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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신념과 행동과 취미생활

실생활에 있어서 어느정도까지가 취미영역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박태환이 멋지게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면서 찡~~해지는 것은 당연히 민족, 국가적 이해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취미영역에서도 알게모르게 국가관, 민족관, 세계관이 의견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좋다, 나쁘다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형태인데 이런 부분은 확실히 이전과 달리 더욱 활발하고 세분화된 정보교류덕분인지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경우는 그 형태나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정신, 사고(思考), 어떤 큰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 사상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좀 거시기 해지는 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취미로운 모임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잘 안나오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브레이빅이 벌인 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양한 해석, 이해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중2병이라는 형태로 지칭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찌질이, 중국에서는 벤단이라고 하면서 비일상적인 형태로 고정되어가는 형태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나이대비로 볼 때 그정도 생각의 길이밖에 못가지는 경우는 제법 많은 편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대부분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겪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일말의 이해심도 생길 수 있다고 하겠지요. 순수하게 자신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한 행동이락 해도 그것을 분석하고 다시 정리하는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논리적이고 논술적인, 학문으로서 이해될 수있는 여러가지가 대비되면서 새롭게 정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문화세계를 살아가는 것은 한국과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더 심화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복합되어 하나의 나라, 경제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분에 브레이빅은 오히려 극동나라 중에서 한국과 일본을 순수성이 있는 보수적 민족국가로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르웨이는 아무래도 북유럽 국가 중에서 지금현재를 돌아보아도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이해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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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취미로운 문화영역이 극단적으로 적어진 생활문화권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본이 패전 후에 취미로운 문화영역을 적극 권장한 것은 그만큼 다른 분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성장하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고 그런 취미로운 형태는 여타국가와 비교해보아도 굉장히 선진성이 강한 형태입니다.

한국은 여러 외세의 침략을 견뎌내면서 지금까지도 그 민족관념이나 국가관을 잘 지켜나가면서 세계 여러곳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나라이지요. 경제여건이나 지역적 형태를 보아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분단국가 한국이 해외에 비추어지는 모습은 굉장히 묘하게도 경이로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도 비롯 수는 적지만 취미로운 문화영역에 있어서 많은 것을 투자하고 소비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또 한국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됩니다. 물론 '오해'스러운 소지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제법 엉뚱한 소리가 사실로 정착되어 있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의 모든 면을 다 알고 정확한 판단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적, 정치적 이해까지 더해지게 되면 사실 어느나라나 자국의 이해관계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을 알고 있고 그것을 공공연한 비밀로서 묵인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겨우 20여개국을 돌아본 주제에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하는 부분도 있지만 경제와 문화여건이 어느정도 수준에 있어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취미생활은 확실히 여타 근거와는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존재라는 것과 '무해무익'한 존재라는 것 중 과연 어떤 것에 더 비중을 둘지 모르지만 사건, 사고를 일으키기 전에는 무해무익한 존재로 보였을지 모르는 녀석이 빡돌아서 자기 주장을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성명과 더불어 사건을 일으키고 법적구속을 당한 상황에서도 자기 신념하에 벌어진 행동에서 어떤 현실과도 어울리지 않는 자기만의 세상을 주장하는 것은 확실히 인간이라는 존재 이하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개성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확실히 그 문화가 어떤 형태로 사회적 이해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릅니다. 실제 유명한 일본 2채널을 비롯하여 각 나라에 있어서 실존하고 있는 멍멍한 사이트 채널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용자들의 이해력은 굉장히 편협하거나 극단적인 형태를 가지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부분들은 대부분 떠들기 좋아하는 일부 멍멍한 인간들이 하는 표현을 미디어들이 그냥 앞다투어 대중의 이해, 대중이 하고자 하는 말로 사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90%는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라고 해도 그중 1%가 떠들면 그것이 다른 90%가 하는 이야기처럼 포장을 해서 발표한 다는 것이지요. 사실 정치세력이나 종교권을 보면 영향력이 있는 1%가 하는 말에 대표성을 더해서 전체의 의견으로 치장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그 안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져야 하는 존재들이 마구잡이로 아전인수와 같이 자기 상항에 맞게 이해, 편집구성해서 발표하는 모습도 이제는 너무나도 뻔한 모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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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영역에서 볼 때 물리적인 변화, 특히 금전적인 상황으로 이해되는 형태가 아니면 거의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입니다. 또한 다문화(多文化)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사실 실제 경험하는 것과 그냥 알고 있는 것은 다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근접한 국가들은 대대로 역사적으로 좋은 이해관계를 구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보면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들이 있고 지금까지도 포르투갈을 과거의 영광을 가지고 지금 현대를 만들어나가는 현실입니다.

