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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Story/Consol Game

만보 게임 약력 1995년 - 시대는 이제 3D!



플레이 스테이션 (SONY)
사실 이 녀석은 1994년 12월에 발매되었지만 발매되자 마자 바로 구입을 할 수 있는 인간들은 드물었습니다. 저도 이런저런 상태에서 즐기기에는 어려운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실제 구입, 즐긴 시기는 1995년 봄부터입니다. 물론 슈퍼패미컴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게임세계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보면 조금 아슬아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세가파(메가드라이브)을 비롯하여 닌넨도 당(슈퍼패미컴)을 비롯하여 NEC(PC엔진)이라는 형태는 물론이요, 고전적으로 즐겨온 아타리일파와 MSX일당 이라는 구분도 상당히 골치아픈 형태였는데 이제와서 소니까지? 사실 이때를 전후로 해서 차세대 게임기 규격은 확실하게 CD-ROM으로 변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게임하드웨어에 대한 접근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3DO'이기도 했지만 이쪽은 아무래도 시장진입에 실패한 형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도 워낙 없어서 그냥 그렇고 그러했지요. 

'소니'의 게임기라는 점과 초기 가격 39,800엔 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일반 유저가 접근하기에는 벽이 높은 형태였기 때문에 게임기 시장에서 초기 진입이 어려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개발툴킷을 비롯한 여러가지 조건이 상당히 좋은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니는 이전에 닌텐도와 함께 슈퍼패미콤용 CD-ROM드라이브를 개발하던 도중에 의견차이로 인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부분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소니가 게임기 시장으로 진출하게되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지금도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거론되는 그 모습이지요.
스타일을 보면 어디로 보아도 슈퍼패미컴 형태를 기반으로 한 확장기기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기존 게임 시장에서 굳건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닌텐도는 여전히 롬방식과 기존 기기형태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형태를 버릴 수 없었다고 하겠지요. 위성을 기반으로 한 '사테라뷰' 등 나름 혁신적인 기준을 가지고 확장해나가는 기준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게임소프트 관련 개발자들에게 더 큰 비용을 들여서 개발할 고생(?)을 강요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소니의 변덕(?)으로 인해 이 플레이스테이션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면 시장의 구성은 아주 확연하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을 합니다. 영원한 2인자 세가는 절치부심해서 만든 세가 새턴을 기반으로 완벽하게 아케이드와 가정용 콘솔게임기 시장을 연결해서 최강의 언테터인먼트 성을 추구하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NEC도 야망을 불태웠지만 윈도우95의 등장을 얕보았던 그들의 바보같은 행보는 결국 헛발질이 되고 말았지요.

