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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Comics

가장 병X같은 만화독자

이래저래 알고있는, - 그렇다고 해도 직접 얼굴을 보고 대면한 것은 아니지만 - 한 이웃블로거는 일본출판사에서 근무하는, 그러면서 본래는 만화스토리 창작에 열정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지식적인 수준을 넘어서 일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대외적인 면들을 보고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라고 하면 편협한 자기세상만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라는 말을 하게도 됩니다.

특히 소수문화권이라는 만화관련이야기는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유통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 3가지에 관련된 일을 해본 사람이라는 점에서 아주 적지만 표면적인 부분에서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취미적인 시선에서 보고 즐기는 면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인간관계때문에 알고지내는 인간들도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시대적인 이야기를 하게된다고 해도 결국 그 결과라는 것은 말을 하고 떠드는 것과 다른, 그것을 공감하고 대중문화로서 이해하는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을 하게됩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 포스트들, 글들을 보게되면서 생각을 해보게됩니다.

'세상의 1/10이라도 알 수 있다면'………이라는 지적인 욕구에 빠져서 무엇가를 알고자 하는 심정에 빠지지만 정작 바로 이웃, 내 가족의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저도 주변을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뀐 것은 '남의 생각을 알게될 수 있는 작품세계'를 통해서 더욱 다양한 스타일을 만나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독자라는 시선에서 즐겨보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저는 이런 취미로운 이야기를 하게되지만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비롯한 해외 언어를 모르는 사람이 그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고자 할 때 그에 필요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1차적으로 지식제공자들의 역할이라고 말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작품이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이렇게 평이 되는 작품입니다."

까지가 일반적인 지식제공자, 그 언어를 가지고 이해하는 대중적인 평론을 기반으로 해석된 이해론을 말합니다.

포털이나 잡지, 관련 문화 미디어에는 타이틀 / 관련된 기초지식(작가/감독/배우/페이지분량이나 영상시간 등) 등을 바탕을 알려지기 쉬운 포맷을 기본적으로 배포하게 됩니다. 대부분 1차적인 정보에는 스토리 전반에 대한 간략한 해설과 함께 주관적인 평이 들어가게되면 여기서 평론가적인 입장이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1.5차적 단계를 가진 문화미디어의 전파라고 하겠습니다.

그 단계는 대부분 홍보적인 부분이면서 세상에서 알려진 초기 '입소문'단계가 발전되어 이제는 거의 순식간에 "홍보 시작이다"라는 신호가 떨어지면 거의 전세계에 확~ 퍼져버립니다. 홍보라는 수단으로서 사용되려고, 알려지기 위한 지식기반 고속도로는 그 도로를 이용해서 밀수, 별도 이익을 얻고자 하는, 또는 나의 이익이 아닌 다른 이의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는 형태로서 대립되는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창작감각을 제작해서 실체로서 완성하는 단계를 0이라고 하고 그것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1이라고 하지요.

0에서 1로 이어지는 전달은 0다음에 1이 있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룰을 통해서 입니다만,

0에서 1로 전달되는 과정에 있어서

~0.1 ~0.2 ~0.3 ~0.4 ~0.5 ~0.6 ~0.7 ~0.8 ~0.9. 그리고 1이라는 단계로 도달을 한다는 세분화된 구분을 수학적으로 나누어보고 여기에 통계와 금전적인 개념을 넣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창작, 제작 - 유통 - 소비' 라는 개념으로 통념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정도 사회적인 룰이면서 경제개념에 있어서 필요한 수단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중간에는 통화개념이 있어서 금전을 지불하고 즐긴다는 점에서 '소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고 하겠지요.

창작 제작된 부분이 근래에 들어서는 '유통단계'(여기에서도 금전적인 소비가치가 추가됩니다)를 거치지 않고 그냥 바로 창작&제작 이 직접 소비로 연결되는 기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본래개발된 사회적인 금전가치는 어떤 형태로 보게될까요?


