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ic Story/Comics

즐거운 만화감상과 비평 (1)


사람이 만화()를 보는 이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소설 같은 문학장르와 달리 흥미위주이고, 대중적인(그러면서도 분야별로 보면 마니악한) 이해력을 기반으로 그려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큼 보는 사람의 관심을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 흥행이라는 부분은 아무래도 경제환경과도 맞물려있지만요.

저라는 인간은 만화를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행복하다가 그려보는 즐거움(창작)도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보는 것만큼 만들어보는 재미도 충실하게 재현해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쇼를 해보기도 했지요.

그런 과정에서 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만화를 보는 재미도 단순하게 재미있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단순하게 10대일 때는 감상, 20대일 때는 정감, 30대일 때는 추억, 40대일 때는 논평, 50대일 때는 비론(比論)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정감이 있는 감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나는 과정에서는 아직도 딩가딩가한 현실이라고 말하지만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세 취미인과 말을 나누다가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작품을 추천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만화이건 게임이건, 애니메이션이건 전혀 관심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보라고 하는 것은 공부하기 싫은 녀석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블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감상점수는 어디까지나 제 감상기준에서 너무 단편적으로 기울지 않는 개인 감상에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적용하면서 나온 객관성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그런 것을 떠나서 감정이 섞인 주관으로 볼 때 좋아하는 작품은 다릅니다.

이미 만화감상문 제작기 포스트에서 그것을 알렸지만요.

제가 순수하게 감상적으로 좋게 느낀 부분은 제 감상점수에서 ‘Extra’라는 형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작품 하나를 보면서 느낌 감정의 깊이가 여타 작품과는 다른 작품들에게 Extra점수를 높게 주고 있습니다.

그 감상적인 점수가 높은 만화들은 이미 마음에 드는 만화책 이라는 포스트에서 밝혔기 때문에 충분히 아시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꼭 다른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기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만화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만화를 다른 사람이 싫어할 것이라는 기준도 역시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만화책 자체를 별로 관심거리에 두지 않고있던 사람에게 어떤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서 같은 취미영역으로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됩니다. 과거 다른 취향의 작품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몇몇이 모여서 서로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평을 하게 되었을 때 비교되는 기준이라는 것이 무척 다른 것을 알게되면서 그 기준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가지고 말해야 범용적으로 이해될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했지요.

실제 이런 기준은 과거에도 이미 정석이 있습니다.

비평 批評 은 일반적으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기준을 선별하게 되는데 문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선과 악을, 아름다운지 추한 것인지, 훌륭한 부분인지 아닌지 등을 분별하여 가치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문예비평은 대부분 어떤 주의(主義)나 형태에 따라서 구분되는 가치를 가지는데 대부분 시대적인 풍조, 가치관의 변화, 흐름, 유행 등에 따라서 기준이 바뀌거나 새롭게 추가됩니다.

일반적으로 ABC라는 (통합되는)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ABC를 어떻게 그리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해도 이후, 새롭게 등장한 DE, F라는 것이 세상에 나오면서 그것에 대한 평가는 기존에 있었던 ABC를 가지고 하게 됩니다. ABC에서 얼마나 발전, 또는 후퇴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가진 것이고 그 가치가 얼마나 새로운 문화의 발걸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평가하게 됩니다.

, 모든 새로운 것은 과거와 비교(比較)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ABCDEF가 새로운 문화로서 인정받고 있을 때 새로운 G가 등장하면 그 G를 평가하는데 ABCDEF가 전부 동원되어 비교가치를 분석하게 되지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만화책이라는 것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록 즐거운 기분을 얻기 위한 유희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1권 읽고, 2권 읽고 10, 1001000권이 되어가면 아무래도 정리, 또는 그동안 읽은 것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남는 무언가를 찾아보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면서 저 만보는 제 감상기준을 정리하게 되었지요.

그런 과정은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과거 읽었던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A라는 만화를 10년전에 보았을 때와 지금 보았을 때의 시야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결국 만화를 보건 어떤 취미생활을 하건 그 때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1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2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3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4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5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6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내가 70살일 때 본 <캔디 캔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처음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만화캐릭터였고 그 세계를 정겹게 그려준 만화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또 변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 보여주지만) 제 감상 기준은 이 작품을 본 시기를 비롯한 그 시대에 행복감으로 발전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저만의 ABCDEFG~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제 감상기준은 아마도 다른 이들이 가질 수 없는 저만의 판단기준이지요. 이 기준이 얼마나 대중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저 자신보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판단기준에 따라 바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대를 대표한 여러 가지 사례를 볼 때 비평론은 시대나 문화적 조류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면서 그 비평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논평을 통해서 그 안에서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가치를 논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로 남기게 됩니다.

