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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Pop

히무로 쿄스케(氷室京介) - KISS ME


히무로 쿄스케(氷室京介)는 일본의 록 보컬리스트이면서 특징적인 비주얼 록을 구사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름 파란만장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저는 일본에 가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가수였지요.

본래 그는 유명 비트 록그룹 보위(BOØWY)에서 보컬리스트로서 활약한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고향에서 그룹 데스페널티를 구성해서 활동하다가 콘테스트에서 그들을 본 음악사무소 비잉 스카우터에게 발탁되어 선발되지만 결국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강제적으로 해산을 당하게 된 경위를 가지게 됩니다.

1979년에 스피닛치 파워라는 그룹에 포함되어 프로데뷔를 하지만 이때도 그렇게 강한 색을 보여주지 못하고 고심하다가, 1982년 이름을 히무로 쿄스케(氷室狂介)로 바꾸고 록 밴드 보위에서 인상적인 보컬로 다시 제 2의 데뷔를 하게 됩니다.

 

소속사 비잉(ビーイング : Being,Inc.)으로서는 그의 재능을 아껴서 재차 이런 과정을 거치게 했다고 하겠지요.

앞서 이야기한 튜브도 비잉 소속인데 의외롭게도 이 비잉 소속 음반을 제가 좀 많이 구입을 한 편입니다. 히무로가 막 활동을 시작하던 1978년도에 도쿄에서 시작한 음악제작회사인데 현재는 관련소기업사가 약 60개가 넘어가는 대규모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밴드를 중심으로 한 발굴, 지원, 기획을 중심으로 했는데 B'z를 비롯하여 TUBEWANDS, ZARD를 세상에 내놓았고 오구로 마키(大黒摩季), DEEN, T-BOLAN, Mi-Ke, 쿠라키 마이(倉木麻衣)GARNET CROW와 같이 1990년대를 풍미한 음악프로덕션이다 보니 제게 많은 지름신을 던져준 제작사였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절정기였던 1993년은 업계 매출의 7%를 담당하게 되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제작사는 약 20여개 전후로서 평균 3~5%정도 비율) 엄청난 히트세를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알게 모르게 이들 소식이나 음반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독자적인 밴드지명 노선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밴드 클럽, 라이브 하우스에서 발행한 라이브 소식지 등을 지원하는 형식 등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일본 밴드, 라이브 시장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음악업계에서 제법 넓은 인맥과 개방적인 구성을 통해서 타 소속사 프로덕션 아티스트들과도 꾸준히 교류하고 있고, 함께 모델, 탤런트 기반 사업 분야도 지원하고 있어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맨션을 구입해서 그 안에서 연습생, 녹음, 연습을 처리하는 형태도 만들었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이후 이 비잉그룹은 음악자본을 바탕으로 부동산 산업에까지 참가하여 빌딩형 맨션 등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소속사 탤런트 관리 차원에서 시작된 구성이라고 해도 그런 부분들을 별도로 발전시켜서 현재는 고급 대여맨션 사업에서도 자리매김을 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형태의 음악사무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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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런 비잉사무소의 여러 가지 노력도 빛을 발해서 새로운 비트 록 분위기를 만들어 낸 보위에서 개성을 발휘한 히무로는 당시 20세 전 후반 세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와 지지를 얻게 되었고 이들의 존재감은 일본 록사상에 있어서 큰 기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보위 해산 후에 1988년 싱글 앨범 ‘ANGEL’로 솔로대뷔를 하면서 다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히무로는 그가 가진 독자적인 퍼포먼스와 록큰롤 미학을 보여주면서 압도적인 라이브연출로 많은 관계자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시기의 모습을 저로서 잘 알수 없었지만 대뜸 등장한 신곡 이 노래 때문에 제가 오옷?! 하는 감상을 받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놀러갔던 시부야 대형 비전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와 스타일이 화려하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때문에 저도 붉은 자켓을 구입해서 놀러 다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어 주었지요(^^). 

