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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Story/Consol Game

MSX, AMIGA, X68000은 게임기였다?


가끔 뻔하디 뻔한 이야기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1980~90년대를 추억하는 가운데 가정용 게임기는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하게 합니다. 다만 지역적인 편차는 있더군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어떤 동네에서는 패밀리 컴퓨터가 왕이었고 어떤 동네에서는 PC엔진, 어떤 동네에서는 MSX가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친구 선배 중에 우리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동네 구멍가게식 게임점포를 운영한 분이 있는데 그분은 총 3번 점포 이사를 했습니다.
학교근처에서 하다가 아파트 상가쪽으로 갔고 이후에 다시 좀 더 큰 상가로 이동을 해서 게임점포를 하셨지요.
그분과 이야기를 해보면 참 다양한, 그리고 지역마다 틀린 가정용게임기 시장에 대한 이래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덩달아 일본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아도 확실히 가정용 게임기는 지역에 따라서 다른 재미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그런 지역 편차를 추억하는 가운데 상당히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지역적이고 추억을 달리하게 되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급으로 혼동이 되는 것 중 몇가지가 바로 MSX, AMIGA, X68000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는 이 게임기(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들을 1980년대에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용하고 즐긴 이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제가 1991년 일본에 가기전까지는 이게 게임기인지 PC역할을 하고 있는 제품인지 계속 생각을 해보게되는 이유는 이것들이 대부분 PC통신환경에서 구축된 디지털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일반적이지 않은, 조금 공대생스러운 감각으로 말하게 되는 1980년대 통신문화를 생각해본다면 전혀 어색한 것이 아니지만 지역적으로 편차가 있는 보급때문에 나중에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면 과연 이것들이 게임기인지 PC였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세가 마크 스리(Mk.Ⅲ)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네이버를 통해서 알게된 후배가 1980년대 게임기 시장에 있어서 희소성, 가치가 있는 게임관련 이야기를 질문하는 가운데 'my card'라는 제품에 대한 질문을 하게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녀석 저 녀석과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한참 길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985년에 10월에 출시된 세가 '마크스리'는  본래 1983년 등장한 SG1000모델에서 시작한 8비트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효시적인 게임기기의 변천에 의해서 나온 버전 업 제품입니다.


이 녀석이 나름대로 화제를 부른 가정용 게임기, 그러나 이름은 컴퓨터 비디오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세가의 SG1000입니다.
이녀석을 기준으로 말하면 가정용 게임기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일본 게임업계의 금자탑………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뭐래도 나름대로 좋은 녀석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 작동되는 모습을 보았는데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한 퀄리티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가정용 게임기 역사에 있어서 그 맥을 보여주는 닌텐도가 빠질 수는 없지만,


과연 1977년에 나온 이 'TV게임 6'와 나중에 나온 '15'을 어떤 형태로 봐야할지는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시장 분류에 있어서 가정용 게임기, 콘솔게임기기의 역사를 만들게 한 것 중 닌텐도의 이녀석과 세가의 SG1000을 빼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다만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멋졌고 하는 말을 하기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전통 게임분류, 전자오락을 알고있는 세가에서 나온 '세가파'와 화투나 트럼프, 장기판, 바둑판을 만들던 닌텐도가 미츠비시와 결합해서 만든 TV게임기가 보여준 대중성을 선호하는 '닌텐도파'의 열띤 경합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고 하겠지만요.

사실 저라면 같은 1983년에 등장한 패밀리컴퓨터(패미컴)이나 SG1000이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두녀석은 발매일도 같습니다. 1983년 7월 15일입니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의미로 볼 때 전통파나 옆에서 끼어들어온 파냐 라는 식의 농, 또는 의견대립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소설가, 만화가, 게임제작, 애니메이터 들 중에서 이런 것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존재해서 세가를 좋아하는 이는 세가만, 닌텐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닌텐도만~ 즐긴다!! 라는 암묵의 철칙이 있었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사실, 세가는 다른 제품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SG1000과 같은 발매일,
SC3000이라고 하는 모델을 말입니다.


얼레? 어디서 많이 본……?
예 MSX라고 하겠습니다.
실제 시장에서는 1980년대 나름대로 가정용 컴퓨터환경을 지원하는 MSX규격이 보급되면서 퍼스널 규격에 따른 MSX시스템이 여기저기 누비고 다닐 때였습니다. 고급게임기 시장으로서 PC환경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가정용 PC규격, 일본 스타일을 보여준 이런 스타일이 한참 날릴 때였지요.
다만 세가 SC3000은 하드웨어는 MSX와 거의 동일하다고 하겠지만 내장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달라서 실제 MSX와는 호환성이 없는 전용 컴퓨터 머신이었습니다. 그래도 SEGA제 게임이 돌아간다는 것은 나름대로 매력적인 선택이라고 하겠지만요.
그래서 순수한 가정용 게임기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쇼를 하는 닌텐도와 달리 조금 분파가 갈리는 세가는 나름대로 확장성을 다른 쪽으로도 보고 있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도 저의 게임기 인생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1991년 일본에 갔을 때 대뜸 친구 몇이 세가파와 닌텐도 파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이 친구들 덕분에 얻게된 지식일 뿐입니다.


