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nimation Story/2010 / 21c

바람이 분다 - 바람과 함께 걸어가다


바람이 분다

일본 / 風立ちぬ : The Wind Rises

MOVIE

판타지 드라마

일본 2013년 7월 20일

한국 2013년 9월 5일

전 1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감상 매체 Therter / BR


스토리-감동 20 : 16

스토리-웃음 15 : 6

스토리-특색 10 : 7

작화-캐릭터 15 : 12

작화-미술 10 : 6

음악 10 : 6

연출 10 : 7

Extra 10 : 7

67 Points = 

"우리가 보고 있는 게 도대체 뭐지?"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하겠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휴머니즘 넘치고 정겨운 감각이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온 사람들에게 어색한 영화라고 말을 합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와 일본,그리고 주변의 취미로운 시선을 가진 외국의 취미인들이 이작품을 보고 나눈 감상 기준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이 '판타지'라는 구분을 가지고 있었던 미야자키 작품 중에서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는 어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서 바라보는 시점과 이해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편협해서 엉뚱한 의미가 발생한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이 작품을 보고 난 후에 아쉬움을 말한다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좋은 매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과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으로서 선택이 옳았는지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미 일본내외의 선택권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 지브리라는 공식이 강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지요.


대부분, '전쟁 : WAR'이라는 테마나 배경을 가진 영화와 소설, 그리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그것을 통한 정의실현, 또는 그 혼돈의 소용돌이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게 되는지를 말합니다. 대부분 아동을 위한 작품영역에서는 '정의'가 표현되지만 성인영화에서는 누구의 정의가 아니라 그 작품의 주인공이 알아가게 되는 정의를 가지고 풀이 하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전쟁을 하는 흐름을 가진 아동영화들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진행되지만 그것이 조금 더 진지한 형태로 흘러가버리면 현실적인 비교와 함께 여러가지 의견이 동반됩니다. 근래에 한국에서도 이런 형태로 비교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처럼 말이지요.


물론 정치적, 사회적 시선이 제외된 오락성만으로 작품을 이해하려면 가능합니다.

다만 이 애니메이션은 일부러 그런 부분을 제외했습니다. 기존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영역에서는 확실히 다른,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브랜드 가치에 있어서 마지막 작품이라는 형태로 선보이기에는 조금 아쉬운 형태라는 말을 하게됩니다. 오히려 은퇴 후에 개별적으로 만든 작품이었더라면, 지브리와는 별개의 작품으로서 소개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영역에 있어서 하늘과 전쟁, 비행기 이야기라면 1992년에 발표한  [붉은돼지 : 紅の豚]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미야자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웃음, 유머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진실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몄다는 점에서 그의 꿈이 많이 연결된 성인지향 작품이면서 대중적인 이해를 얻었던 [붉은 돼지]와 함께 비견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늦게 하게된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두 작품의 블루레이를 가지고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붉은 돼지는 이 작품이 상영되는 시절과 비슷한 때에 블루레이를 발매했습니다. 물론 VHS와 LD DVD를 다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왕 비교할 것 블루레이와 함께 비교해보고 싶었던 추억도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붉은 돼지는 한국에서 상당히 늦은 시기인 2003년 9월에 개봉을 했던 작품으로서 제가 일본에 있을 때 만나보았던 그 시절의 추억과 감상과는 또 다른 형태로서 이해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겠지요.

때문에 역사, 정치, 사회적인 쟁점과는 다르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작품으로서의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가 보여준 것이 붉은 돼지라면 바람이 분다는 그런 부분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일본과 한국은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전까지 대중에 전달되는 정보량이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그런 부분이 강해졌지만 유명한 감독이나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간 영화에 대한 트레일러나 소식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것보다 조금 더 합니다. 전문지를 포함하여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작품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사전에 풀어서 보여주고 있지요. 이런 점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은 그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정보가 없이 대뜸 접하면 어색하기 그지없다는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일본문화권에서는 너무나도 뻔한 패턴이라고 해도 해외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분과 같다고 하겠지요.

한 두번 경험하다보면 그런 구성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이해할 수 있게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굉장한 이질감을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성장을 해서 어느정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더불어 일본문화권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도 형성하고 있지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와 영화에는 '총'이라는 무기가 상당히 자주, 자연스럽게 등장을 합니다.

그런 것이 일상적이라는 형태로 그려지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총기를 조심해야하고 사람들의 폭력에 있어서 총기를 통한 위험성을 인지하면서 살아간다고 하겠습니다. 정작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 수 이상은 그런 화기에 대한 이해관계를 현실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하게 이익집단과 정치적 결합에 의해서 유지되는 미국이 자존심, 역사라는 형태로 이해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요.


