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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Story/Adult Game

그러면 미소녀게임 이야기를……

▲ 먼지먹은 상태지만 전에 친구부탁으로 자료사진 제공하느라 그나마 밖에 나와있던 케이스들입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이런 저런 형태로 '미소녀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에로작품들을 즐겼습니다. 그런 것을 숨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겠지만 저로서는 별로 숨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까놓고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요. 그러나 의외로 주변에는 숨기는 것이 당연하고 주변의 친구나 여친에게도 숨겨가면서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도 그런 것이…… 한국 사회 수준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위험한 이야기가 많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대로 미소녀게임이라는 말도 어느정도 순화된 말이고, 당시로서는 대표적은 야겜H게임이라는 속칭으로 불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 친구들은 주변 눈과 귀를 의식해서 '그거'라고 말했지만요(^^).

MSX시절 게임에 비해서 월등하게 좋은 화질과 퀄리티를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그 당시 그래픽이라는 것은 16색, 도트 이미지로 구성된 굉장히 절제된 게임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슈퍼패미컴 팩(16MB)짜리도 사실 1.44MB 플로피 디스켓에 들어가던 시절이니 플로피 4장에서 20장짜리 게임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끔 보면 이 게임들 가격은 8~9천엔씩 하면서 구입해서 케이스를 열어보면 플로피 2장, 취급설명서라는 미명하에 1장짜리 종이 한장 이게 전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눈물나지요.


그마나 조금 나아져서 디스크 '몇 장'이라는 표기가 되어있으면 그것을 보고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지만 웃기는 것은 플로피 디스크 장수가 많은 것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디스크 에러'가 무서웠습니다. 물론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저와 같이 몰아서 하는 인간은 짧은 기간에 왕창 구입해서 돌려보는 우를 범했기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게임 10개만 되어도 플로피가 약 150장 정도 모이는데 그 안에서 2~3장이 '뻑'나면 울면서 AS신청해야 합니다. 플라스틱 장난감이야 동네 문구점 가서 이야기해볼 수 있지만 이 미소녀게임 회사는 AS가 참 가내수공업 수준이어서 어쩔 때는 3주 이상 걸리기도 했고, 심지어 그 AS되어서 온 플로피가 다시 삑~ 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어서 눈물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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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케이스는 독창적인 분위기와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내용물에 비하면 좀 그렇지만요.


뭐, 그런 경험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웃을 수 있는 경험담으로 넘어가겠지만 주변에서 이쪽 과련 게임을 열심히 하면서 전혀 인정사중 두지 않는 성격을 가진 친구는 미치고 펄쩍뛰지요. 그것도 한국에서 친구가 부탁해서 플로피들을 잘 싸서 보냈는데 한국 현지에서 삑~나가버리면 정말 땅을 치고 울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었이었을까요?


어떤 분은 그게 뭐 대수냐 'CD백업하면 되잖아~' 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때 기준으로 CD, 그것도 읽기만 할 수 있는 CD기기는 당시 기준 가격으로 약 60~70만원, 레코딩이 되는 CD-ROM드라이브는  한 160~200만원 정도 할 때 였습니다.

9800계열, NEC컴퓨터가 약 40만엔 전후로 환율이 6~8.5정도일 때였습니다. 결국 가정용 게임기 가격 20배 정도하는 이 녀석을 미소녀게임 해보겠다고 장만하는 것, 그 도전정신 자체가 굉장히 무모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레코딩이 되는 9800머신은 가격이 RAM 2MB장착하고서 60~80만엔대를 육박했습니다. 살인 날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니 미소녀게임을 즐긴다는 목적하에 구입할 수 있는 기종은 저와 같이 9800호환기종인 EPSON에서 나온 [PC]시리즈 머신이었습니다.