창작&제작이라는 단계에서 판매라는 개념으로 볼 때는 일반적으로 1/3이 실제작단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 1/3이 유통, 보관, 관리 등에 필요한 형태로서 소비되고 남은 1/3이 이익이라는 형태로 제작자에게 돌아오는 '가치'가 됩니다.

창작&제작에 소비된 시간과 노력이 결과로서 1/3에 해당하는 이익을 얻지 않고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종교를 비롯한 수 많은 사회제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노력의 대가에 대한 가치는 그만큼 많은 사회경제의 기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제도가 '부와 빈곤'을 위한 성립가치는 아니라고 해도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계파간 이데올로기로서 이익과 가치에 대한 혼돈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형태로서 0-1이라는 기존적인 형태는 영원한 사회순환구조로서 존립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생산자-소비자 라는 형태는 '지역간 거리'에 의한 실질적인 형태때문에 유통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제공자-소비자라는 형태로 널리 알려지지만 이것은 실제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유치원에서 살고있는, 그냥 성장하는 것만이 목적인 아이들의 심리사고일 뿐이라고 하겠지요.


특히 인터넷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사회관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에 있어서 생산자가 주변에 없고 그저 제공자와 소비자라는 인식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입으로 먹고 소비하는 삶의 영양소, 음식들도 제공하는 곳과 자기 생활만을 직결시킬 줄 알지 그 제공자에게 생산해서 주는 존재에 대해서 까먹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사회관계가 요구하는 기초적인 것을 제외한 것으로서 경제적인 부와 지위를 논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인 대중사회에서는 향락이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행복에 대한 가치관은 산업화, 정보화, 선진화되어가는 가운데 요구되는 수치가 높아집니다. 의식주+향락에 대한 기준이 10인 사람에게는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행복한가? 라고 물었을 때 10이 충족되기 때문에 행복 100%라고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의식주+향락 기준이 100인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한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 10은 넘지만 30~50정도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5~60%라고 답을 하게 됩니다. 비교되는 가치관에서는 100%와 60%라는 수치를 보여주지만 행복수준에 대한 논을 보면 '질적인 부분이 더 높다'라고 말을 합니다.


만화책 10권을 보고 그것으로 행복감을 느낄 때와 만화책 100권을 보고 보고 느끼는 행복감이라는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

또 장르라는 것이 있지요. 일반사회에서 말을 하는 만화책이라는 종이책자에 표현되는 잉크 선에 의해서 창조된 세계관이라는 것은 다양한 장르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소년, 소녀, 청소년, 성인 영역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현장르에서는 실사, 청춘, 스포츠, SF,  판타지 등등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말합니다. 이것도 사실 향락의 하나로 생각하는 '만화책 읽기'에서 다시 또 세분화되는 것으로서 1/100에서 다시 세분화되는 것이니, 1/100에 속한 향락문화 중 하나이지만 그 안에서 다시 소녀만화, 소년만화, SF만화, 판타지만화등을 좋아하고 성인만화, 성적인 표현을 듬뿍 포함한 작품도 좋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그안에서 0.1~0.2를 나누게 되기 때문에 소수문화의 소수점에 도달하는 영역에 속한다고 하겠지요.



보고즐기는 문화라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있는 가치관에서 판단되는 기준을 다르게 가집니다.

다만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사회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사회에 소속된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소의 말하는 '먹고싸고자고' 하는 것이지요.

인간 하나는 먹고싸고자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생성되는 부산물은 본래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하지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관계형성, 그리고 다야한 소비가치를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게 됩니다.

누구는 금수저로 밥을 먹고 황금변기에서 일을 보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집과 이불로 편안한 잠을 잡니다.

누구는 손을 밥을 먹고 냄새나는 곳에서 일을 보고 춥고 더러운 길바닥에서 죽지않을 정도로 잠을 잡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같은 만화책 한권을 가지고 논하게 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는 유명 도서점에 가서 그 책을 한권 구입해서 집에 들고와 차 한잔 따스하게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누구는 집에서 스캔된 만화를 다운해서 차 한잔 따스하게 마시면서 책을 봅니다.


