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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Adult

즐거운 만화감상과 비평 (2)

그럼 여기까지 말한 만화에 대한 감상, 비평에 이어지는 단계를 보면 많이 봐야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한 최고(最古)의 작품이 꼭 최고(最高)의 만화가 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동화책 10작품을 읽은 아이와 100편이나 되는 동화를 읽은 꼬마가 이야기를 할 때 꼭 100:10편을 읽은 것만으로 감상기준이 함축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1편을 읽어도 제대로 된 감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천재적인 감수성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저를 비롯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환경에서 본다면, 비교를 기반으로 한 과정에 있어서 과거 명작(?)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비평기준에 있는 과거작품에 대한 감상축적이 꼭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도입되는 것인 같은 장르, 목적이나 구분이 비슷한 작품들과 비교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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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원피스>, <블리치>는 가장 많이 비교되는 장르별 작품 비교에 기준이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이 과거에 다양한 캐릭터의 난립과 더불어 특정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더불어 벌어지는 패턴형 스토리 구성을 가진 작품들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인기를 얻은 대표성때문에 과거작품에 비해서 훨씬 많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됩니다.

,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읽은 이가 알고 있을법한 작품과 구성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2011년을 기준으로 해서 말을 할 때 가장 많이 만화에 집착을 보이면서 열독을 하는 세대는 역시 10대와 20대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실질적으로 만화책을 구매해서 소장하는 비율은 20~40대가 훨씬 높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환경이 독립되면서 생기는 수익이기 때문에 세대별로 구분하기란 좀 어렵습니다.

 

드래곤볼 (세대)

원피스 / 블리치 (세대)

 

일반적인 감상비평에 있어서 조금 기형적인 관계지만 이렇게 시대적으로 보는 것과 달리,

 

드래곤볼 / 원피스 / 블리치

 

와 같은 식으로 같은 시기에 장르별로 비슷한 형태를 갖춘 것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비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물론 세분화하면 어드벤처, ‘액션 배틀 만화라는 형태를 가지지만 스토리나 구성, 전개방식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형태는 일반적인 고전작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론 인기를 위해서 변경가공되는 만화의 특징이라는 점도 있지만요.

 

소년탐정 김전일 / 명탐정 코난 / 탐정학원Q

 

꼭 신구작품에 대한 비교가 아니더라도 동급 장르별 작품에 대한 비교를 통한 비평도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것도 있습니다. 과거 기준으로는 명작이라고 해도 그 기준과 달리, 현재 기준으로 인기작이 꼭 같은 코드, 흥행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갈등대립구조라고 할 때 근래에는 복잡한 선악구조와 배경, 그리고 메인 캐릭터와 서브 캐릭터 사이에 발생하는 시점변환 등을 통해서 보이는 구도변경 때문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같은 장르나 비슷한 구성을 가진 작품군이라고 봐도 실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는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흥부와 놀부같은 고전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과 같다고 하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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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비교론으로서 역시 로봇만화라는 장르에 소속되었지만 마징가Z와 아톰, 건담은 전혀 다른 구분을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에 철인28호라는 존재까지 겹쳐 넣으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기준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요. 사회적인 시대반영, 읽은 세대의 구성, 비교될 수 있는 작품군의 고증, 동일 장르 안에서 견주어 볼 수 있는 비슷하면서도 닮지 않은 개성 추구 등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만화책을 보면서 즐거울 수 있었던 라는 존재가 만화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권장하려고 할 때 그가 가지고 있는 환경을 기준으로 권장하는 것이 좋은데 그 안에서 어떤 관심유발 포인트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역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교론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A는 무협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무협스러운 장르를 골라서 그에 맞는 스타일을 권장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겠지만 그런 장르의 작품형태를 얼마나 이해하고 깊이 있게 보는가에 따라서 또 보는 과정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만화책의 경우 흥미적인 요소로서 가장 많이 읽고 싶은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 그림체입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제법 다양한 만화를 보는 인구들이 늘었고 다양성있는 시야가 대중적으로 보편화 있기 때문에 그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애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개인주관에서 볼 때 못 그린 그림(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가지고 만화책을 보는 것은 거시기하다는 논점을 가지게 했습니다.

