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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누구나 취미하다보면 고수된다?

기본적으로 저는 서울촌놈입니다.

서울에서 먹고 자랐지만 정작 서울이라는 바닥을 완전히 알고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인간이지요.

서울에서도 토박이는 또 아닙니다.

영등포지역 셋방살이를 기초로 봉천동을 거쳐서 지금 방배동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으니까요.

중간에 외국에 나가서 굴러다니기는 했지만 기본이 서울이다보니 서울 외 지역에 계신 분들보다 언제나 딩가딩가한 취미영역에서 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서울사람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단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문화적인 부분과 많은 인연을 가지고 살았을 것 같은 서울인간이지만 정작 취미로운 영역은 굉장히 한정적이었습니다. 잘해봐야 고속버스 터미널 지역 지하상가와 터미널 건너편 상가에 위치한 외국서적 수입상, 수입장난감 취급점포 정도가 최대 한도였지요. 제가 살던 곳은 기본적으로 학군위주 편성이었기 때문에 취미로운 아이템과 만나기 위해서는 굉장히 먼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반포와 신반포 지역, 이른바 좀 사는 아파트지역촌 주변 비디오 샵이나 장난감 샵 등은 일본물건들이나 미국 제품들이 잘 깔려있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것은 아니라도 해도 그렇고 그런 물건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연스럽게 접근을 할 수 있었지요. 즉 주변 인간들이 이쪽에 접근해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곳들을 들락거리면서 보게 된 6~70년대 수입되었던, 그러나 인기가 없어서 그냥 구석에 전시되어 있던 물건들은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나름 재미있게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일본어'라는 것을 인지하고 보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는 그냥 그림책 수준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림만 보고 이해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만화책 단위로 넘어오게 된 것은 중국대사관 주변 수입서적점포들을 알게되서 부터입니다. 거의 매주 한 번 이상 뻔질나게 들락거렸습니다. 기본 스타일은 간단하지요. 이태원, 세운상가에서 빽판이나 카피테이프 얻기 위한 작업 겸 빨간 책자나 테이프 등도 손에 넣어보면서 말입니다. 이후 돌아오는 길에 들려서 접한 곳이 이 중국대사관 지역입니다. 조금 나중에 장난감 영역에도 손을 뻗치지만 이것은 80년대 중반이 되어서 입니다. 자금적인 여유가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거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그 점포들이 중고책자가 된 것을 처분하려고 할 때 가서 왕창 들고 오왔지요.


직접 주문을 해서 구입을 하던 때는 1982년 전후와 86~7년 전후입니다.

이때는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고 정말 정말 한정적이었기때문에 나름 선별을 해서 2~3개월, 조금 심하면 6개월 정도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구입을 하기도 했습니다. 만화책이나 작가, 출판사, 제목 등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치가 쌓이는데 약 3~4년 소비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가끔 음반, LP나 CD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LP는 깨지기 쉽다는 이유때문에 주문 자체가 아주 어려웠고 그나마 CD가 소비되었지만 가격대 자체가 워낙 비싸다보니 거의 한정된 수만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벌이는 주로 장난감을 만들어서 도색해서 팔아먹는 형태였습니다. 나름 괜찮은 수입거리였지요.

신문, 우유배달보다는 훨씬 벌이가 괜찮았고 이른바 부자동네 과학사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쉽게 팔려 나갔습니다. 당시로서는 완성품 장난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제 조립식 장난감 키트를 대신 조립해주거나 도색해서 넘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너무 비싸게 받지 않고 박리다매를 했기 때문에 좋았지요. 그러다가 자기가 직접 부품을 만들어서 개조하는 이들을 보고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그들이 나중에 거대 장난감 취미조직을 만들 줄은 생각도 못했지요.