상대적 가치관이라고 말을 할 수 있지만 내가 보고 느끼는 행복감을 위해서 제공자를 좋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 이것은 만화팬인가요?

아니면 만화제공자 팬인가요?


정확히 말을 한다면 만화를 만든 것은 만화가와 원출판제작사입니다.

만화가라는 존재는 직업이 아니라는 경우 독자적으로 그것을 그려서 발표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인활동을 비롯하여 비영리 판매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회적인 지위와 수입을 가지고 있고 별도시간, 자기향락적인 점으로서 그것을 창조, 제작하는 경우가 동인작가활동이라고 하겠지요.

마이너 만화구성과 달리 메이저 만화구성은 출판사, 그것을 사회에 알리는 공적인 존재인 출판사, 1차 제공자가 없이는 사회에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대중만화라는 것은 그런 관계를 통해서 세상에 나오고 있으니까요. 아이폰이라는 존재를 스티브 잡스라는 개인이 만들어 판것이 아니라 애플이라는 제공업체를 통해서 브랜드 제품으로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물론 작가적 위치에 있는 스티브에게 그 명성이 돌아가지만 이것은 어느정도 상업적인 가치를 위해서 연출된 구성이지만요. 실질적인 작업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그리고 제작, 판매유통, 홍보작업은 나름 그외 사람들의 존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손에 쥐고 애플과 스티브를 칭송합니다. 그 중간 중간에 생산에 포함된 이들에 대한 구성은 알아볼 필요없이 그것을 세상에 내놓은 생산, 제공자에게 시선을 둡니다.


'만화라는 것을 본다' 와 '만화책을 본다'는 엄밀히 볼 때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을 통해서 얻은 행복과 즐거움에서는 감상에 대한 가치관을 논하게 됩니다. 저는 이쪽에 속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보는 즐거움, 그 즐거운 추억을 남들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워낙 소수문화였기 때문에 보고 즐기는 취미로운 대화와 대화를 귀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요.


'만화를 제공한다'는 '불거리를 제공한다'라는 것과 달리 그 주체가 누군인가?

라는 부분은 '너와 내가 공범자이기 때문에 논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적인 논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불법으로 만화책 한 권 보고, 게임 하나 즐기고, 영화 한 편 본 이상 '너와 나는 공범자다'라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지요.

뭐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자체는 당연한 논리이지만 정작 실 생활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치에 대한 논리는 금전적인 경제개념에서 직접 관여된 이들에게 있어서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금연표시가 없어도 공공장소에서는 금연은 당연한 것"

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과거부터 존해했던 문화적 가치관인가? 라고 말을 해도 한국을 비롯한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태국 등에서 (이것은 제가 알고 있는 나라의 문화영역에서 보기 때문에 이정도 수준밖에 안됩니다) 볼 수 있는 가치관은 상당히 다릅니다.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사회적인 가치관에서 있어서 향락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와 함께 경제적인 기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저 피우고 즐기는 입장에 있는 소비자의 대부분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지만, 취미로운 소수점을 보는 사람은 담배의 역사나 브랜드, 맛, 그리고 스타일적인 부분과 사회적인 구조가치를 따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진품, 가품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들립니다. 대부분 담배와 소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필요아이템으로서 경제적가치와 함께 관리되어야 할 존재였지만 그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는 확실히 흑백논리로 바라보게 됩니다.


흑백논리, 삼단논법, 기초적인 사회적 가치관 들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것과는 다른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소재를 삼는 것은 제법 어려운 일입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즐기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자신이 가진 평범한 인생에서 슬픔을 느끼고 자기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바라보게 됩니다.

비극적인 논리도 아니고 절대적인 가치관도 아니지만 사람은 일신의 평안을 위해서 희생될 가치를 잘 알기도 전에 지불해 버리고 맙니다.

청춘이라는 시간을, 돈이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크고 큰 가치, 삶의 시간을 소비하지요. 물론 사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금전으로 그것을 소비하고 보충하고 있지만 '돈'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각해보는 짧은 논리만 보이게 됩니다.