일본의 사무라이와 닌자라는 캐릭터는 영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등을 통해서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신비로운 몇몇가지를 제외하고 보면 상당히 비인도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깨닫습니다. 다만 영화같은 영상으로 볼 때는 액션 히어로서의 조건만이 눈에 들어올 뿐입니다.

이런 저런 소리를 떠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있어서 여러가지 자랑의 상징으로서 거론될 수 있는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郎)는 생전에 자신이 만든 전투기 제로센(零戦)보다 그전에 만들었던 '九試 / 실험용 비행기'까지의 제작과정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항공기술이 틀림없이 미래산업의 큰 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후진국이었던 일본의 현실에서 빨리 그것에 도달하고 싶은 인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때문에 이 작품에서도 널리 알려진 제로센의 설계자라는 형태보다 그전까지의 모습을 주축으로 한 호리코시 지로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겠습니다.

당연히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그의 꿈과 현실은 타협이라는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이 그 전쟁의 불씨를 키워 수많은 나라와 귀중한 생명을 잃게한 전쟁에 대한 정당성으로 비추어질리는 없지요.


개인적인 감상과 함께 이런저런 취미론을 나눈 이탈리아,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취미인들의 이야기를 더불어 보면 사실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던 간에 기존에 미야자키가 말했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 어른들을 위한 영화는 만들어서는 안된다 : アニメーション映画は子どものためにつくるもの。大人のための映画はつくっちゃいけない"라는 기존입장과 상반되는 구성이라는 점에서 반론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실제 전쟁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표현한 몇가지 작품군 중에서도 붉은 돼지와 바람이 분다는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붉은 돼지가 있다면 아이를 포함한 어른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바람이 분다 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부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애니메이션 자체가 가진 재미와 특성만을 가지고 즐기는 편이다보니 적당히 재미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 지브리 작품군들에 비해서 제 감상점수가 짠 이유는 간단합니다. 웃을만한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작품에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라고 웃을 수 있는 밝은 부분이 있엇지요. 심지어 전쟁이라는 나쁜 기운을 품고있는 작품이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작품으로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그러다보면 판타지에 가까운 미야자키 작품군과는 다른 현실감 넘치는 작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작품의 배경으로 흐르는 몇몇 인물상들을 보면서 전쟁과 세계정세의 흐름속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게되며서 꿈과 희망을 보여주기를 원한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미 그의 첫 은퇴작 [모노노케 히메]에서 잘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광기(狂氣)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보여주었던 그 연출과 의도, 그리고 삶에 대한 집착은 확실히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보여주는 의미가 많았던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감도 포함하면서 말이지요.

그런 의미로서 본다면 미야자키가 '은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발표했던 작품들이 대부분 순수한 아이들의 작품으로서 바라보는 경우가 드물어지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일본미디어가 원하는 미야자키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란 과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우리나라판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 상황적인 면이 있었겠지만 사랑이야기로 포장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판 이미지가 멋들어진 것인가? 라고 하면 또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여러가지 평가가치가 조금 달라지는 부분이겠지만 대표적인 상징성을 가진 제로센을 표면에 내세우고 '살아야 한다'를 강하게 어필한 구성은 또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표현되는 의미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호리코시 지로가 주인공이고 그가 꿈꾼 세상이 전투기로서 상징되었지만 그는 전쟁이라는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 인물이라는 것이겠지요. 다만 현실적으로 볼 때 일본의 대중에게도 호리코시는 그냥 '제로센의 아버지'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대중적으로 유명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도 있기 때문에 포스터에 제로센에 가까운 전투기 이미지가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지요. 이 부분은 확실히 악수(惡手)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냥 제로센을 빼고 그렸더라면 하는 바람이 생겼지요.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있지만요.

어찌 되었든 판타지, 아동용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인물을 어느정도 상징화한 드마라로서 완결지어야 하는 과정을 봤을 때 이 애니메이션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덜 재미있고 조금 덜 웃기지만 감독의 의지로서 표현할 수 있었던 작품 중 하나로서 기억하게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무언가 살짝 빠진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구성으로서 보았을 때 붉은 돼지와 함께 몰아서 보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상징적인 면으로서 새삼스럽게 보게되는 안노 히데아키의 그 영상은 조금 다른 감상을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안노의 연출력을 높이 사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는 나우시카는 보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 2013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1년 전에 보고난 후에 한번 적어두고 이후 다시 1년이 더 지난 후에 다시 적게됩니다.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디즈니 이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동양적인 색깔과 여러가지 가능성을 확실히 이 세상에 각인시켰고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가운데 일본을 떠나 수많은 나라에 팬층을 형성했으니 말입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좋은 가능성을 포함한 상징적인 존재로서 많은 부분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영원한 명작들을 한두작품이 아니라 십여작품 이상 남겼다는 점에서 몬스터급이라고 말을 하게됩니다.

