글 앨범 등은 듣기 편한 음악으로 수익을 증대화 시켰다고 하겠습니다.

 

정통파 가수들이 가수 생활의 생명력을 위해서 싱글앨범을 발표하고 이후에 다시 그것을 기반으로 앨범을 발표하는 형태를 가진다고 할 때 아이돌 가수는 팬 구매욕구를 기초로 한 싱글음반을 조금씩 내놓는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문에 음반 시장의 영향력을 볼 때, 그리고 산업적인 가치로 볼 때 아이돌 산업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그만큼 여러 가지 분야별 음악산업이 큰 이해를 얻기 힘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돌 산업에서 배출해내는 음반 판매량과 일반 아티스트 영역에서 내놓은 팝, 대중음악 산업권에서 내놓은 판매량이 역전한 것이 1989~1990년 사이라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아이돌 분야는 이미 영화, 광고, 패션업계 등으로 변화되고 있었고 가창력이 아니라 우선은 미모와 그 외 탤런트 성향(주로 기초 연기력)만 있으면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고 이후에 규격화된 판매기획에 따라서 유명 작사 작곡가가 좋은 곡을 제공하고 광고나 드라마와 함께 동시에 발표해서 다양한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이로서 80년대의 가창력(노래중심)을 선보인 한 아이돌과 90년대의 저연령, 미모, 연기력 + 가창력이라는 형태로 구성된 아이돌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일본 경제와도 민감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이 됩니다.

폭발적인 경제부흥기가 선보였던 70~80년대를 거쳐서 일본 버블경제가 터지면서 휘청거림을 시작한 1990년 초 전후에는 어려운 경제여건을 밝은 형태로 구성해 보여주려는 모습 때문에 광고나 드라마 구성 등에서 대형작품 제작보다 효율성이 좋은 신인 아이돌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존 아이돌 시장의 변화, 또는 구성을 바꾸는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음반 시장을 통해서 배출된 아이돌이 여러 가지 상품성을 보여주면서 판매증진을 보여주었던 것을 볼 때 반대로 다른 시장에서 배출된 아이돌에게 음악시장공략을 맡기는 형태였습니다. 이미 코미디 시장에서 진출한 몇몇 스타들이 그런 형태를 선보이고 있었고 복잡 다난해진 연예계 구도는 (기획은 모() 기획사가 하지만 탤런트가 가수활동을 하기위해서 필요한 자원은 타 기획사, 또는 관련 기획사를 통해서 진행을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적대 기획상품(아이돌유잇)이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형태 등) 더욱 복잡한 시대상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어떤 아이돌은 싱글 앨범만으로만 음악이 존재하고 정식 앨범으로 음반이 나온 적이 없는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게 됩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음악이나 특정 드라마 주제가 등은 정식 앨범을 볼 수 없는 상황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80년대부터 조금씩 강화된 비주얼 뮤직 계열 아이돌과 그룹활동도 갈수록 복잡한 음악시장을 더욱 다변화 시켰습니다.

 

대표적인 아이돌 형성구성을 보면 ‘CM이라는 형태로 데뷔를 인상지은 기획이나 이벤트도 만들어졌고 그 영향력은 아까 이야기한 국민 미소녀 콘테스트와 함께 다양한 관록을 보여주게 됩니다.

특히 기본 미소녀 그랑프리 항목이외에도 연기부분과 모델부분, 가수부분으로까지 수상기준을 넓힌 미소녀 콘테스트는 참 묘한 형태가 되었다고 하겠지요. 1987년도 후지타미 미키:藤谷美紀가 미소녀부분에 그랑프리를 자지했을 때도 그냥 단순화된 형태였지만 1989년에는 음악부분이 신설되어 마츠다 주리아:松田樹利亜가 그 모습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1990년대에는 모델부분이 등장했고 1992년부터는 미소녀그랑프리, 모델부분, 연기부분까지 보여주면서 굉자이 대립적인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CM관련 리서치 그룹 중 하나였던 대학관련 미소녀 연구회(또는 연합)들은 1990년부터 독자적인 선출방식을 통해서 ‘CM아이돌을 선출하게 됩니다.

1990년에는 그리코(グリコ)광고에 나왔던 사쿠라이 사치코(桜井幸子)는 첫 선출의 영광을 얻게 되면서 이후에 앞서 포스팅 했던 고교교사드라마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이후 지금까지도 미인 여배우로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오쿠누키 카오루(奥貫薫)는 미소녀 콘테스트 중 하나였던 영점프 그랑프리에서 선출된 이후 그렇게 큰 활동을 보이지 못했지만 이 CM아이돌로 선정되면서 빛을 봤습니다. 다카하시 리나(高橋里奈)와 더불어 주목도가 남달랐고 후지타니 미키(藤谷美紀)나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ひろ) 등이 역시 이쪽으로 거론되었습니다.

물론 1990년도 전국민 미소녀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한 오다 아카네(小田茜)도 여기서 주목을 받았고 91년도 CM아이돌로 히트를 보장받은 키쿠치 모모코(菊池桃子)와 크리스마스 익스프레스 광고로 히트한 마키세 리호(牧瀬里穂)1991년을 휘어잡은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 미츠키 아리사(観月ありさ)와 함께 3M으로 시대를 날렸습니다. (이 세 명 다 영문이름에 M이 들어가기 때문)

이후 다카하시 유미코(高橋由美子)를 비롯하여 와쿠이 에미(和久井映見), 이지마 나오코(飯島直子), 니시다 히카루(西田ひかる), 히로스에 료코(広末涼子), 나카야마 에미리(中山エミリ)등이 이 ‘CM걸 아이돌로서 그 매력을 확보합니다. 다카하시는 애니메이션 테마곡으로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 만큼 많은 취미인들에게 신선한 매력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거론한 아이돌들은 대부분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데뷔를 해서 아이돌 산업에 뛰어든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후 장기 연예생활을 하면서 탤런트, 배우, 모델 등으로 활동분야를 개척해 나갔다고 하겠지요.