간략해서 비싼 것은 이유가 있다.

명품은 비싸다. 그러니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치가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사회적인 지위가 있다(있어보인다).

이런 것을 증명한다는 것인데. 처음, 비싼 것은 이유가 있다. 여기에서 그 이유에 대한 것은 모르고 가치만 따지는 경우가 사실 대중이라고 말을 하게됩니다.


제가 알고있는 주변 인맥을 동원해서 보면 2011년 현재 11살부터 61세에 포함된 남녀. 그중에서 만화를 좋아해서 보는 이들에 대한 논리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만화라는 것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라고 한정지어 보기에는 좀 어렵지만, 외국어로 제작된 문화제품은 그 외국어를 모르기 전에는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문학작품, 예술영역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때 그것은 굉장히 문화적 사회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닌 이상 그것을 일부러 찾아보는 경우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대부분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문화영역(여기서는 한국어화)에 포함되기 전에는 무관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98%에 속한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는 생각입니다. 특히 1/100영역에 속한 향락아이템 중 하나인 만화라면 더욱 그렇지요.


A라는 사회와 문화에서 제작 - 유통 - 소비 되는 가치관을 통해 형성되는 금전기준을

B라는 사회와 문화에서 제작 - 유통 - 소비 되는 제품과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완전히 일치할 수 없습니다.

특히 그 사회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표현, 이해관계에 따라서 가치를 달리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대중적인 유행코드, 홍보의 힘에 의해서 필요이상으로 가치를 부여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힘'이라는 것은 아는 것이라는 논리도 있지만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지배되는 많은 구조도 보게됩니다.

오늘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해도 내일은 이익때문에 힘으로서 원수가 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세계정세인데, 일반 사회가 가진 가치관이라는 것은 그만큼 대립적이면서 장난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유라는 표현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라는 표현도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자유로운 표현영역에서 내가 하고픈 것을 한다 - 라는 기준에서 보여주는 것은 대단히 허울좋은 시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정치풍토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 조롱은 문화영역과는 다른 것이기도 하지만요. 비판과 조롱만으로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극상의 위치에 도달하게 되겠지요.
 

1인보다 2인이 하는 것이 덜 굴욕적이고 불법이라는 영역에서 볼 때 공죄의식을 가지면서 내가 하는 것에 대한 죄라는 것을 무마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불법과 가치가 다른 기준이 만연하는 사회, 경제적 기준에 따른 흐름을 가지고 있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인생이라고 해도 A다음에는 B가 있다. 0다음에는 1이 존재한다는 기초논리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혼선(混線), 또는 지름길이라는 패턴을 통해서 자기정당성을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남들도 하는데 내가 하는 것은 어째서?"


간단한 이야기지만 100명이라는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1명대 1명이 싸우는 것은 그냥 동네 싸움이지만 50명대 50명이 싸우는 것은 전쟁이 되고 맙니다. 사회존립이라는 기초관을 무너트릴 수 있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대립을 하는 것이지요.

'남들도 하는데……' 라는 생각으로 내가 하는 것에 대한 어떤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100명 중 1명이 비록 나쁜 일이지만 '나와 그' 둘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해달라고 말을 합니다.

아니 사실은 나뿐만이 아니라 사실 10명은 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하고 있는 것을 왜 나만? 이라는 논리를 펼치는 경우가 많지요.

앞서 말한대로 생산 - 유통 - 소비 라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것은 제대로 된 유통경로를 통한 가치관 평가인가 아닌가를 말하게 됩니다. 1차 생산은 소비될 가치를 가지고 제작되어서 가치를 부여받고 그에 따른 가격이 결정됩니다. '소비가'라고 하는 것이지요. 국가는 이 기준에서 유통되는 과정에서 세금을 부여하고 그 가치가 소비되는 사회에서 사용되는 유지능력을 위해 소비됩니다.

다만 그런 구조를 가지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는 일정기간, 일정 범위 이상으로 국가적인 법적조치가 적용될 기준이 필요합니다.

