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치조 유카리가 오랜만에 장편으로 연재할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생각하면 근래에 와서 조금 기운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그림체도 많이 바뀌었고요) 1~2권을 본 친구들이 칭찬을 하기에 4권이 나온 다음에 몰아서 봤습니다.
오옷! 이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전개였습니다. 게다가 오페라를 소재로 한 두 히로인 캐릭터의 삶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무언가 모를 추억어린 정석(定石)을 느끼기도 했고요. 8~9권 정도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설마 설마 했던 그런 결말을 보여주어서 조금 아쉬웠다고 하겠지만 (그런 고전적인 결말이 아니었더라면 한 70점대 후반에 가까운 감상점이 나오는 작품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흥분과 두 캐릭터, 그리고 남성 제군들에게 많이 빠져서 볼 수 있었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고 보면 아무래도 혈통,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보게 됩니다. 그나라의 예술이 아니라 타국의 문화예술 분야를 습득해서 유명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확실히 힘들지요.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대표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저는 역시 조수미를 떠올리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상반된 환경을 가진 두 여인이 한가지 목표를 위해서 충돌, 대립하고 다시 같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대립은 전형적인 구성이라고 하겠지만 타고난 환경의 변화와 극적인 향상심은 서로에 대한 극적인 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경우 있지요. 1+1이 2가 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1+1이 5나 10이 되어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경멸하는 상황에서도 화음을 맞추는 순간에는 서로의 인생과 이야기를 이해해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절대적인 시간이 말입니다. 이치조 유카리가 보여준 여러가지 드라마 구성 중 굉장히 도전적인 연출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와 감동이 함께 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것은 작가가 그만큼 경험을 다양하게 해가면서 얻게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질적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사미 시오(麻見史緒)와 미도리카와 모에(緑川萌)라고 할 수 있는데 둘은 빛과 그림자라는 형태로 볼 수 있는 캐릭터 구성을 보여줍니다. 부자에 모자란 것 없이 자라면서 성악에 대한 꿈을 키워온 시오와 죽도록 고생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저주하며 어떻게해서든지 그것을 벗어나고픈 가난한 예술가 모에의 만남이라는 것은 참 다른 것을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유학시절에 만나게되는 경험에서도 시오는 안전하고 행복한 환경을, 모에는 처절하게 나쁜 일만 당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기 힘든 생활을 합니다. 때문에 이 둘은 서로에게는 없는 그런 음색, 표현력을 가지게 되고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 고민하고 고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존재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서로를 인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목 자체가 '프라이드(Pride)'라는 것 때문에 인간 자체의 존엄성, 가치에 대한 배경을 깔고 간다고 생각을 했는데 자신의 인생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이 되기위한 여인들의 자존심 지키기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해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란마루가 어떤 형태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나갈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진노 타카시(神野隆)처럼 그정 맹맹한 캐릭터로 봤던 인물에 대한 접근도 새롭게 보이면서 보는 맛이 참 좋았다고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맛을 본 이치조 유카리 식 만화의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다고 하겠지요. 이 작품은 2007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부분(文化庁メディア芸術祭マンガ部門) 우수상을 받았고 2009년 1월에 실사영화가 제작되어 등장을 했었습니다. 이쪽은 조금 미스캐스팅이 있어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맞았지만 - 연기력이 워낙 망조여서 훌쩍였습니다) 영화 자체로 만든 것이 무리였다는 감상을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원작만화로서만 감동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