패미컴이 시장장악력을 펼쳐가는 가운데 세가는 위에 보이는 '마크스리'를 발표하면서 8비트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펼쳤고, 이후 메가드라이브까지 등장시키면서 게임기 시장에 있어서 가희 보여줄 수 있을만한 야망은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한국에서도 조금씩 보였고, 일부 있는 집안애들이나 아는 애들은 이런 기기를 만져볼 수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소프트웨어가 원할하게 나오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닌텐도나 세가나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 것은 상당히 늦은 시기였기 때문에 하드웨어가 신나게 가동할 수 있었던 3~4년 사이에 나온 타이틀이 2~30개도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정용 게임기라기 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컴퓨터 산업, 컴퓨터 기술을 조금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공부도 되는 기기라는 식으로 알려진다고 하겠지요.
실제 잘 모르던 부모님 세대들은 그냥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구입을 해주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실 잘은 모르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쪽 마크스리용으로는 3D안경이 달린 제품도 나왔기 때문에 지금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닌텐도 버철보이 시스템과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 세가에도 존재했습니다.
이쪽은 단순하게 3D어댑터만 달면 바로 3D안경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녀석이고, 일본내 판매용이 아니라 미주지역 한정 판매용이었기 때문에 역수입하거나 해서 소장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나름대로 놀라운 가치를 전달하는 물건이라는 평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친구도 한 개 가지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작동하지 않는, 망가진 제품이어서 저는 이 기기가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말하려 하는 MSX란 어떤 녀석일까요?

실제 1980년대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개인용 컴퓨터 붐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한참 미국에서 IBM(또는 IBM호환규격) PC와 맥킨토시가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놓고 있을 때,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개인용 컴퓨터 규격을 주창하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의 기반은 IBM계열이라고 봐야겠지요.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사업부에 있던 니시 카즈히코(西和彦)가 나름대로 미국PC시장에서 애플과 싸움을 벌이고 있던 IBM이 호환규격을 보이면서 통일성이 있는 시장을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당시 일본전기(NEC)에서 내놓고 있는 PC88~98규격이나 세가 SC-3000, 코모도어의 AMIGA 규격등으로 쇼를 하면서 자신네 제품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을 알리면서 시장을 나누어먹고 있는 것을 보았고, 여타 기업들이 참여하고 싶어도 쉽게 뛰어들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서 고안을 하게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 호환성 해결방안으로 개발된 것이 일본 아스키사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공동으로 제정한 통일 규격, Machines with Software eXchangeablity = 이것이 MSX로 약칭됩니다.


보시다시피 소니제 MSX등을 비롯하여 JVC, 필립스, 도시바, 히다치, 카시오, 파이오니아, 산요, 파나소닉, 캐논과 같이 거의 모든 가정용전자기업이 다 뛰어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금성전자, 대우전자도 포함됩니다.
NEC와 코모도어, 샤프가 나누어 먹고 있던 가정용 PC시장에 대한 대립형태로서, 앞으로 확실하게 차세대 시장으로 부각할 것이 확실한 PC시장에 모든 업체가 다 뛰어든 것이라고 하겠지요.
덕분에 MSX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기기라고 해도 어디에서 만든 MSX인가에 따라 그 가치가 조금씩 달리 거론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친구가 가지고 있던 녀석은 '야마하'였습니다. 예, 야마하도 뛰어들었지요. 거의 모든 전자업체가 다 뛰어들어 제정한 것이 이 MSX였습니다. 