NEC는 9800을 기반으로 M시리즈나  P시리즈 이후에 9802머신으로서 다양한 형식명칭을 가지고 이런저런 기기를 발표했는데 이녀석들은 IBM계열 DOS-V머신을 깔아뭉개면서 독자적인 규격으로 일본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NEC가 독과점 시장을 몰고나가는데 견제를 할만한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만큼은 이 독자적인 컴퓨터 규격이 활개를 치면서 자기들만의 가격대를 형성해도 할 말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1995년이 되어 등장한 '윈도우95'가 IBM계열 DOS-V머신들 시장점유율을 비약적으로 올려주었고 9800시리즈는 이후 완전히 미소녀게임기로서 가치만을 인정받는, (물론 일본산 일반 PC게임들도 가능하지만) 기기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후 몇 몇 선진적인 업체가 256색이나 지원되고 음성까지 원활하게 나와주는 신규격을 가진 미소녀게임을 윈도우즈에서 가동할 수 있게 하면서 9800계열 미소녀게임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MSX시절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대 격변이었다고 하겠지요.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업체와 살아남지 못한 업체가 많았지요. 기존에는 '도트 막노동'으로 불리는 형태, 가내수공업 급 제작사들도 제법 존재를 했는데 이런 부분들로만 운영되던 업체들은 무너지고, 앨리스나 엘프, F&C 같은 몇몇 대형 업체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무너지거나 해체,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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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다시피 플로피 몇장하고 설명서 자료집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 주제에 케이스는 크지요.

 

저는 주변의 웬수들 덕분에 MSX-R 터보시절 부터 조금씩 경험을 했지만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 만한 돈을 써가면서 '즐길만한 유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알고는 있지만 그 유혹이 크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놀 것도 많은데 뭐 이런 것에까지 빠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유혹들은 저를 더욱 부추기는데 성공하고, 저는 까짓거, 호환기종인 EPSON기종은 중고로 구입하면 싸다고 하니까………라는 말을 듣고 아키하바라에 갔습니다. 이전에 아키하바라에 가는 이유는 2개였습니다. 가정용 게임기였던 PC엔진,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와 같은 기기 소프트를 사고 팔기 위해서였고, 음반, 애니메이션 LD, 오디오관련 상품을 구입하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아키하바라라고 해도 이때만 해도 만화나 코스튬관련 상품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자제품과 컴퓨터 관련이 아니면 갈 일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특히 오디오는 한국시장과 달리 정말 다양한 것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서 놀아도 반겨주는 곳들이 많았기 때문에 농담따먹으면서 두리번 거렸지요.

가보니 정말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중고제품시장이 있었고(한국 세운상가는 저리가라고 할 정도였지요. 이전에는 수없이 지나 다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말입니다) 구입을 할 수 있을만한 형태였습니다. 저는 본체와 모니터, 그리고 게임소프트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즉, 컴퓨터에 바로 플로피를 넣고 기동해서 제품을 즐겼다는 말입니다. 한 장면 넘어갈때마다 디리리릭 하면서 플로피를 읽고, 천천히 바뀌는 화면을 보면서 즐겼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척 여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느정도 컴맹이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살았는데(MSX는 인스톨하는 과정이 없었으니까요), 역시 주변 웬수들이 "HDD를 사라~ 사라~ 사라~" 하는 겁니다. 한 번에 살만한 여유는 없어서 3개월 후에 HDD를 구입해서 달고보니 확실히 인스톨을 하고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쾌적했습니다. 이런 상황까지 맞이하니 저는 그냥 고고고고고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단 당시 HDD 100MB~200MB급 가격은 한국 돈으로 약 20만원 전후였습니다 / 그런데 전 처음부터 500MB를 사고 나중에는 스카시타입으로 1GB까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플로피로 플레이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스피드를 체감하게되면서 게임에 새로운 재미를 들였다고 하겠지요. 단 가격대비로서는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물론 웬수들이 '만보 편하라고 하는 것'보다 그 하드를 들고 한국에 오면 바로 바로 카피가 가능하기 때문이지만 그런 스킬등을 통해서 이런저런 꽁수를 알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꽁수란,

우선 일본시장시스템을 이용해서 신작을 사서 바로 인스톨 하고 기동디스크는 카피를 합니다. 프로덱트는 제가 쇼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들고갈 것을 기대하는 친구(웬수)들이 매번 잘 알려주었고, 제가 한국으로 오가면서 들고다니는 HDD 크기는 갈수록 커졌습니다.