ABCDEF~

---------+---------

ABCCEF~ ABCDDF~

---------+---------↓ ↓---------+---------

AEFGGE~                  BCDEFGE~                   CDEFAB~

 

등으로 나누어가면서 순서와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바꾸어가면서 그 상황에 대한 기준을 가지게 됩니다.

과거 정설에 기준하면 논리적인 구분에 따라서 ~기승전결~을 가진 고전적인 패턴을 가지고 말을 합니다. 그 구분이 반복될 것인지 아니면 역전된 상황에서 먼저 결과를 말하고 그 결과를 유추해 나가는 과정을 가질지 굉장히 미묘한 변화를 가지게 되지요.

같은 사람을 표현한다고 해도 그것을 추상적으로 그릴지 초현실적으로 그릴지에 따라서 바뀌고 귀엽게 축약해서 그릴지 사실적인 인간형을 따라서 그릴지에 따라서 또 바뀌는 다양함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준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생각과 사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여건에서 좋아할 수 있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화, 경제, 종교, 정치 이해환경에 따라서 이 구분들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은 또 달라집니다. 어느 분야에 어떤 감성기준이 높고 낮은가에 따라서 누구는 선()이라고 보는 과점을 자신은 위선(僞善)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누구는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은 흔해빠진 전개라고 평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과 경험의 교집합(交集合)이 만드는 감정의 공감대는 기준(基準)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공감할 수 있는 공통성향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면 같은 세대로서, 같은 교육환경, 비슷한 생활수준, 유행한 음악, 문화, 행동, 방송, 영화, 패션, 음식, 사건, 미디어환경 등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조건을 말하기도 하고 완전히 일치하는 감상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이런 조건 정도가 있으면 비슷한 생각과 경험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반면 세대가 바뀌면, 교육환경이나 세대별 교류가 적어지는 시기를 거치게 되면 (일반적으로 약 10년을 보았지만 지금은 약 5~6년 정도로 짧아져 있다고 말을 합니다 / 또는 지역적인 편차나 통계오류를 통해서 이 세대별 구분이 3~4년 단위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교집합 요소를 찾아야 하는 경우를 찾게 됩니다.

 

만화적인 구분으로 말을 한다면 마징가Z 세대’, ‘은하철도 999 세대’, ‘미래소년 코난 세대등을 말할 수 있게 되고 다시 세분화 시킨다면 요술공주 밍키 세대우주해적 하록 세대’, ‘바벨2세 세대’, ‘소년007 세대’, ‘강가딘 세대와 같이 좌우 변화폭이 넓은 세대별 구분을 가지게 됩니다. 그 모든 세대에 속할 수 있도록 모든 만화를 다 섭력했다고 하면 충분히 넓은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서 루팡3’, ‘대지의 권법자’, ‘우리들의 이야기’, ‘비둘기 가족’, ‘대가’, ‘불청객’, ‘각 소년소녀 잡지세대권을 포함하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성질을 가진 이해와 가치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표적인 문화세대를 마징가Z’ 세대라고 말을 해도 이 시대 안에 포함된 여러 가지 만화책 장르나 구성, 지역적인 편차 등을 고려할 때 3~5년 정도의 오차는 인정을 하게 되지만 이후 세대별 구분은 또 다른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어떤 세대에 도달을 하건 그 세대로 지칭될 수 있는 대표적인 만화 = 인기만화에 대한 구분은 충분히 경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도 나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기만화를 가지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마징가Z가 나왔을 때 10살이었던 사람과 20살이었던 사람, 30살이었던 사람이 있고 지역, 문화, 환경이 달라서 접하고 흥미를 가지는 계기나 이해가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적 이해론에 따르면 30년 전 한국에서 라면이라는 것을 먹는다는 표현을 하면 일반인 기준 봉지라면, 인스턴트 라면을 생각하고 가격이 300~500원대 제품을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에 1만원대 일본식 수제 라면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30년 후에 5~9000원대 수제식 라면, 650~1000원대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 인식의 차이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다만 30년전에는 상대적으로 비싸고 다른 계층이 소화시키는 음식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차별성이 느껴지지만 지금은 문화적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성이라는 인식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런 다양한 부분에 대한 시선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단편적인 시야와 해석만을 가지고 그 어떤 것을 말한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됩니다.