취미로운 연결이라고 하겠지만 현재까지도 미묘하게 취미로운 인맥들은 살아있습니다. 만화, 장난감,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영화 등을 통한 연결구조라고 하겠지만 그 취미인들이 초기 때와 달리 지금은 다들 한자리 하고 있는바. = 결론은 이겁니다. 지금은 찌질한 취미동네 코흘리개라고 해도 무시하지 맙시다. 그 인간이 커서 거대 취미회사 사장, 이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이쪽 취미인맥 구조론이 굉장히 단순해서 2~3명만 거치면 거의 아는 인간들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업종에서 만난 인간들이 모여서 떠드는데 한 명만 거쳐도 바로 아는 인간이 나오는 등………말 그대로 좁고 좁은 취미인맥이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모 병원에서는 연수의와 외과부장이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취미로운 인맥이 터져나오면서 부장이 연수의에게 눈물지으면서 "그 물건을 나에게 넘겨주라~~" 부탁을 하는 광경도 보게됩니다.


조금 더 가면 모 기업체 사장이 신입사원과 취미로운 아이템 교환을 위해서 딩가딩가한 모임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요. 과거 일이기는 하지만 친구 중 하나는 들어오기 어려운 물품을 들여오다가 쇠고랑을 차기도 했습니다. 저도 제일 억울 했던 기억은 역시 한일문화개방이 완전하게되지 않았을 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보맨 470권 만화책들이 전부 소각되어 버린 일이지요. 일본만화책은 아직 정식적인 반입물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보낼 수 있는 양을 넘었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그때 책 중에는 지금 구하기 어려운 절판 작품도 몇 개 있었습니다. 반면 장난감들은 이상하게 관대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장난감'이기 때문에 봐주는 것이지요.

가끔보면 가격적으로 무식한 애도 있었지만 (특히 개라지) 장난감! 이라는 것 때문에 웃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은 확실히 '굉장히 다른 것은 완전히 다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본질은 사과라고 해도 짙은 보라색을 가진 포도와 청포색 포도는 다른 포도라고 보게되는 것이지요. 맛이나 구성, 그리고 여러가지 산업적인 구분에는 달라지는 것이 맞지만 품종 기본은 포도인데 그것을 보고 가지는 가치관은 음식에서부터 술로까지 발전되기 때문에 용도를 어디까지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영역이 달라진다고 하겠지요.

서울에 사는 취미인이라고 해서 서울에서 유명한, 심지어 한국의 모든 취미관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나 영국, 일본에 사는 취미인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가치관 이해에 대해서는 부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리상으로 보면  수 천 킬로미터이상 떨어진 인간보다 몇 킬로미터 내 위치에 있는 제가 알지 못하는 정말 거시기 하지요.

때문에 주변, 취미인들 시선에 답하고자 노력한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사진들을 찍어서 보내는 것도 다 그런 경우 중 하나겠지요.

때문에 누구나 취미를 하다보면 연륜이 생긴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정체된 곳도 가끔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즐긴다는 것을 자기 혼자만의 영역에서 처리하는 분들이지요. 사실, 이런 분이 훨씬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과거 조사된 자료를 보더라도 만화책을 사보는 1000명 중 그것을 사보고 감상을 대외적으로 말하는 이는 약 30~50명 전후라고 합니다. 실제는 그것을 보고 묵묵히 자기 감상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나마 그것을 오랜시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 적어지기 때문에 5년 단위, 10년 단위로 다시 10~30%씩 줄어든다고 합니다.

한국 남성은 주로, 대학입시, 졸업, 취직, 연애, 군대, 결혼, 육아 등이라는 기준에서 취미생활과 멀어지게 되고

한국 여성은 주로 사춘기, 고등학교 생활, 친구관계, 대학입시, 졸업, 취직, 연애, 결혼, 육아, 배우자문제 등으로 인해 멀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그 기준은 묘하게 달라질 수도 있고 개인적인 환경 자체도 확실히 구분이 됩니다. 주변 남자인간들을 돌아보더라도 군대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서 게임이나 만화를 들고갈 수도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전혀 안되는 곳도 있습니다. 대학이라고 해서 가보니까 취미쪽으로 빠지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서클, 선후배 관계, 예상하지 못한 접촉 등을 통해 취미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지요. 때문에 취미에 접근하는 계기는 무척 단순하면서도 우연치 않게 등장을 하게 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쌓아가는 레벨, 경험치 축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1970년대 취미인이 경험치 = 리얼타임이라고 하고 X1배라고 하면

1975년대 취미인 경험치 = X3배 / 한일무역 관계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 경제적 연대기.

