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오브 컵스
미국 / Knight of Cups
이미지 드라마
감상 매체 BR
2015년
즐거움 50 : 24
보는 것 30 : 19
듣는 것 10 : 6
Extra 10 : 6
55 point =
사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적 구성이 있습니다.
영상산업의 한 축을 자랑하는 영화산업에서 본다면 또 다른 의미를 말할 수 있겠고, 그런 아트, 탐미적 의미에서 돌아보게 되는 인생구성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더불어 그 의미심장한, 그러나 졸릴 수 있는 영상 흐름도 어떻게 보 는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를 보는 의미를 심도 있게 보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영화로서, 스크린에 올려진 거대한, 또는 등신대 크기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시작적 유희에 따른 심리상태(또는 압박감)을 보면서 이해한다고 합니다.
실제 이야기는 러브스토리, 사랑을 주제로 한 테마인데 정작 사랑이라는 관련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영상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더 묘한 감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순화된 부분이 많다고 하겠지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개념은 아무래도 여러 가지 시각, 촉각, 청각, 미각, 후각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시각이라는 부분이 차지하는 부분은 정말 많지요. 사랑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 대부분을 차지할 수는 없다 해도, 49%에 가까운 구성을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남아있는 그림자, 찌꺼기를 한순간의 반짝임에 모두 걸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 한순간이 영원을 장담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영화 자체가 무척 불편한 구성인 것은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터로 쏴서 보고, 2번 정도 봐야 무언가 이해가 되는 과정이 나타났지만
물론 개인적으로 유희적 개성을 따지고 본다면 이 부분이 가장 에헤헤 했지만요.
더불어 꿈꾸어 보는 것과 실제 해보는 것의 차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나름 거대한 장난감 서킷을 만들어 굴려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실제로 이렇게 구성해놓고 보면 그 엄청난 소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악하게 다가오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결과적인 부분이라 말한다면 역시 대형화면, 최소한 사람의 시선이 받아들이는 시작적 이해관계가 펼쳐지는 크기 정도는 해놓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니까요. 시끄러움 속에서 정적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사랑보다는 선문선답을 하는 것 같은 생각도 하게 되는데 실상, 우리들의 삶에 완벽한 답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한 의미들이 가지는 현대적 아트 구성을 바라봅니다.
대중적인 이해관계를 바라보면 사실, 상업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보다 저예산, 컬트영화 쪽이 더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보면 대단히 이름 값있는 배우들과 감독, 작가, 촬영감독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에 치중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감상도 생기지요
사랑의 감정은 대부분 인간들이 자신이 혼자 가질 수 없는 감정의 공유, 그로 인한 만족과 안식의 상반된 이야기를 말하지만 정작 그 감정의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나와 상대의 감정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감정이 주요 관점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결국 사랑의 의미보다 과정에 있어 결혼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를 논하기 보다, 사랑을 하기 때문에 결혼, 함께한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결국 어떤 형태로건 자신의 삶에 무게가 더해진 사람들이 겪는 소외감, 정신적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답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