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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

행복한 만화와 애니메이션 - 2 / 44 폭력만화

실제 제가 만화라는 것을 보고 즐기는 가운데 있어서 생각이 없었던,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폭력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다른 인식을 가진 것을 알게 됩니다. 과거에는 생각이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였지만 생각을 해보면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었던 표현은 굉장히 자극적인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적인 유교배경에서도 권선징악(勸善懲惡 : 착한 일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안에서 선과 악에 대한 인식과 기준. 여기에 어떤 형태로 벌을 주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언제나 주인공을 선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에 대처하는 입장은 대부분 직설적인 폭력형태를 말하게 된다고 하겠지요.

 


실제 그런 과정은 일반적으로 때리거나 부수거나 무찌른다는 표현으로 나오기 쉽기 때문에 전쟁, 투쟁이라는 형태를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상대를 무찌르는 과정에 있어서 당연하게 동반되는 표현, 폭력을 보여주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조금 더 철이 든 이후에 따로 논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무조건 악은 없애야 하는 존재로서 인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쁜 녀석을 개선시킨다는 이야기보다 때려 부셔서 승리를 쟁취한다는 기본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에 대한 것에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고 하겠지요.

그런 저에게 폭력이 표현되는 만화의 기준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해준 것은 <B B>라는 만화였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 어떤 형태이건 간에 초반에 보여준 열정과는 다르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인간의 폭력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폭력을 보여주는 만화의 기준을 알려준 것은 <북두의 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폭력이라는 형태보다 잔인하다라는 것과 더불어 통쾌한 권선징악이라는 형태로서 폭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궁극의 바이올런스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상대방을 죽인다는 표현에서도 너무 판타지같은 표현들이 이어져있었고, 무엇보다 무협지나 무협만화를 보아온 한국 만화취미인에게 있어서 북두의 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무협장르의 만화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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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 기준으로 본다면 신체타격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중국산 무협영화를 보는 것과 일본산 소년만화를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겠지요. 그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에서 보는 총싸움이나 죽음에 대한 폭력묘사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강했다고 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폭력만화를 접하는 가운데에서 결코 어떤 감각적인 것보다 그 폭력을 행사함으로서 얻어지는 권선징악, 승리감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작 의식적으로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깨닫고 보는 경우란 굉장히 어렵다고 하겠지요. 그 때문에 앞서 말한 BB라는 작품을 보기 전에는 그 정도를 알 수 없었지요. 이 작품은 초반에 단순한 대립 형 폭력과 더불어 복싱이라는 스포츠 형태를 갖추어나갔지만 중반부터 주인공의 위기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살인, 극적인 상황을 위한 강한 폭력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이런 장면들이 표시되는 것이 소년만화 잡지’(물론 일본기준)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시 느낀 점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행동 표현으로 상대를 때리는 행동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일본 사회를 알 수 있었지요. 치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세대별 성적농담에 의한 인격모독과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무지(無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점이기도 하지만 실제 얼마나 상대방의 모습을 알고 친해지면서 배려할 수 있는가 등을 생각해보면 그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나 영화처럼 때리고 싸운 후에 친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증오와 분노만 남는 것이 확실합니다. 도덕적인 교육에서는 상대를 때리지 말라고 배우지만 일반설에서는 먼저 때려야 이긴다는 것과 맞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을 듣습니다. 법적인 현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상대에게 가해를 입혔을 때 그에 대한 피해보상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선악이나 나쁘다 좋다라는 기준이 아니라 법적인 기준에서 가래를 입혔다는 사실을 가지고 나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이것을 생각하면 그냥 맞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이지요. , 소년만화에서는 현실적인 구성보다는 단순한 비현실적 폭력행사를 통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폭력이 행사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이유를 만들어 보이지요.

 

대부분, 판타지나 SF, 전쟁드라마 같은 곳에서는 폭력이 행사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대립되는 관계에 대한 선악구조에 논박(論駁)을 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악이 있고 그 악은 절대적으로 타파, 없애야 할 존재로 인식시키고 그것에 대한 처벌을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힘이나 그 세력에 의해서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독자(주인공의 심정에 감화된)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고금동서를 통틀어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요.

 

대부분의 어드벤처 작품들은 모험활극(冒險活劇)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소년소녀, 청장년층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야도 있는 단순한 액션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할리우드 식 영화에 대해서 논을 두고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1~2시간 내외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드라마에서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반면 만화는 대부분 처음 선보이는 페이지 분량, 또는 연재되어 나타나는 권() 단위 작품구성에 때라서 그 구조를 자세하게 설명해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한 번 폭력을 동반한 작품인 경우, 극적인 갈등구조의 표현으로서 연출된 폭력이 아니라 매번 보이는 대결, 갈등해소의 형태로서 꾸준히 나타나는 것은 할리우드 식 모험활극 작품 구조에 물들어버린 단순, 쾌락형 작품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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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구조라고 한다면 대부분 주인공이 절대적인 힘이나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처음부터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극적인 장면에서 선보이는 것으로 동서양의 모든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정석입니다. 이것은 사건이 있고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추리, 탐정활극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에 숨겨진 미스터리가 존재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 후에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는 이들이 매력적으로 그 사건 안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지요.

 

실상 대부분의 소년만화에서는 이 사건과 대립되는 구조가 1, 또는 3~4에피소드에서 그려지고 있고 일본처럼 어떤 패턴이 유행하게 된 경우, 그 공식에 따라서 꼭 한 번은 등장하는 폭력은 꼭 등장을 합니다. 힘과 함께 동반된 수단으로 알려진 물리적 폭력은 지적이고 이성적인 현실 사회에서 필요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농업을 통해서 먹고 살아가는 가운데 그것보다 폭력으로 그것을 약탈하고자 하는 세력, 수단을 가진 인류의 행동을 지탄하면서도 그것은 이성, 지성과는 상관이 없이 꾸준히 이어져온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이 보고 즐기는 만화에서 표현되는 폭력에 대한 이해는 사실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는 현실인식과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드래곤을 무찌르고, 외계인과 싸우고, 악마, 사신과 싸우는 이유는 꼭 누구에게 정의가 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나름 인간에게 쓰러지는 드래곤과 외계인과 악마, 사신에게도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을 수 있다는 시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20여 년 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의식구조와 인문화된 사회가 요구하는 과정이라고 하겠지요.

 

그 안에서 지금까지 아무 생각도 없이 보고 즐기는 작품에 대한 만화감상을 말하는데 있어서, 폭력을 표현하는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즐거움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맛은 이미 한국만화에서도 여지없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점들이 적은 순정, 여성작가 만화에 대한 그리움까지 그리게 됩니다. 때문에 폭력이 만화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너무 그 미학적인 연출로 만들어진 폭력에 빠져드는 일은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SF, 공상과학의 기반에서는 발전하고자 하는 미래상에 있어서 공포라고 할 수 있는 미지수(未知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폭력이 가진 극단적인 해결방법과 미래가 가질 수 있는 양면성을 생각한다면 그만큼 폭력에 대한 기준은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