1980년대 취미인 경험치 = X8배 / 정권교체기와 더불어 대중문화 & 2차문화기 분리기.

1985년대 취미인 경험치 = X10배 / 문화, 경제발전과 더불어 중산층의 증가.

1990년대 취미인 경험치 = X20배 / 통신문화권을 기반으로 지역문화가 공시화.

1995년대 취미인 경험치 = X30배 / 일본 취미문화에 대한 정보가 대대적으로 유입.

2000년대 취미인 경험치 = X50배 / 통신문화의 발전 & 디지털문화세대.

2005년대 취미인 경험치 = X80배~ 고속통신, 고용량 문화, IT문화영역(음악 영화)과 연계.

2010년대 취미인 경험치 = X300배

라고 합니다.


2000년대 취미인 경험치 = 50~80배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인터넷 보급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취미로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으니까,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그냥 즐긴다, 본다라는 의미로서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고속, 대용량 회선들이 시대에 등장하고 HD, 디지털화 된 영상소프트, 책자아이템들이 엄청난 보급력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자료, 정보를 기반으로 활동을 하게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똑같은 시간을 들여서 취미관련 정보를 접하고 습득하는 시간이 이정도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취미인과 비교를 해보아도 10~30배 이상되는 경험치 습득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덕분에 2000년에 취미를 시작한 사람도 1970년에 시작한 사람도 2010년에는 거의 동급 레벨, 스킬, 지식을 가지고 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취미로운 영역뿐만이 아니라 그에 동반되는 주변 인식, 문화습득상황, 경제, 지적 문화 스킬에 대한 개인차도 있기 때문에 (교육수준 & 취미적인 접근도)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한국은 주변국가들 중 이웃 나라 하나가 상당히 취미적인 문화를 가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에 쉽게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한국 경제, 문화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이런 변화는 또 다른 것이었겠지요.


가끔 똘같은 애들은 보면 일본찬양,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면………이라는 엉뚱한 발언을 하는 것을 봅니다.

취미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일본문화가 부럽다는 것이라지요. 한때 그런 풍조가 많았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지식과 문화적인 한계성은 훨씬 더 넓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서울 촌놈, 취미력 XX년이 만보도 당당하게 이런저런 취미론을 떠들고 자기 취미이야기를 경험으로서 축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또 이 시대  서울촌놈으로 태어나고 싶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람은 결국 무엇이든 X년을 넘어서 XX년, XX년 + 10년 ~20년 ~30년 ~ 40년 ~50년~ (이후는 인류생존과학의 발전과 함께)까지 즐길 수 있다면 (이점이 중요합니다) 영원한 초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서 식칼을 잡아볼 일이 거의 없었던 제가 해외에서 혼자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요리도 하게되고 관심을 가지고 요리자격증이나 제빵제과관련 자격증(다 기초적인 것들입니다)을 따게 된 것은 전혀 다른, 생존에 관련된 부분으로 시작을 했지만 그게 또 취미로운 영역으로 발전되어서 이런저런 것을 하게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자꾸만 접근을 하게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취미를 즐길 수 있나요?

어째서 끈질기게 취미를 할 수 있나요?

지겹지 않나요?

취미를 오래하면 마법을 쓰거나 공간이동을 할 수 있게되나요?

등 등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 패션문화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자기 패션이 꼭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멋스러움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문화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자기 가창력이나 연주실력이 월드스타급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IT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실제 사람들과 만나서 말을 잘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애사 관련 책과 관련 자료를 많이 읽었다고 해서 이성의 모든 것을 통찰해서 완벽한 러브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물 분량 불조절을 달리한 라면을 끓여 '궁극의 라면맛'을 냈다고 해서 업체에서 연락이 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만들어 본 건담프라모델이 엄청나게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제품이 좋아진 것입니다.

처음 한 두마디로는 좋다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취미관련 이야기를 너무 파고들면 누구나 피곤해 합니다.

같은 취미인이니까 누구라도 나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냥 대충 몇 번 보고 즐긴 것을 가지고 자랑하듯 뻐기면 동네 취미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몇 번'도 시대가 지나오면서 기본 레벨이 다를 수 있습니다.

표지만 본 것을 가지고 알고있다고 하는 것과 그것을 경험하고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