사회를 위한 필요가치에서 본다면 100원짜리 결과를 위해서 1,000원을 소비하는 일이 생기지만 사회구조를 순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판단이 서게되면 10,000원을 소비해서라도 100원을 지키기위한 모양이 성립됩니다.


다만 이런 경우 경제적인 가치론을 가지고 우선을 둔 기점을 가집니다. 100원을 지키기 위한 10,000원보다 더 큰 것에 가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큰 기준을 두지요. 소프트웨어와 달리 말입니다.

IT적 사고를 가지고 말하게 되면 소프트웨어라는 말을 하게되는 '디지털 화 된 만화이미지'와 그것을 가공하는 일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자유와 권리'를 논하게 되는 경우라면 우선 이 권리가 있어야 하겠지요. 권리가 없다면 그것을 마음대로 가공할 수 있는 사기권이 성립됩니다. 남의 권리를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사회적인 자유를 누군가가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성립시키고 싶다면 경제적인 부로 그것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참고로 법적인 논리에 따라서 '선의(善意)의 제 3자'가 존재를 합니다.

비규격적인 것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그것을 모르고 (또는 인지하지 못하고) 소유를 했을 때 그것에대한 어느정도의 면책이 허용된다는 것이지요. 장물아비에게 구입한 물건을 장물인지 알고 구입하는 것과 모르고 구입하는 것에 따라서 법적인 처벌이 달라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논리를 이야기하기 전에는 우선 '디지털화된 만화이미지' 자체가 어떤 형태로 장물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가? 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본래 아날로그 인쇄된 '만화책자'에 대한 가치는 목적에 의해서 제작된 것입니다. 개인의 소유권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유통구조에 따라 성립된 계약조건, 즉, 돈을 주고 구입한 사람에 대한 소비, 소유권 주장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똥개Z>라는 만화책을 내가 돈을 주고 구입했는데 그것을 X라는 타인인 가지고 가서 '내것이다'라는 주장을 할 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대리가치로서 구입증명이 되는 무언가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없는 상태에서 타인이 '힘'으로 내것이라고 주장을 하게되면 그것이 행복한 현실사회인가? 라는 이야기를 하게됩니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라면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이 '똥개Z'를 스캔해서 디지털 만화 이미지로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배포하는 것을 X가 막어서려고 했던 것이다!! 라는 스토리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저야 언제나 취미DB만든다고 표지 스캔을 하고 있으니 오해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정치적 현실에서는 비밀이 없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이해가 많아지는 것은 음모술수로 인한 희생을 줄이고 일반사회가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지요. 경제적 현실에서 하드웨어 신제품이 나오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하드웨어를 위한 사회가 아니가 그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기반이 어떤 영향을 보여주는가에 따라서 보여주는 현실이 많기때문에 압도적으로 시대는 하드웨어 기반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세상을 만나보게 되기 바라고 있습니다.


문화적인 면도 그렇지만 만화라는 것은 아주 많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청춘세대에서 일탈하기 좋은 잡짓거리로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 한국은 만화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이 이웃나라가 아니었다면 만화문화영역이 취미로운 구성으로 다가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은 확실히 지리적인 부분에서 보여주는 점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선진국이라는 나라가 '만화 = 흥행상업문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자유경제문화를 빨리 세상에 보여주려고 했던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문화권의 아트적인 이해부분을 논하게 됩니다. 반면 상업적인 부분이 의외로 적게 반영된 유럽만화들은 디지털 스캔 이미지로서 전파되는 과정보다 다른 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적인 부분도 적다고 하겠지만 대중성보다는 개성을 중시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가지고 말을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적은 것이 사실이지요.

유럽과 미국만화가 서양만화의 개성과 대중성에 대한 극을 보여준다고 하면 동양만화에서는 그 둘을 한 나라가 가지고 있습니다. 예, 일본이지요. 한국 만화는 충분히 한국적인 재미를 보여주고 있지만 독자적인 개성과 발전도가 아직은 미비하고 일본이라는 큰 1등급영역에서 본다면 어렵습니다. 더불어 중국은 질적인 부분을 떠나서 양적인 구성에서 엄청난 서브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문화콘텐트로서 어디까지 발전시킬지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순수잠재력이 높은 중국시장에서는 아직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작품들이 많고 아직은 작품 수준이 편향적이어서 등급 자체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요.