 

소설책은 활자만으로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글 본문에서 아름다운 금발에 푸른 사파이어 빛처럼 멋진 눈동자, 크림색 볼에 사랑스러운 입술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그 캐릭터 얼굴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각자가 상상할 수 있는 멋진 이상형이 그려지지만 그것이 같은 책을 읽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캐릭터를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다르니까요.

그러나 만화책은 아주 확실하게 그렇게 그려서 표현을 합니다. - 작가가 가지고 있는 표현력이 최대한 발휘되어서 말입니다. - 반면 개그만화에서 멋진 캐릭터와 예쁜 캐릭터는 동일시 되기 어렵지요 - 그리고 그 안에서 개성이 표출되고 작가가 그리는 그림체에 대한 호불호가 갈라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덕분에 작품 내용이 주는 과정보다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서 연출시키는가에 대해서 더욱 큰 호응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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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여타 문화장르 비평에서는 전통, 동일 장르에 대한 비교와 분석, 그리고 분석 과정에 있어서 이런저런 논이 나올 수 있지만 만화책은 우선 그림과 스토리가 어떤 형태로 구성되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매력을 발산하게 됩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럭키맨작가 가모우 히로시가 그렸다면 과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반면 너무 이쁜 그림과 구성은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시로우 마사무네의 <애플시드>는 작품 구성과 세계관 이해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운(또는 스토리는 없고 설정만 난무하는) 만화책이라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SF에 흥미를 가지고 조금 이런저런 장르와 연출되는 기법, 기교 등을 이해하고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즐거움 A라고 칭할 수 있겠지만 일반 기준에서 보면 읽기 난해한 등급 A라고 할 수 있겠지요. - 그러나 이런 구성은 현재 CSI같은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팬 층이 가지는 과학적 해석에 대한 카타르시스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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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성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작품에서 그 관련성을 뽑아서 비교하는 평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억지주장을 웃자라는 것으로 코팅을 하거나 개성적인 호기심’, 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어떤 형태로건 다시 돌려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감상비교에 있어서 좋은 구성을 가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 덕분에 일부 마니악한 해석력을 가진 동인스타일이 소수의 즐거움을 위해서 존재하는 형태로 시장에 잔류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비평의 기본은 고전과 신작의 비교이지만 장르 비교도 가능하다.

시대가 가진 문화적 이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인기작품이 비교 될 수 있다.

그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역량에 따라서 다른 선택을 얻는다.

극단적 비교와 함께 독자의 이해수준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소수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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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폭력과 만화책 안에서 볼 수 있는 폭력의 기준은 정의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주인공의 입장에 독자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독자는 주인공이라는 존재를 보게 되면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행동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워집니다. 결코 타인은 알 수 없는(만화책 세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주인공만의 생각, 성장과정, 심리상태, 현실인식과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 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주인공의 의식이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인식을 공감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일반 현실사회에서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대를 때리고 기물을 부수면 좋지 않는 꼴을 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지요.

하지만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 - 죽으면 작품이 끝난다 - 라는 정석을 이해의 바탕에 깔고 보는 액션, 어드벤처 작품에 있어서 다수의 주인공 격 캐릭터를 묘사하는 것을 비롯하여, 개그, 코미디 작품에서는 죽음을 스토리 구성안에 넣어서 다시 극적 부활, 또는 연출을 위한 형태로 사용됩니다. 덕분에 지금은 주인공 직업이 꼭 정의로운 것만으로 한정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불량스러운 세계, 악의 조직, 제멋대로 세상을 유린할 수 있는 존재 등으로 배경을 가지지만 주인공이라는 위치에 존재하게 되면 가학적인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본다면 이색적인 존재가 몇 몇 있지요.(더불어 인기까지 얻고요)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생과 사를 넘어서 가장 강한 존재로서 자리를 확립합니다. <데스노트>의 주인공은 선과 악에 대한 논리를 위해 소를 희생하겠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실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형태는 민주주의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말살이라는 형태가 꼭 인간적인 사회의 전부라는 것은 아니지만 개그, 코미디 만화에서 보여주는 자학적인 행동을 보고 웃을 수 있는 문화는 사실 일본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형태입니다. 그러나 그 문화에 동조되어 있는 많은 이들이 그 정도의 행동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지나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과 만화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비교구분이 미묘해지는 과정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널널하게 (3)으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