문화적으로 우수하다 어떻다는 것은 대부분 얼마나 강력한 무력, 경제력을 바탕으로 발생한 희생을 기반으로 구성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대문화가 발달하면서 경제적 플러스 요인에서 강력한 기반으로 등장한 것이 여성의 존재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간 이해는 과거에 단순하게 사랑과 경제의 법칙으로만 존재했지만 이제는 새롭게 생산되는 문화적 생산요인까지 포함을 하면서 문화적 개발요소에 있어서 극단적인 원인으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성적문화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이제는 문화, 경제, 심지어 무력집단에 속한 경우까지도 여성의 존재는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행동을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으로 존재를 하게됩니다. 실상 그것도 대부분 사회, 문화가 원한다는 형태를 제멋대로 규정화시켜서 그 지역, 문화, 민족에 따라서 미인, 대표가 될 수 있는 여성상에 대한 기준을 바꾸어 교류하고 있기 때문에 규격화된 문화형태를 가지고 나가고 있는 선진국들은 대부분 묘한 결속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안에서 취미생활권에 속할 수 있는 존재를 말할 때 여성이 가지고 있었던 생산성있는 취미문화는 단순하게 놀이만으로 이해되는 남성의 취미와 다른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문화적인 해석을 떠나서 여성의 인형놀이와 남성의 인형놀이는 그 이해와 상징성이 전혀 다른 형태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남자는 그것을 가지고 싸움을 시키면서 놀지만 여자는 그것을 가지고 사랑행위로 즐겨하기 때문에) 현대문화에서는 취미로운 행동영역도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평가하게 보고 있습니다.

개발분야에서 조금 더 높은 창의성과 문화적 이해, 사고의 성숙함을 위해서 선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미, 유럽 문화 기준은 우수성과 더불어 다양한 가능성을 이야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그것에 따른 다양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화적 한계는 이미 넘어섰고 세계영역이 좁아지고 있는 만큼 단일국가관, 문화적 이해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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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서, 또는 동양인이라서 서양인이라서 라는 형태로 공감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내가 아는 존재에 대한 응원, 이해라는 형태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이겠지요. 보수적인 형태로 본다면 이국인들의 결혼과 문화를 꾸며가는 것과 더불어 취미생활분야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구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 일본을 비롯하여 생성된 만화문화는 한국과 중국에 그 영향력을 발휘했고 나름대로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대한 구성을 잘 보여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아시아만화영역과 미유럽 카툰 문화가 가지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확실히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지금에 와서는 서양게임과 동양게임의 축을 다르게 바라보는 기준까지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문화적인 이해나 사회적인 이해축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나름대로 계산된 영역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캐릭터는 대부분 캐릭터 하나만을 가지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포한되는 작품, 스토리, 배경 등이 작품성향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작은 동양의 섬문화에서 중심적으로 개발되는 취미문화가 왕국으로까지 불리면서 여러나라에 비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근대 영화, 문화산업에 있어서도 개성이 중요하게 표현되는 것과 더불어 캐릭터 성격은 굉장히 강한 신화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요. 이제는 소설, 장난감, 이벤트영역에서도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런 캐릭터들을 이상으로 여기면서 그 행동을 자신이 가지는 신념으로 승화(昇華)시키는 모습도 보게됩니다.

이 과정이 단순한 개인의 이해정도로 끝나는 경우라면 다행이지만 타인, 타문화에 대한 이해로까지 연결되면서 극단적인 자기신념을 구축하게 되면 좀 문제가 되기도 하비다. 내가 보고 이해하는 세계가 우선적으로 결정되면서 타인은 내 생각, 결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제적인 개념을 찾게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내 생각은 당연히 상대방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내 편의에 의해서 완성된 세계관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형태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런 면들은 취미생활, 영역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열성적인 팬층이 존재하게되는 원리와 같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외에는 완전히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형태로 존재되는 경우도 보게됩니다. 내 세계만 있으면 괜찮다고 말을 하는 경우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실질 우리 세대를 넘어서 60~70대 정도 되는 연륜을 가지고 취미로운 세계관을 가진 존재는 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대부분 취미생활과 함께 만들어가는 자기 세계관 연륜이 약 10년~20년 전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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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이 시대에 있어서 취미영역이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신규 20대보다 30대 후반, 40대 영역이 더 높은 비율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적인 부담과 더불어 신문화영역을 이끌고 선도하는 형태는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는 그냥 별 생각없이 접근해나가는 형태지만 그 경험이 축적되어가는 연식을 거치면서 자기규격을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라는 규격기준을 만드는 것은 본래 본인이 속한 사회, 문화에서 결정하는 것이지만 이 경험치가 늘어나가는 현실에 있어서 자기 규격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남의 기준을 넘어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가지고 현실을 만들어가는 규격과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경우를 보면 역시 현실중시형이 될지 이상적인 취미환경을 위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갈지 고심을 하게 됩니다. 저도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을 지나가면서 자기를 형성,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취미청춘들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게임에서 레벨올리기, 아이템 찾기에는 열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왜 경험치를 쌓아서 자기 레벨을 올리려는 생각을 안하는 것일까요?

 

게임을 할 때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자기 현실에서는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 게임은 게임, 현실은 현실이라는 놀이감각외에는 아무런 것도 가지지 못하는 단순함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적인 미소녀와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게임에는 딩가딩가하면서 현실에서 만나서 고심하고 격정변화를 나누어가는 상황에는 거리를 두는 경우를 보면 참 묘한 괴리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