이녀석은 MSX 터보R과 연결된 모습입니다.
MSX는 MSX, MSX2, MSX2+, MSX turboR이라는 4개 규격으로 발전을 해왔는데 이것은 이후 MSX규격을 만족하는 모든 PC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MSX를 게임기로 봐야하는가? 라는 말도 하게되지만,



까놓고 말해서 제 주변에서 MSX를 게임기가 아닌 용도로 활용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_-;).
저는 이 기기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게다가 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미 1985~1989년 사이에 이 것을 가지고 게임을 즐기는 인간들이 주변에 제법 많았습니다.
저는 반대로 라이카에서 나온 워드프로세서 전용 기기를 손에 넣었고, 이것으로 스캐너나 타이핑, 편집, 그리고 책을 만들어보는 쇼를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컴퓨터 게임, 가정용게임기와는 거리가 먼 시대를 살았다고 하겠지요.
MSX에 대한 저의 추억이 아니라 주변 인간들의 추억을 종합해보면 하드웨어 규격도 범용성이 강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제작한 MSX 베이직을 기본 운영체제로 했고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데이터 카세트 레코더, 퀵 디스크 드라이브,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같은 요상한 애들을 더해서 더 빠르고 쾌적한, 그리고 다양한 즐거움에 직면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디스크 BASIC이 추가 내장되어서 MS-DOS를 기반으로 제작된 MSX-DOS를 사용할 수 있었고 이것은 다양한 확장성과 개발환경을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MSX에 사용된 그래픽 칩은 지금도 유명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TI-99/4A나 TMS9918등을 이용했는데 이런 것 덕분에 (여타 게임기와는 상대도 안될정도로)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했고 덕분에 NEC나 여타 브랜드 PC와 달리 사무용 컴퓨터용 소프트보다 게임용 소프트웨어가 왕창 나와서 MSX = 게임기라는 이미지는 지울 수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대우전자에서 나온 '재믹스'는 MSX에서 키보드를 제거한 가정용 게임기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요.


이후에 메모리& 비디오 기능이 강화된 MSX2가 등장했고 이것은 게임시장을 확대시켜줍니다. 제가 한참 세운상가나 이태원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해적판 LP를 수집하고 다닐 때 이상한 구석에서 이상한 게임상점들이 바글바글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게임샵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달라서 메가게임(MEGA GAME)을 지원하는 다양한 MSX게임들을 불법으로 카피해주는 곳들이었습니다. 5인치 규격은 초기에 1MB가 되지 않았고 지원규격도 나오지 않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드디어 MB에 도달하거나 넘어서는 게임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후 3.5인치 하드 플로피 디스크가 등장하면서 1.2, 1.4, 이후 1.8MB까지 지원되는 규격으로 발전했고 드디어 모든 MSX하드웨어 기반에서 MB를 지원하는 게임환경을 여타 게임기와 비교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과 더불어 MSX시리즈가 엄청난 발전을 하게된 계기는 바로 일본 특유의 미소녀게임 환경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듣도보지도 못한 게임 장르, 어덜트 게임을 MSX에서는 구동이 가능했습니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미소녀 게임 팬들은 이 MSX를 기반으로 등장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 엄청비싼 PC88~98기종에서 즐길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이제 좀 저렴한 MSX시장에서 구동되는 것이었지요.

다만 저는 이런 환경과 굉장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시 주변 컴퓨터 학원에서 볼 수 있었던 컴퓨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애들은 대부분 애플과 MSX였는데 이후 비디오 처리능력을 강화시킨 MSX2+에 이어서
1990년대에 들어 PCM, MIDI를 장착하고 고속 CPU를 내장한 16비트 PC인 MSX turboR이 나왔습니다. 제 주변에는 대부분 MSX2 2+ 그리고 터보R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었습니다. 좀 무식한 취미인은 별도로 나온 롤랜드 미디를 구입하여 게임음악을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까지 갖추면서 대단히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지요. 저는 이해를 못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이 애들은 90년대에 들어 'IBM 호환 PC'에 밀려서 사라지지만 아직도 게임용 컴퓨터로서 높은 지지를 받았던 기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드디어 나오는 X68000은 통칭 엑스 육만팔천, 일본 발음도 에크스 로쿠만핫센(エックス ろくまんはっせん)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녀석은 1987년 샤프가 개발한 16비트 PC입니다.

당시 광고 전략에 따르면 ‘퍼스널 워크스테이션’이라는 말을 달고 나왔습니다.

정식 제품 번호는 CZ-600이었기 때문에 X와는 상관이 없지만(^^) 모두들 제품번호보다 X68000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 기종을 가지고 있었던 인간도 좀 주변에 있었습니다.

본래는 1986년 PC-TV X1을 개발한 샤프전자 TV사업부가 개발주체였는데 이것을 기반으로 다시 후속기로 등장한 제품이 X68000입니다.

이 녀석이 자랑한 것은 제가 좋아했던 여성가수 오기노메 요우꼬(荻野目洋子)가 광고한 65536색 컬러! 였다고 합니다.

그런 수치가 무슨 소리인가? 하는 생각을 하던 저였지만(^^ 당시는 16진수가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나름 있어 보이는 컬러 발색덕분에 굉장히 무시무시한 스타일을 보여준 게임기라고 하겠지요.

물론 가격은 무시무시했습니다.