소니는 허드슨과 NEC의 조합으로 탄생한 PC엔진때도 물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1987년에는 NEC의 HU카드 시스템 + CD롬롬 확장구성에 지고 말았지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닌텐도와 진행을 할 때는 어느정도 크게 보고 진행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CD롬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5MB도 안되는 용량 게임보다 650MB에 달하는 게임용량, 깨끗한 음원, 그리고 엄청나게 기대되는 3D 구성은 확실히 차세대 게임기의 기준을 대표하는 형태였으니 말입니다.
닌텐도 슈퍼패미컴 차세대 개발기획 코드네임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개발상품명으로 사용한 소니의 의지는 나중에 닌텐도의 판단에 "봐라 이것이 진리다~!"라는 형태로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압도적으로 '갑(甲)'의 위치에서 오랜시간 살아온 닌텐도와 소니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양보가 쉬웠을리 없다는 것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의견입니다.
실제 1992년 1월 일본경제신문에서는 1년후 슈퍼패미컴용 CD롬 어뎁터가 발매될 것이라는 것이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때만 해도 이들의 개발진행상황은 서로에게 충분한 이익여건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소니는 이미 이때부터 '슈퍼패미컴과 호환성을 가진 CD롬 게임기의 발매'라는 형태를 기준으로 개발진행방향을 잡고 있었고 (중요한 결정요인은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결국 1992년 11월에 들어서는 호환기종이 아니라 단독으로 진행되는 게임기라는 것을 발표합니다. 이후에 소니의 독자게임기 개발결정은 1992년 6월 24일에 결정되었다는 것이 알려집니다.
소니의 배신에도 닌텐도는 별로 큰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게임기 하드웨어 업체에서는 상당히 많은 전자산업체들이 독자적인 개발진행, 규격싸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아타리에서도 신규 게임기를 개발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1994 ~1995년은 이미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PC엔진, 새턴, 3DO, 네오지오 와 같은 하드웨어들이 싸우고 있었고 또 다른 형태로 개발될 기준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루머이기는 했지만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 중 2군데 정도가 하드웨어 개발에 들어갔다는 소문까지 나오면서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기준, 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니'라고 하는 생소한 브랜드가 진입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기대반 불안반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나마 저같은 인간이 좋아하는 게임 몇개가 이쪽으로 나오기 때문에 저도 2월달 한국에서 약 100여만에 가까운 금액을 들여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장만하게 됩니다. 이때는 <철권>이 킬러타이틀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 구성이었다고 하겠지요.
말 그대로 와이드화면에 대한 야망도 불타올랐기 때문에 이때를 즈음해서 저는 AV시스템도 업그레이드 됩니다. 돌비서라운드, 32인치 와이드화면TV등이 도입되고 서브우퍼와 5채널 스피커등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돈이 깨지면서 새로운 게임기 기반 시장이 돈먹는 시장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실 CD-ROM 게임이라는 것은 기존 NEC기반으로 즐겨보았기 때문에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 3D 캐릭터 화면을 보고 뿅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가격도 기존 ROM게임에 비해서 약 1000~2000엔 정도 더 쌌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접근도 상당히 매력적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유저별 게임 접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계기를 가지고 플레이스테이션을 구입하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신구 게임기들이 혼재한 1995년은 말 그대로 격전지였고 다양한 게임 소프트, 게임성들이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문화시장을 만들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PC게임 시장도 엔비디아의 게임전용 그래픽카드 '지포스'시리즈를 당당하게 선보일 정도로 큰 구성변화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반은 따로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여기에 '윈도우 95'가 등장하면서 기존 PC9800기반, 독자적인 시스템 구조를 가지고 나가던 일본도 확장된 영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저는 운이 나쁘게도 게임기 영향을 주변 인간들보다 훨씬 늦게 접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빠르게 접근을 하게되는 위용을 발휘하게 됩니다. 더불어 주변 웬수들 중 약 20%가 게임업계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게임관련 잡지쪽으로까지 진출을 하는 상황이 되고말았으니 과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쪽으로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취미인들이 어느새 게임이라는 문화쪽으로 관련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놀랐지요.
게다가 그녀석들이, 언제나 주변에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며서 에헤헤하던 녀석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이나 게임업체에서 이름을 내놓는 존재들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참 놀랐지요. 만일 이때 저도 이쪽으로 흘러들어갔더라면 지금 쯤이면 전혀 다른 입장에 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게임기 시장은 앞서 말한대로 슈퍼패미콤이 패자였습니다. 최소한 1995년 연말까지는 슈퍼패미콤의 위용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후발주자 게임개발 업체와 한국게임문화들은 이쪽을 더욱 빨리 받아들였다고 하겠습니다. 어느날 집 주변 게임개발사에 플레이스테이션 개발키트가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놀라서 구경을 갔던 기억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1994년에 발표된 슈퍼패미컴 판 <파이널판타지 6>는 큰 히트를 기록했고 일본식 RPG의 양대주자로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이녀석이 1996년에 들어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7>을 발표할지는 다들 몰랐지요. 물론 업계진행상황을 알고 있었던 이들은 정보를 빨리 얻어 루머아닌 루머를 전달했습니다. 1995년에 들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이름을 각인하게 된 경우 중 하나가 바로 이 FF7이 이적하는 현상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한 브랜드 하드웨어에서 성공한 게임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타 브랜드로 이동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물론 컨버팅도 어려운 점이 있지만 자신들의 영역을 확고히 잡으려는 브랜드 입지 전략도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진행되었던 부분입니다.
물론 스퀘어의 입장에서 보면 93~4년 사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던 닌텐도 CDROM 기반 소프트웨어 전략에 선점하고자 개발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좌절된 상황에서 초기 투자된 비용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약 130억원을 넘어서 최종적으로 스퀘어는 160억원에 달하는 게임개발투자비용을 들여 차세대 게임개발환경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프트 하나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큰 것도 있었지만 워낙 다양한 실험작을 쏟아내고 있었던 스퀘어나 중견게임업체들은 이 기회에 확실하게 자신들의 능력,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 소니, 그리고 세가가 내놓은 CDROM기반 게임기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때만 해도 프로그램이나 개발 내부적인 진행상황은 잘 모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중심으로 선택, 진행해나갔다고 하겠습니다.
너무 코어한 작품들은 주변에서 즐기고 권장해주는 웬수들이 많았기때문에 따로 집중할 필요가 없었고 라이트한 감각으로 이런저런 게임을 건드려 보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소니는 자체적으로 게임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기존 CDROM기반 게임보다 더 뛰어나고 즐거운, 그리고 행복한 재미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하겠습니다. 1995년까지 그 이름조차 들어보기 힘들었던 소니의 게임기는 연말이 되어갈 때, 애들이 가장 원하는 게임기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엄청난 기세를 몰았다고 하겠지요.
그러면서 나온 컴퓨터 그래픽 표현에 대한 기준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물론 윈도우 95때문에 PC기반 게임이나 속칭 미소녀게임 장르에까지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대단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8비트 패미컴 시절부터 게임을 해온 이들에게는 감개무량한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에는 상당히 마니악한 게임유저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싫건 좋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도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가지고 있던 돈들 대부분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기존 취미영역에 있어서 분할되어야 할 금전적 여유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만화책, 애니메이션 소프트, 음반, 영화 소프트 등을 사모는 것에 이어서 장난감, 여행, 패션, 유흥비 등을 지출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뭐 죽을 지경이지요. 버는 족족, 월급이 들어온지 14분만에 다 탕진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소비 시대의 경험을 하게 해준 것이 바로 1995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소니 플레이 스테이션보다 한달 먼저 나온 세가새턴(セガサターン)은 44,800엔이라는 가격때문에 초기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이해를 약 1년이 지난 1995년 연말에 구입을 했는데 아직도 방구석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녀석이기도 합니다. PS기기는 이후 고장으로 인해 총 3번 바꾸었습니다.