반면 정통파 아이돌의 지위를 쌓아나간 존재들도 있습니다. 남자로서 1970년대 초에 등장한 사이죠 히데키(西城秀樹)나 코 히로미(ひろみ)는 지금까지도 그 가수 겸 엔터테이너 역할을 잘 지켜나가고 있지요. 8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아이돌들도 거꾸로 가수에서 다른 분야로 활동범위를 바꾸어 나갔습니다.

니시무라 토모미(西村知美)를 비롯하여 사카이 노리코(酒井法子), 모리다카 치사토(森高千里), 니시다 히카루(西田ひかる), 타무라 에리코(田村英里子)등이 꾸준히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한다면 90년대에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아이돌이라는 존재들이 특성화되어 등장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남성 아이돌그룹의 전통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SMAP을 비롯하여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싱어 오구로 마키(大黒摩季)도 초반에는 아이돌로 시장에 진출판로를 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반면 1992년에 여성댄싱 아이돌 그룹으로 등장한 슈퍼몽키즈(スーパーモンキーズ)의 메인보컬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는 이후 1995년에 독립해서 솔로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연예기획사의 기획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만 가창력이 좋았던 그녀를 억지로 유닛화시키고 아이돌스타일로 귀엽게 팔 수밖에 없었던 일본 연예기획 시스템에 대한 의문도 남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1994년에는 역시 장수 아이돌그룹으로서 그 위치를 보여준 TOKIO가 등장을 했고 슈퍼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었던 우치다 유키(内田有紀)가 모델업에서 아이돌로 전환하는 형태를 통해서 그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94년에 특징이 있는 사운드연출로 자신을 보여준 hitomi의 모습에서 신선함을 느꼈다고 하겠지만요.

 

1983년에 데뷔를 한 체커즈(チェッカーズ)90년대까지 꾸준히 매력을 잘 보여주었지만 해체를 했고 1984년에 등장한 소녀대는 매력적인 구성으로 다양한 음악을 선보였지요. 1985년에는 소년대(少年隊)가 화끈하게 매력적인 남성 아이돌 유닛 경쟁에 불을 붙였고 가창력이 좋은 아이돌 오기노메 요코(荻野目洋子)와 사이토 유키(斉藤由貴), 혼다 미나코(本田美奈子)도 이때에 등장을 했습니다. 물론 1985년에는 오냥코 클럽(おニャンクラブ)과 우시로 유비사사레구미(うしろゆびさされ)가 등장을 하면서 굉장히 묘~한 아이돌열전(속칭 기획사의 아이돌 판매전쟁)이 선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88년에 등장을 한 아이돌 여성 유닛 Wink와 더불어 남성 4인조 아이돌 그룹 오토코구미(男闘呼組), 89년에 선을 보민 CoCo는 강력한 화제성을 낳았지만 결과적으로 장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특이한 구조라고 한다면 1991년 비비퀸즈(B.B.クイーンズ)의 백 코러스팀으로 시작한 Mi-Ke3인조 여성아이돌 유닛 치고는 특이한 경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 있었던 저로서는 공장히 많이 들었던 음악 중 하나가 Mi-Ke의 데뷔곡 추억의 쿠쥬쿠리하마(九十九里浜)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거론하지 않은 수많은 아이돌이 다양한 시대에 등장하고 사라져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마나 여기서 거론한 몇몇이 그나마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한 형태라고 하겠지요.

 

 

귀국후에 보게된 일본 아이돌시장은 1995년에 등장한 V61996년에 등장한 T.M.RevolutionSPEED, PUFFY가 매력적인 재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코마츠 미호(小松未歩)는 애니메이션 명탐점 코난주제가와 함께 1997년을 빛냈습니다. 1997년의 남성 아이돌이라고 하면 역시 킨키 키즈(KinKi Kids)를 빼놓을 수 없지요.

더불어 1997년이라고 하면 수많은 아이돌 팬층에 변화를 가져온 모닝무스메(モーニング)가 등장을 했지만 제 관심밖이다보니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저는 아스트로보이 아톰때문에 좀 나중에 알게 된 홋카이도 출신 여성 아이돌 유닛 ZONE2001년에 데뷔를 했고 코다 쿠미(倖田來未)가 제법 색다른 전략으로 아이돌 시장에 진입을 했습니다. 2001년을 빛낸 아이돌로서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라는 이름을 자주 들을 수 있었고 남성유닛EXILE이 등장을 했지만 이쪽은 제취향이 아니어서 좀 거시기 했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에 들어온 것은 2003년에 등장한 오츠카 아이(大塚愛)인데 상쾌한 음과 즐거운 느낌이 좋아서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발 기획 아이돌 동방신기(東方神起)가 일본 시장에 등장한 것이 2005년으로 제법 놀랐지만 영화 나나때문에 알게 된 실력파 아이돌 이토 유나(伊藤由奈)가 부른 ENDLESS STORY는 나름 저의베스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05년에 등장한 Perfume은 살짝 묘했지맘 설마 20062월에 그 무시무시한 아이돌 그룹AKB48이 그렇게 등장을 할 줄을 미처 몰랐지요.

이후로 일본시장에서 거론하는 아이돌이라는 형태는 굉장히 묘한 형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를 다시 해보아도 리아 디종(リア・ディゾン)같은 형태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일본 아이돌 산업은 이미 무너져 있는 상황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