디지털문화가 발달하게 되면서 수많은 이들에게 인식되는 기반은 우선 그것을 통해서 만나게되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 그리고 내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나는 동질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화를 본 소감, 감상도 사실 이런 부분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너 그것을 봤니 나도 봤어"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대화 소재'로서 좋은 가치를 가집니다.

사실 영화, 시, 음악, 미술작품, 소설, 드라마, 언테테인먼트 프로그램 들이 다 그렇습니다.

보고 즐기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본 감상을 가지고 이런저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가치를 새롭게 부여받는 것이지요. 저도 취미DB하면서 감상을 쓰는데,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라고 말을 해도 본 사람이 너무 적어서 "그런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좀 슬퍼지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 때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런 좋은 작품을 주변에 알리고 전파시켜서 같은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목욕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싶어진다고 하겠습니다. 8~90년대 중반까지는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보니 주로 책을 빌려주거나 VHS테이프를 빌려주면서 너도 좀 보고 나랑 이런저런 취미이야기를 떠들어보자~ 하는 형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분실된 양은 장난이 아니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초기에도 그 속도와 활용영역에 있어서 데이터로서 전파될 수 있는 영역이 넓지 않았고, 무엇보다 소스로서 개인보관을 한다는 것이외에는 큰 용도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도 말고 만화책 1만권 넘게 모아보세요. 수납공간에 대한 부담이라는 것은 정말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때문에 과거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 서재의 크기라는 부분에서 더욱 로망을 느끼게 된다고 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더욱 어려운 부담이지요. 그게 2만권이 되고 3만, 4만까지 가게되면 다른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특히 디지털 문화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용량대비 퀄리티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좋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참고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나온, 1987년 전후에 나왔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PC라는 것을 알고 있던 3명, 그리고 아직 PC를 소유하지 않고 통신문화라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저 사이에 있었던 걱정아닌 걱정이었습니다. "미래에 가서도 사람들은 만화책을 서점에 가서 사고 볼까?"

이 부분은 실제 주변에 있던 몇몇이 통신과 인터넷 기반으로 사업구상을 하던 인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던 때입니다. 실제 주변 도전자 중 약 8명 정도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 일반적인 환경에서 보아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생각한 자기 가치관에 대한 논리는 내가 아닌 (나를 포함한 단체가 만든) 내가 소속된 그것을 누군가가 털어먹을 것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문화콘텐츠가 큰 디지털 시장 조류에 쓸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문화적인 가치는 사회 대중에서 소화되기 어려운 '만화책따위'는 그냥 큰 자본시장에 의해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때부터도 소수문화였고 문화적인 재미는 있다고 해도 아동문화이상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였던 만큼 만화따위는 그냥 취급도 안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이현세와 허영만 두 작가의 작품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린다고 해도 겨우 둘 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대본소 만화구조, 무적판의 난립, 판권 자체를 정리하지 못하고, 과거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들이 워낙 소수권에서도 다시 일부 소수권에서 보는 약자문화였기 때문이지요.


그런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어렵게 구해보는 만화, 이해를 위해서 공부하는 외국어 습득이라는 것은 일반인 기준에서 높은 허들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 88~89년 대학동아리 행사로 위장해서 일본 만화영화에 자막을 넣어 상영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3세계 영상이나 SF, 미스터리, 공포 관련 영상을 들고와 자막넣어 상영하는 것은 나름 마이너문화권에서 이해된다고 해도 만화영화, 그것도 감히 일본작품을 상영한다는 것은 아직도 대중적인 반감이 높을 때였으니까요.

