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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일본과 그렇지 않은 일본

현실에서 생각해볼 때 일본이 가진 만화, 애니메이션적인 풍토는
한국이 가진 것과 다른,
변화하기 힘든 오락문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부분에 있어서 묘사되는 성적인 표현이나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문화적 이해는

아무래도 도덕적인 기준이 동양과 서양이 가지고 있는

전통성 이상으로 굉장히 다양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 만화, 애니메이션이라는 한 두가지를 가지고

문화적인 기준을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요.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를 비롯하여

각 PTA단체는 문화적인 성숙과 더불어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미묘하게 더해진 일본의 현 주소를

다시 정리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미묘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일본 만화에 있어서

특징적으로 잘 나오는 표현 몇가지는 자극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그런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결국 숙성된 지금 일본 만화계를 되돌아 보면

진짜로 그런 부분들이 빠진 만화, 애니메이션이 어떤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말도 나옵니다.

성적 표현에 대한 규제나 잔인한 폭력적 성향 묘사는

한국과 같은 유교적 성격이 강한 사회, 문화적 구성을 떠나서

부패하는 구조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되는 성, 폭력에 대한 표현을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실제 자유로운 표현의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규약이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게 합니다.

반면 그런 자유안에서 성장한 문화가 지금에 와서

그것은 사회악적 요소였기 때문에 제거해야한다고 말을 하면

틀림없이 그것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에 대한 말을 하게됩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여성 객체의 팬티를 보여주는 장면을

아주 자연스럽게 소년소녀 시청작품에 포함시키는 일본 취미문화는

'과연 성적인 묘사인가?'

라는 단적인 지침을 떠나서 소년만화라고 말하는 잡지는 물론이요.

'영'이라는 표현에서 지칭되는 청소년 소녀의 취미영역에 있어서

성적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매력적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문화적인 표현이나 직설적인 대사 등은

아무리 내성적인 캐릭터라고 해도 그 상황 자체가 묘한 밸런스를 만들어주는데

정작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런 부분은 흥미요소로 볼 수도 있고,

이성의 누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어느새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부분에 있어서 신체노출 정도를 가지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을 바탕으로 할 때

'노출이라는 표현'은 개성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코 어떤 형태로 완성되고 그 안에서 다시 성장하는

문화적인 가능성이라고 해도 실제, '사랑할 수 있는 재미'는

굉장히 미묘합니다.

어렸을 적에 느낄 수 있었던 성적인 호기심이나

폭력에 대한 저항의식, 더불어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개성에 대한 자신감을 굉장히 자만하게 됩니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일상에서는 청춘의 폭주,

자신만만한 자기중심적인 짧은 생각 하나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멍멍한 인생의 길을 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소위 말하는 찌질한 종자라고 하겠지요.

 

저도 그런 부류안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성격을 말하기 어렵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었던 취미적인 즐거움과 재미는 결코

정상적인 가능성, 교육환경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겠지요.

동화, 만화, 애니메이션이 꼭 행복한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 안에서 깨우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결코 하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음악, 영화, 예술, 문화단편에서 볼 수 있는 재미는 굉장히 많지만

우선은 자극적인 흥미요소에 끌리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굉장히 많이 보여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다시 보는 것이 결국 진정한 자신의 인생 형성에 어떤 것을

만들어 줄지는 누구라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적인 가능성에서 볼 때 일본은 수십년간 당연하게

해왔던 표현의 자유 안에서 성적, 폭력에 대한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대결구도는 게임과 연결되기 쉽다는 시장흥행성때문에

더욱 왕도(王道)취급을 받으면서

(물론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기준이라고 하겠지만요)

그 안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단순하게 인간 본연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토양을 보여준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합니다.

물론, 그것을 어떤 나라가 어떤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그 기반이 다른 성격을 가진 사회가 있기 때문이지만요.

25년전만 해도 정말 경멸하는 일본문화의 통속적인 형태를

지금 우리나라는 당연하게 잘 받아들이고

그안에서 다시 자국의 문화 안에서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국과 일본의 문화 자체가 가진 토양이 다르다고 해도

결국 그 안에서 공감하는 문화적 이해는 같아질 수 있다는

문화침략설도 충분히 이런 형태에서 예상된 부분이었습니다.

 

실제 취미문화권에서 볼 때 결국, 일본문화,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부분에 만족하는 부분과

그런 부분이 빠졌을 때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나누어서보면

사실,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제가 10대일 때와 20대일때, 30~60대 일때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다양한 시대와 문화,

장소에서 만나본 이들과 교류한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일본의 출판사,

애니메이션 산업들은 앞으로 어떤 부분을 가지고

일본의 현실과 다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일본 도쿄에서는 성적표현에 대한 만화문화에 대한

억제력과 그것을 돌파하려는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사실 말을 하고 보면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당연한

연출들이 당연하게 보여지는 과정을 보면서

그것을 얼마나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미 판결회의록에 따르면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까지 발전을 했지만

'실제로'

이 법령이 어떤 가능성과 어떤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것은 굉장히 미묘한 상황이라고 하겠지요.

 

어쨌든 세계 문화에 있어서 당당하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표현해온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심지어 게임문화에 까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는

앞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저질문화도 문화다!

저급한 표현도 예술영역이다!

사업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이용할 수 있다!

라는 것은 상업과 함께 성공할 수 있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벗는 것에 결코 거부감이 없는 문화적 사회인식은

아무래도 이런저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비록 흥미위주의 가능성이라는 말도 있겠지만 이번 대립으로 인해서

앞으로 성인지향 만화,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데 대한 형태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많은 이들의 뇌리속에 박힌 이상 앞으로 그 가능성은

다양한 문화적 발전 이상으로 더욱 무시무시한 재미를 보여줄지도 모르겠습니다.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