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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ation Story/2010 / 21c

모든 이야기에는 주제가 있지요

대부분의 취미생활이라고 해도 만화 타이틀과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다들 주제를 가지고 진행됩니다.

가끔 너무 진행 코드가 길어지면서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구성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서 조금 당황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성장하고 고뇌하면서 주제를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여러가지 감정적 연결을 가집니다.

다만 이 주제라는 부분도 근래에 와서 보면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제가 아니라 그냥 보여주기 위한 소재 중 하나로서 정의되는 것입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부분은 대부분 주제로서 부여받는 구성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가에 따라 다른 가치관의 대립을 보여줍니다.

누구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것이 옮은 것이라는 말을 하지만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 존재, 또는 단체에 있어서 그것은 전혀 다른 관점,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오해가 오해를 부르는 경우라고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여러 가지 주제와 연결된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선택점은 갈등 요소가 됩니다. 사실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그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엮인 상황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부분도 굉장히 모호해지고 있는 구성이 많아지고 있고요.

근래에는 반전, 또는 반전의 반전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가로지르는 기준이 요동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정된 주제 진행에 있어서는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주최자의 의도가 꾸준히 보여야 하지만 가끔 그것을 넘어서는 관계라는 것도 보게 됩니다.

70년대 이후에 가장 많이 보이는 것중 하나가, 라이벌 구도를 통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주인공보다 더 멋진 라이벌, 상대자에 대한 호감도 상승이라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근래에는 그것을 의도하여 처음부터 기획되어 만들어진 경쟁관계, 상대적 입장에 있지만 역시 존재하는 가능성이 주인공 돋보이기가 아니라 상대되는 가치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존재로 만들어집니다.

대조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거에는 주인공의 행동과 가치관에 있어서 나쁜 놈들은 그냥 나쁜 놈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부연 설명을 하는 이유도 없었으며, 최종적인 그 가치관의 주최자인 악의 두목, 보스가 가진 사상을 가지고 모든 것이 표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중간에 소모되는 여러 가지 희생들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정의 실현을 위해서 말이지요.




지금은 그 정의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 부분들을 거론하는 가치관이 많습니다. 우정과 신뢰도 동시에 지켜나가기 어렵다는 형태를 통해서 과거에는 4페이지 정도면 끝날 구성을 책자 1권까지 표현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정보량의 분석이 높아졌다는 말도 합니다.

과거에는 일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드라마틱한 구조가 아니라 접근해가는 주인공의 시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어떤 결과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소년만화, 액션만화라는 화려한 결투 장면이 등장합니다. 비율 구조로 보면 10중 이야기 구성과 진행에 4가 들어가고 결투, 대결 구성에 있어서 3~4가 소모됩니다. 나머지 1~2가 시작과 끝을 말하지요.

지금은 다른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한정된 제약이 있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가 아니라고 할 때, 대부분 어느 정도 늘여나갈 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늘여나갑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80년대 일본 잡지 연재만화, 그중에서도 인기 작품들이 이런 수단을 사용하게 됩니다.

때문에 이 과정에 있어서 '주제'라는 것이 한발 뒤로 물러가고, 주변 상황을 통틀어 설명, 이해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미리 준비해둔 서브 캐릭터, 또는 라이벌 관계에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시 등장하거나 파생되는 인물이나 사건, 사고에 재설정된 관계, 그리고 숨겨진 무언가(또는 반전 요소)등을 포함하여 이야기의 중심이 이동하거나(또는 바뀌거나) 소재의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런 구성은 이제 많이 일반화되어 단순하게 주인공의 이야기만으로 모든 드라마를 이해하는 시점은 끝났다고도 말을 합니다.

과거에는 주인공이 당하게 될 어떤 사건, 극적 구조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의도나 연출을 적극적으로 피하는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오히려 그런 방법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립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 반복되는 패턴을 가진 영웅 드라마에서 더욱 또렷하게 나타나지요.




반대로 보면 대립하는 과정에 있어서 주인공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은 악의 무리에 대한 어벙함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왜?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시점에서 독자, 시청자들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사회관계를 이루어낸 성인이라는 가치를 이해한다고 하겠지요.

소년, 소녀의 마음에서는 단순한 목적, 주로 모험, 성장, 사랑 등 쟁취되는 소주제에 목숨을 겁니다.

그것만이 모든 세상을 대변하는 주제이자 표현 목적이니까요.


대부분 정의 실현, 권선징악, 그리고 행복 추구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취미 영역의 작품들은 크게 다른 것이 없이 비슷한 정공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보는 이들의 시점, 관점, 이해 가치론을 통한 긍정적인 효과를 노리지요.

나쁜 놈들은 단순하게 나쁜 짓을 하고 그에 따른 인과응보를 주인공의 노력에 의한 현실 가치로 부여받습니다. 가끔은 심각하게 큰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의 표현과정에 있어서 애들 작품과 청소년 작품, 그리고 성인이 바라보는 작품에 대한 구분이 크게 바뀐다고 하겠지요.


대부분의 작품들은 관찰자에 속하는 독자, 시청자의 입장을 이야기 속의 주제에 동화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직업군이 일반적인 사회 관념 속에서 나쁜 쪽에 속하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말 그대로 도둑이나 사기꾼, 또는 살인자 같은 입장에 속한) 그가 주인공인 이유를 독자에게 인식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초반에는 지질하고 생각이 없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식을 키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대단히 높은 만족도를 알려줍니다.

현실은 드라마나 소설과 같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극적인 대비를 일상생활에 비교하는 것은 또 어렵습니다.

때문에 주제라는 것이 필요하지요.

이야기의 목적으로서 끝으로 향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것이 필요합니다.

스포츠 드라마는 대부분 승리, 우승, 영광이라는 부분과 함께 마무리되며, 청춘 드라마는 입학과 졸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사실 인생이라는 부분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단편적인 드라마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요. 만화라는 장르는 그래서 또 다른 판타지라는 말도 합니다. 그 판타지 안에서 접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이 얼마나 극적인 감동을 가져올 수 있는가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치가 달라지지요. 대부분 주제라는 것보다 그 장르가 가진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주제가 소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제. 웃음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제, 열정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제와 같습니다.

근래에는 먹는 행복을 위해서 만들어진 주제라는 부분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주제라는 부분만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하고 가늠하는 과정도 많이 퇴색되었다는 말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연령별 작품 구분에 있어서 주제 진행과 주체 표현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꾸준히 바라보고 있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것도 어떤 틀에 박힌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래봤자 취미~'시리즈에 들어갈 칼럼 중 하나였던 것을 대충 짧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