200MB ->  500MB -> 1000MB(1GB) ->2000MB(2GB)짜리로, 그것도 SCSI하드까지 동원해서 카피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해도 플로피게임들을 버릴 수는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해서 프리미엄 판이라는 녀석들입니다. 가격대가 8~9천엔짜리는 겉만 멀쩡한 케이스에 플로피디스크 몇장, 그리고 2~4장짜리 설명서가 대부분이었지만 1만엔이 넘어가는 게임들은 작은 일러스트나 미공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로서 보면 아직 미소녀 게임 관련 화집이나 서비스 품목을 별도로 구할 수없었기 때문에 중고라고 바로 시장에 팔아넘길 수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미소녀게임을 원활하게 돌리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하드웨어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덕분에 조금 '꽁수의 달인'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겠지요. 물론 ??재적인 웬수들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스킬이었고, 어차피 아키하바라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게임과 음반을 구입하기 위해서 갔었기 때문에 별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미소녀게임 정보는 현지에서 얻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PC관련보다 학교에서 워크스테이션을 먼저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PC를 장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더욱 굳힌 것은 이런 때였다고 하겠습니다.
 

이후 윈도우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처음 구입했던 386머신을 팔고 486으로 교체를 했고, 결국 윈도우상황에서 구동이 가능한 머신으로가지 구입을 해서 즐겼지만 이후, 윈도우머신으로 일본시장이 통일되고 미소녀게임 장르는 꼭 9800머신이 아니더라도 구동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서 이 기기들은 제 방에서도 먼지를 먹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 지금은 방구석에 처박히는 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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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사용을 하고 있지 않은 저의 3번째 9800머신, 호환기종인 엡슨 PC-486(100MHz) 머신입니다.

당연히 그냥 먼지먹고 있지요.

 

물론 여기서 '웬수'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느정도 반어적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냥 놀고먹던 저에게 잘 모르던 세상을 알게 해주었고, 컴퓨터는 쓸 줄만 알았지 구성하는 방법이나 활용도가 거의 일자무식 수준이었던 저를 이렇게 굴러다닐 수 있게 가르쳐주었으니까요. (실제 저는 PC라는 것이 다 조립되어 나오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이때를 즈음해서 조립하는 맛?을 알게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게임관련으로 빠지게 만든 죄는 크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저 자신이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후에 제가 한국에 귀국했을 때 그 웬수들이 일본으로 가 일하게 되면서 거꾸로 윈도우 시장 이후 미소녀게임들을 원활하게 공급해주었기 때문에 결국 상부상조했다고 하겠습니다(^^).


이후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나 웬수들이 하던 꽁수 방법으로 9800머신을 소유했던 분들 이후에 윈도우에서 가동되는 머신을 가진 분들에게 전파될 수 있는 방법으로 ZIP디스크나 CD백업과 MO백업이 더해지고, 나중에 모 동호회는 CD몇장으로 구성된 공식 불법 미소녀백업 타이틀까지 나오게 했다고 합니다.

이후 인터넷환경이 구축되면서 별 죄책감없이 당연하게 공유되는 아이템으로 전락된 미소녀게임환경은 그 게임이 가지고 있는 선정성을 떠나서 굉장히 은밀하게 (하지만 공공연하게) 전파되었고 이제는 굉장히 많은 이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가 알고 있는 장르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적인 부분을 표면화시키고, 번태성향이 강하게 발전되었던 윈도우 미소녀게임 초중기(1993~1997년)에는 부분별한 살포로 인해, 정신적으로 미숙한 미성년, 초중생에게까지 전파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영향력은 오히려 좋지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터넷문화가 가진 역기능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점때문에 저로서도 좀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별히 뭐라고 하지않아고 이미 인터넷은 이런저런 성적인 부분에 대한 의견이 너무나도 퍼져있기 때문에 너무 숨기는 모습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어쨌든 얼마나 쓸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도 써둡니다.

언제난 저는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성격때문일지도 모르지요. - 수습이 문제입니다.

데이터 만들어 두기 좋아하는 저였지만 사실 이쪽은 별로 큰 흥미가 없어서 따로 잘 만들어 두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후 한 후배가 정리를 했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약 600여 타이틀 정도라고 합니다. 단, 저는 이것들을 다 플레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구입만 해서 인스톨하고 바로 패키지를 팔아버리는 형태로 들고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구입 자료정보는 대부분 한국에서 지시가 내려왔었기 때문에 정작 저는 그렇게 많이 해보기 어려웠다고 하겠습니다. 가끔 스토리나 캐릭터 구성, 게임성에서 빠져본 적도 있지만 패키지 게임 개발이나 구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나름 관망하면서 즐기는 쪽으로 피해버렸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런 시대를 되돌아보면 참 묘한 시절, 열정이 있었다고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