 

 

나중에 이곡을 통해서 알게된 당시 보위 시절의 에피소드등을 들어보면 참 우상적 캐릭터였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가 자신의 노래에 직접 작사를 하지 않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그가 작사한 노래 중 하나인 ‘SCHOOL OUT’ 때문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가 당신이 말한 것처럼 학교를 중퇴했습니다라는 팬 편지를 받은 후라고 합니다. 자신의 가사 영향력이 가진 것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겠지요. 이후로는 전문적인 작사가를 통해서 자신의 노래를 만들어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일부 광적인 팬들에게는 히무로 쿄스케(보위 시절의 자로 표기되던)는 죽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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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아마추어 밴드 데스페널티를 시작으로 야마하 주체의 음악페스티벌에서 비잉의 눈에 들어오지만 해산이 된 후, 테라니시 슈이치(寺西修一)라는 이름으로 스피니피 파워에서 코러스로 참가하고 이후 보컬리스트로서 활동을 하던 중 너무 팝스러운 성격을 보여준 밴드성향에 스스로 해산을 시켜버립니다. 그러면서 사귀고 있던 그녀와 헤어지게 되면서 절망감에 빠져있던 히무로는 고향 군마(群馬)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동향 군마 출신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布袋寅泰)와 함께 마지막으로 함께 뭔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BOØWY라고 하겠습니다.

호테이는 지금도 그 이름과 음악을 알리고 있는 몇 안되는 일본 록 기타리스트이면서 싱어 송 라이터인데 그가 작곡한 인의없는 싸움테마곡은 영화 킬빌에서 테마곡으로, 한국에서는 혼다 자동차 CM송으로 넓은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라고 하겠습니다. 호테이는 당시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8살의 나이에 히무로와 함께 폭위(暴威)라는 형태로 밴드를 결성해서 이 발음을 영문으로 바꾼 BOØWY로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됩니다. (물론 데이빗 보위에 대한 추종성도 거론되고 있는 타이틀이지만요 - 실제 호테이는 데이빗 보위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표명하고 있습니다)

히무로와 호테이는 지금까지도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둘 다 해외 거주활동 등을 통해서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데 말 그대로 젊은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짧은 6년간 밴드 생활로 보여 줄만한 것은 다 보여준 아티스트 밴드로서 그 역량은 지금까지도 일본 음악평론가들 사이에서 보위 이전과 이후에 대한 평이 달라질 정도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호테이는 나중에 기술한 이야기에서 멋진 하드록 버전 인생이라고 생각한 히무로가 오랜만에 만나보니 뉴웨이브 형태로 바뀌어 있어서 놀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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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ØWY19871224일 시부야 고카이도(渋谷公会堂)에서 해산을 발표하고 19884월에 도쿄돔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해산을 하게 되면서 호테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 겸 아티스트, 작사, 작곡자로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의 신선한 매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게 됩니다. 참고로 호테이 토모야스의 아버지는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거론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히무로와 호테이는 굉장히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형태로 우상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호테이는 개인사를 많이 밝힌 반면 히무로는 어느 정도 관리된 예능형태를 보여주어서 본명이나 예명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적은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무로의 히무로라는 성은 만화 악당(ワル)’에 나온 주인공 성을 딴 것이고 미칠 광자를 사용한 이름도 교토에 가서 만난 점술사에게 좋지않다는 조언을 듣고 쿄토의 쿄()으로 바꾸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실제 그의 인생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었는지를 아는 이는 드물다고 하겠지요.

그런 그가 인기절정이었던 밴드 BOØWY를 해산시키고 솔로활동을 하게 된 여러 가지 추측도 당시에는 난무했다고 합니다. 실제 해산 3개월 후에 바로 싱글앨범을 발표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히무로의 인기는 여전했고 발표하는 곡들이 제법 마이너하면서도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199086일 일본 담배회사 JT의 후원으로 시작된 유명한 슈퍼사운드 90(JT SUPER SOUND '90)에서 호테이가 같이 출연해서 나름 보위의 재결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성 기사가 난무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앨범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1992127일 발표한 이 곡 KISS ME는 그에게 있어서 첫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게 해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곡이 수록된 1993년도 1월 발매 앨범 Memories Of Blue는 종합 판매 130만장을 기록하는 대 히트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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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가족과 함께 로스엔젤레스에 살면서 일반 예능관련에는 전혀 얼굴을 보이지 않고, 가끔 라이브를 일본에서 여는 정도인데도 여전히 그의 콘서트는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외국인 프로듀서나 엔지니어, 뮤지션들과 다양한 프로듀싱을 하는 것에 재미를 들이고 있고 유명 실버 액세서리 브랜드 크롬하트와 함께 패션관련 이벤트도 진행을 합니다. 라이카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직업 운영하는 공식 웹 히무로 닷컴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