사실 영화계에 있어서 한두 작품 대표작을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십여작품 이상을 남기는 경우는 정말 정말 드물거든요.

그런 의미로서 볼 때 그 이름을 걸고 나오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라는 것은 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의  [카구야 공주 이야기 : かぐや姫の物語]가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미로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이쪽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쪽도 간신히 지금이 되어 나온 블루레이를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요.

그렇게 이해를 하고 보면 2013년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카구야~ 이고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이 바람이 분다 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저런 미디어관련 이해관계를 떠나 2014년을 마무리해가는 과정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왜 일본 외 나라에서 평가를 새롭게 해야하는지 아리송한 부분도 있습니다. 현재의 팬층이 전후세대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과연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상업적인 이익을 올리는 것이 많았던 지금 시대에 있어서 이런 작품에 대한 비평과 비판, 그리고 인식의 차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설프게도 느껴지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그런 비판론이 강하게 일었지만 특히 2014년은 더했습니다. 아니 영화계 전체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 비교가 나오면서 이념적 대립으로서 평가하고자하는 논리적 대립도 강하게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뭐 저같이 그냥 영화는 영화일 뿐, 만화는 만화,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서 오락적인 중심으로 바라보게되는 경우에는 심각하게 따지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지는 좋고 나쁨보다 그런 의식으로서 작품의 껍질과 속을 나누어보기 시작하면 사실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영화라는 장르만이 남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중을 선동하는 영화장르라는 것이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에 있어서 그런 의식을 일부러 품고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일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나오기 힘들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 종교적인 색깔을 가진 비교는 어쩔 수 없겠지요)

때문에 처음 영상을 접하면서도 "이 영화는 이런 색깔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과정과 결과가 존재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끔 보면 상업적으로 흥행한 대중작품이 세상의 진리, 대중의 흐름으로서 안착하는 것을 봅니다.

예술적이면서 감동적인 보통 작품이 어떤 의미로서 남을지는 관련자들에게만 기억되는 것일 뿐, 대중에게는 인식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평론, 비평가의 논설, 또는 이해지수가 높은 인텔리젠트에 의한 평가가 높은 가치를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대중적인 가치론과 함께 바라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는 일과 달리 취미로운 감상에서 본다면 영화라는 장르가 보여주는 의미는 짧은 시간안에서 공감과 작가의 의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외곡된 편견으로 일관된 의도해석이라는 것을 통해 작품 자체보다 현실적 의미를 자신의 편의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하겠습니다.

때문에 선동적으로 (또는 팔아먹어서 경제적 이익을 남기고자하는 여러가지 편의성에 의한 형태로서) "이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런 말에 선동되어 의미없이 소비를 하는 정신적 가축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100인 100색이라고, 보는 사람의 환경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다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것을 억지로 부정하거나 일부러 색깔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점은 아무래도 역사, 사회,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등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아도 남에게는 불편한 그런 것이라고 하겠지요.

다만 그것이 나인지 남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또 어렵습니다.

여섯나라 친구들이 모여서 작품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본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은퇴작'으로서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상징적인 것, 그리고 그동안 보여왔던 작품군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많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토토로나 라퓨타, 키키, 나우시카에서 파생된 상품들을 구매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겠지만 이쪽 관련 상품에는 손이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나름 밀리터리 팬이라면 관련 상품, 또는 밀리터리 스케일 장난감을 구입하며서 즐길 수는 있겠지만 이 영화와 함께 감정적인 교류를 가지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사실, 여성 취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왜 소년들의 취미품목에 그렇게 밀리터리 장난감이나 전쟁관련 아이템들이 많은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도 접하게 됩니다. 남녀간의 인식차이라는 것도 존재하겠지요.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형태로 테마를 잡은 것과 함께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이 가진 꿈을 어떤 형태로 보여주려고 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그런 면들을 보면 수많은 전쟁관련 장비 개발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아인슈타인과 같은 존재는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질지 생각해봅니다.

누가 보면 정말 나쁜 살인자인 대륙의 정복자 알렉산더나 징기스칸, 나폴레옹이 역사적 평가로서 위인, 인물로서 구분되는 것과 함께 보면 더더욱 이 세상은 굉장히 이질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미 써두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냥 임시저장글로 남아 있은 것을 지금 보고 올려둡니다. 에헤헤. - 2014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