무엇보다 16비트머신에 65536컬러발색!이되는 무지막지한 게임기……… 물론 게임기로선 나온 것은 아니지만 화질과 사운드 재생에 있어서 엄청난 하드웨어였던 만큼 게임기로서는 최고봉에 속하는 기기~ 라는 평을 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이나 한국 친구들이 “나 이런 것 가지고 있다~ 봐라 엄청나지~”

라고 저에게 자랑을 해도 저는 그게 뭔 소리인가 알아보지 못해서 그 친구들을 실망스럽게 했지만 말입니다.

찾은 이미지에도 당당하게 게임화면이 들어가 있는 것 처럼, 당시 엄청난 게임용 PC라는 인식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물론 이런 것도 사실 그런 것을 개발용으로 사용하던 인간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있어서는 게임기가 아니었지만 저는 그런 사실을 잘 몰랐고 일반적으로는 게임을 통한 성능테스트가 아니면 이 기기에 때한 가치를 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제가 무지했기 때문에 자랑을 하고 싶은 친구들의 자랑을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확실히 이런저런 취향을 가진 이들의 레벨에 맞추어 있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시장에서 말을 하게되면 꼭 빠질 수 없는 녀석, 빠지면 엄청나게 섭섭해 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아미가(Amiga)입니다.
저 자신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기기였지만 나중에 유럽, 미주지역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게되면 꼭 거론되는 명품 게임기였지요.
(물론 게임기로 기억하는 것은 취향적인 부분입니다 - ^^)
이 녀석은 1985년에 코모도어 인터네셔널에서 발표한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아미가라는 이름은 스페이언으로 여자친구들이라는 뜻을 말합니다.
덕분에 아미가는 좀 '특이한 여친'이라는 형태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따지면 16비트 ~32비트 전환기를 가져왔던 전통이 있는 애들인데, 아타리(ATARI)라고 알려진 아타리2600개발에서 시작해서 아타리 리눅스나 3DO쪽 하드웨어 설계를 담당한 제이 마이너(Jay Miner)를 중심으로 게임용 조이스틱을 개발하던 도중에 등장시킨 브랜드가 이 AMIGA라고 합니다.
이런저런 유여곡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애플 맥킨토시(Macintosh)가 시장에서 16비트 PC붐을 일으키던 것때문에 모두들 새로운 PC시장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이때 이 아미가회사에 투자를 결힘한 것이 코모도어(commodore)였다고 합니다. 코모도어는 본래 8비트 PC시장에서 나름대로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빠른 16비트 전환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기종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타리가 개발해둔 16비트 컴퓨터 기반이 되는
ATARI 520ST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이런 형태로, 아미가라는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 되었습니다.
모토로라에서 개발한
MC6800 CPU를 장착한 16비트 컴퓨터였지만 이후 68020, 68030, 68040 CPU를 장착한 32비트 컴퓨터 제품도 출시되었고 컬러 그래픽 칩 + 사운드 칩셋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우스'를 장착하고 나와서 색다른 아미가OS기반 GUI 환경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시장에서 그 위용을 계속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겠습니다.

맥킨토시는 게임용이 아니었지만 이 녀석은 맥킨토시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게임이 돌아가는 녀석이었고 동시대 제품에 비해 유일하게 3DCG나 비디오 영상 편집이 가능한 제품이었기 때문에 당시 좀 있는 영상, 음성 제작자나 이런저런 아티스트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제가 아미가를 본 것은 음악작업을 하는 친구 스튜디오에서 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애플제품이나 IBM호환기들은 이 아미가에게 죽어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정작 시장을 휘어잡은 것은 윈도우 머신으로 통칭되는 IBM호환기기들이었지요. 그리고 새롭게 약진하는 애플도 서서히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이 코모도어회사는 1994년 도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1994년 IT업계에 있어서 최대의 화제였던 코모도어 도산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PC시장은 다른 모습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미가머신을 따라한 것이 이 X68000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나름대로 오랜시간 일본의 PC98시리즈와 싸워온, 일본의 맥킨토시라는 말을 듣던 이 녀석은 코모더어와 같이 시장에서 밀려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가끔 게임개발실 구석에 있는 X68000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과거를 추억하는 게임시대들에게 있어서 MSX, AMIGA, X68000은 전설적인 PC기반 게임기이면서 이것을 기반으로 가정용 게임기들이 다음세대로 발전하는 기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애들을 가지고 게임을 즐긴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저는 PC엔진 정도가 딱맞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말입니다.
물론 게임 자체에 그렇게 흥미가 없었으니 별것 아닌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지금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 때 기기들을 추억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런 연유때문에 저도 PC를 기반으로 게임환경을 무척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임광 친구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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