이 시대를 경험한 이들은 말 그대로 '차세대 게임기 전쟁'이라는 단어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3강으로 표현된 3DO진영까지 포함해서 (저는 이것까지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구입한 이들이 있어서 빌려서 조금 했을 뿐입니다. 다만 저는 흥미를 느낀 게임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게임기 하드웨어만 10개가 넘게 방구석에 깔리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게임 자체는 좋은 것이 많았다고 하겠지만 워낙 다양한 하드웨어에 다양한 소프트들이 쏟아지니 이것들을 일일히 다 체크하면서 구입한다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마나 한국에서 나를 게임기 세상에 빠트린 웬수가 결국 일본 세가와 일을 하게되면서 조금 더 빠른 정보망을 확보하게 되고, 후배 둘이 소니와, 한명이 일본게임업체에 가게되면서 상당히 좋은 인맥정보망이 형성되었지만 이것이 사실 도움이 된다기 보다, 소비욕구만 자꾸 일으키는 나쁜 쪽이었기 때문에 참~~~~거시기 했습니다. 게다가 이후 세대 취미인들 인맥들이 자꾸만 게임쪽으로 가게되면서 그 고행의 길은 무서운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1980년대에 있었던 기준과 1990년도 중반에 있었던 차세대 기종 변화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80년대 변화와는 무관한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 때는 게임을 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관심이 없었지만 주변인간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특히 '호환성'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나가지 않은 CDROM게임기 신규격들은 나름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여전히 상급기기가 하급기기에 대한 소프트호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PC시장이나 구성을 볼 때 가정용 게임기의 하드웨어 발전구성에 있어서 이 부분은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조금 운이 나빠서(?) 대부분의 기종들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소프트만 구해서 놀면되는 것이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하고 싶은 게임, 나중에 다시 추억하고픈 게임을 위해서 하드웨어를 전부 마련해둔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을 즐긴다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금전적인 부담을 물리치고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인데 그것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는 것이지요. 그때문에 하위기종에 대한 호환성은 나름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업체인 소니를 비롯한 모든 업체가 하위호환을 포기한 기종으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소니와 닌텐도가 같은 노선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라고 추억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환성이 없는 신규하드웨어를 가지고 게임시장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초기 컴퓨터세대 개발진들이 초기투자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게임소프트 개발인력과 비용은 이미 CD롬 시대로 넘어오면서 약 30~60배 가량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라는 기준을 볼 때 '게임성'만으로 어느정도 커버할 수 있는 시대에서 상업적인 수치가 도입되어 투자대비 이익이 확실하게 나오지 않으면 바로  주저앉아버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때문에 신규업체, 또는 자본력을 확보한 업체가 아니고서는 이쪽 시장으로 넘어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닌텐도는 안심을 했고, 2인자 세가와 신규업체 소니는 모험을 한 것이지요.
물론 모험, 도박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말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소니는 큰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특징이 있고 강력한 스타일을 추구한 게임들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개성만 보면 조금 아쉬운 경우도 있다고 하겠지만 95년 연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세이브 데이터 개조 액세서리' 액션리플레이의 등장은 플레이스테이션의 확장성을 더욱 크게 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한 코드들은 말 그대로 개발자 단계에서 기획되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것도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그것을 위식하고 만들어지는 게임도 있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개조열풍이 어느 선을 넘어서는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카피 시장으로 확장되게 됩니다. 이것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었는데 '롬게임'은 복사가 어렵다는 형태와 달리 CD롬 미디어가 급격하게 싸게 보급되는 시장이 형성되면서 (물론 윈도우 시스템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윈도우98'이 나올 즈음에는 이미 복사CD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 많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결국 96년 전후부터 속칭 복사칩을 달고 게임을 하게됩니다.
유명 몇몇 작품들은 계속 정품을 구입했지만 IMF시절을 맞이하면서 자주 일본에 갈 수 없게되고 이후 1999년까지 일에 바빠서 게임 자체를 건드리는 시간이 팍~~~~줄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저에게 있어서 게임을 제대로 딩가딩가하면서 즐긴 시간은 이 1995년까지였다는 말을 하게됩니다. 물론  다음세대 게임기들이 세상에 나올 때는 일과 취미열정이 함께할 수 있는 시즌이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실제 1996~1999년 동안은 즐길 수 있는 시간, 여유가 거의 없었다는 말을 하게됩니다.