저는 그래서 비평이라는 것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제 기준이 확고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어떤 분야나 감성적으로 비슷한 분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비평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영역 내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을 적어두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사회가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인기작품에 대한 평이 되건 아니건 그 안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형태로 별점, 또는 수치로 표기된 점수체계가 도입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만화책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보게 됩니다.

그 즐거움을 계속하고 싶어서 꾸준히 다양한 작품들을 보게 됩니다.

많이 보게 되자, 자기 기준으로 좋은 작품, 좋지 않은 작품에 대한 취향을 가지게 됩니다.

취향에 따라 분석과 평가력이 생기고 나름대로 좋고 나쁨에 대한 기준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기준은 시간을 가지면서 더욱 다양한 변화를 포함한다고 저는 봅니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실제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론()을 위한 방향을 위해서 좋다/나쁘다, 예쁘다/추하다, 재미있다/재미없다, 처음 보는 신선함이 있다/과거에 본 것과 다를 바 없다 …… 등 다양한 변화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일본만화, 로봇만화에 있어서 마징가의 등장은 여러 가지 기준을 만들어 줍니다.

마징가Z를 보지 않은 세대에게 그와 비슷한 만화책, 로봇만화에 대한 기준을 말하게 된다면(여기서는 극단적으로 말할 때 건담이나 에반게리온, 라인베럴을 기준으로 잡는다고 하고) 조종자 탑승 형 거대로봇, 광기에 사로잡힌 악의 존재, 2~3부 구성으로 이어지는 대립구조의 변화, 진보하는 강적, 그것에 대항하고자 파워 업 과정, 상반된 성적상징을 강화한 인간형 거대로봇, 과학보다는 판타지이지만 실증하는 것보다 우선은 성립되는 거대로봇과학의 세계 등이 차례 차례 선보였고 더불어 일본만화의 한 축을 이룬 작가 나가이 고우가 만든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이해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로봇을 주요 소재로 한 만화작품에서 이에 준하는 플롯이나 소재, 연결성은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1970~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깡통 형 로봇 디자인과 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기계학적, 물리적 특성을 가진 로봇 디자인/공상, 판타지에 속한 스토리와 실제상황에 기반을 둔 스토리 전개) 마징가라는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던 다양한 로봇만화의 가능성과 변화, 그리고 스토리전개방식과 오락성, 일반사회에 분출될 수 있는 미래관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징가Z를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에반게리온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에반게리온을 보지 않은 사람이(또는 싫어하는 사람이) 라인베럴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감상기준이 굉장히 묘~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도하고 보지 않건, 우연치 않게 안 보게 되었건, 기준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에반게리온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집니다.

 

마징가Z

             ↓-----------

                 ↓        에반게리온

라인베럴  ↓                 ↓

↓            ↓                 ↓

 

간략해서 잡아보아도 마징가만 본 사람과 에반게리온만 본 사람, 라인베럴만 본 사람이 각각 있을 때, 마징가와 라인베벨를 본 사람, 마징가와 에반게리온을 본 사람, 에반게리온과 라인베럴을 본 사람, 3작품을 다 본 사람으로 나누어 볼 때 어떤 감상 기준을 가질 수 있을까요?

좋다/나쁘다, 예쁘다/추하다, 재미있다/재미없다, 처음 보는 신선함이 있다/과거에 본 것과 다를 바 없다

등을 이야기 할 때 우선권을 가지는 것은 먼저 나온 작품입니다. 비교 평가하는 가치관에 있어서 앞서 등장한 작품을 가지고 이후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되는 것 이지요. 여기에서 비교될 수 있는 가치관의 상반성은 아무래도 다양한 작품들과 연계되는 구분이겠지요. 마크로스나 에스카플로네, 고단나 등을 가지고 로봇만화,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영향력, 여타 작품에 대한 기준의 변화, 감상적인 논리 등을 가지고 다양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2)로 엮어 두겠습니다.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