참고로 몇 년있다가 'X JAPAN'팬클럽이 카페를 빌려 영상을 틀어놓고 즐기는 행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미친것들', '정신줄 놓은 머저리 애들', '무뇌아 급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타락한 놈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나름 그 시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1만원대 스테이크는 고급문화로 받아들여도, 8천원대 일본식 우동이 나오는 것은 상업적인 타락이느니, 일본에 지고 들어가는 행위라느니, 돈많은 정신병자들이 자기 부를 과시하기 위한 행태라고 비판되는 것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랍지요.
 

때문에 생각을 한 것은 한국문화영역에서 일본산 만화를 보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것이고 디지털 문화가 널리 전파된다고 해도 실제 그런 것을 받아들 수 있는 사회적인 기반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권장되지만 적국, 싸잡아 욕을 해도 모자르지 않은 일본문화권에 속한 그것을 즐기겠다고 일본어를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사치스러운 병X 행동이라고 하겠지요. 때문에 그때만 하더라고 만화를 보고 즐기는 문화적인 이해를 위해서 그것을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아보고자 하는 생각에 과욕을 부려가면서 지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말이 지나서 초고속 통신문화가 정착된 한국은 2002~3년에 있어서 국내와 해외조사에 의해서 가장 높은 해적판 소프트, 불법자료의 공유기반을 가진 곳으로 지적되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일반출판 문화권에서 요청한 것도 있었고 (시장개방에 앞서서 조치를 한 것이었지요) 실제 저희 때와 이후 10년정도까지도 교수들이 원서 (아니면 카피한 책자들을 가지고 와서 읽더라도) 관련으로서 논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대학 주변에 원서 복사해주는 복사집이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나름 새로운 경제순환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학만 들어가면, 대학에서 하는 것은 다 정의(正義)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모습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시대가 변한 지금에 와서도 대학, 대학졸업자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변화는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새대로서 성장한 동년배들이 오히려 자식들을 더 큰 대학, 사회성공자의 지위로 몰아가려고 하는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다변화된 사회이지만요.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빨도 좋은 논술력, 악기 한 두 개는 다루지요, 상당히 특징적인 능력 한 두개도 갖추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취미로운 영역으로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저와 달리 완전 네이티브한 생활력 수준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산 만화 콘텐츠는 여전히 저급한 취급을 하게됩니다. '오덕'이라는 표현 자체가 비하적인 표현에 속한 것을 비롯하여 그런 오덕스러운 문화권에 일본산 만화, 취미아이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많이 거론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나마 '게임'이라는 것은 국내 문화적인 전략적 지위가 높아져 감에 따라 게임을 즐긴다는 것에 대한 부담적인 요소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만화를 본다, 만화따위를 문화적인 가치로선 논하려고 하는 모습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교보문고 외국어 서적 코너에서 만화책이 진열된 곳에서 주변 사람 다들리게

"그런 걸 왜 사봐? 다운받아 보면 그만이지. 책나오는 것보다 인터넷이 더 빨라"

당당하게 말을 하는 인간들도 많아진 것을 봅니다.

과거에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해도 이렇게 뻔뻔해지는 모습이 아주 당연합니다. 더불어,

"나도 다운받아 보고 마누라도 다운받고 내 자식도 다운받아서 보여준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내가 아니니까 상관이 없다!

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보지만,

요럴 때는 아니고, 이럴때는 그렇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은 정말 말바꾸는 정치인이나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만화를 보고 좋은 감상을 나누는 것이 화제가 아니라

남들보다 빨리 스캔된 만화를 보는 것이 자랑인 모습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요.


볼가치가 없는 작품을 보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하는데 그런 가치관을 남에게 맡겨버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많이 팔린다, 많은 애들이 본다는 것을 가지고 좋은 작품이라고 일관된 감상을 가지는 것보다 내가 보는 관점과 내 가치관을 확실히 가지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필요한 구성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내가 본 감상과 다르다고 남들과 키보드 대립을 보여주는 것도 참 재미있는 꼴이 아니라 병X 꼴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니 아쉽게 느껴지지요.


재미있고 보고 다양한 즐거움을 나누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취미생활은 많은 이들에게 권장하고 싶지만 꼭 애들은 정신없는 소리를 하기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