여전히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플레이스테이션은 하드웨어를 2번이나 망가트려먹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새가 새턴은 할 게임이 상당히 적어서 구입 타이틀이 60여개 정도 전후라는 것입니다. 물론 <샤이닝 포스 3>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작품으로 추억을 하고 있지만 워낙 늦은 시기에 나와서 별로 새턴의 희망으로 자리잡기에는 어려웠다고 추억을 하게됩니다.




다만 앞서 말한대로 1995년 게임기들의 특징은 바로 입체감있는 3D그래픽 표현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때를 기준으로 게임기 소프트웨어에 표현되는 캐릭터, 세상, 아이템, 구성은 깊이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존 2D게임에서 가지고 즐길 수 있었던 게임성향과 달리 이제는 비주얼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슈퍼 마리오의 마리오같은 도트 캐릭터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말도 안될정도로 진~~~한 연결성을 가지면서 수많은 바보(?)들이 울고 웃고, 행복해 하면서 이 작품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 포함되고요.

다만 여전히 말을 하게되는 CD롬 게임의 단점은 초기때부터 지금까지 '로딩속도'였습니다.
그런 점을 비교하면 확실히 '새턴'이 압승이었지요. 플레이스테이션은 다양한 게임들을 선보였지만 대부분 그 로딩때문에 지겨워했고, 이후 PC기반 에뮬레이터를 활용하게되는 이들이 꼭 하는 말이 바로 이 로딩속도에 대한 악몽을 개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여전히 95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투신전>과 <릿지 레이서>를 말하게 됩니다. 데빌카와 엔젤카가 보여준 엄청난 가속에는 눈이 돌아갔지요.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기반 게임은 더욱 화려하고 더욱 안정적이면서 더욱 뛰어난 게임성을 가지고 1998년까지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줍니다. 물론 슈퍼패미콤의 아성에는 도전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었지만 CD롬기반 새로운 게임시장에서 차근차근 쌓아간 입지는 게임기 업체로서의 소니가 시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랜시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만일 저도 이 시대를 넘어서까지 계속 게임에 빠져있었더라면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경험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