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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Adult

즐거운 만화감상과 비평 (9) - 이해와 교육


문화라는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서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 보면 간접경험을 통한 학습, 교육효과를 바라게 됩니다. 특히 작가는 굉장히 많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 안에서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새롭게 찾아 정리하고 멋을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단순한 이해나 교육과정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정의(定意)는 백과사전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다릅니다. 뜻만 안다고 해서 그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세상 모두가 다 천재라는 소리듣고 살겠지요. 규칙과 논리, 과정과 답이 연결되는 구성을 보여줌으로 독자를 작가가 생각하는 답으로 이끄는 것이 이해와 교육을 보여주는 만화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표현 상태는 대부분 외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의학드라마를 그린 만화 등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신체 내부나 요리 만화에서는 식재료에 대한 묘사, 자동차 만화에서는 부품에 대한 표현 등을 굉장히 전문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더불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만화로 그려야 합니다. 그런 경우들을 보면 확실히 독자와 작가 사이에 생기는 지식의 층, 복합적인 이해능력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전문만화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장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것은 그 장르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수준에 따른 표현이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창작해서 생각하는 세계와는 다른,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판타지에서는 XXX라고 하는 아주 매운 요리가 있다. 라고 정의하면 되지만 현실에서는 청양고추가 있고 그것은 상당히 맵다, 라는 정설이 있습니다. 하바네로 같은 서양고추도 매운 정도가 심해서 매운 장르에 대한 지식적인 대립이나 조리형태 등을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런 부분들을 떠나서 상상을 할 수 없는 음식을 판타지나 SF에서 그린다고 하면 일상적인 직감력에 따라 사람(독자)들은 그 매운 정도를 화끈하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바네로를 먹어서 심하게 매웠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작가가 그린 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때를 연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 또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음식의 맵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확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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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재현, 또는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전달되는 가능성이라는 것은 확실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과 경험은 이해력 증대와 교육환경에 따라서 접하는 계층의 이해가 달라집니다. 아는 것이 많고 더 많은 것을 배운 이가 더 넓고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하겠지요.

다만, 농담 같은 말이라고 하겠지만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현실은 무척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내에 절망이나 질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 자신이 그 사랑의 감정 안에 쌓여있을 때는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또는 자각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실제 만화나 소설, 영화 등을 통해서 간접경험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내가 동일시 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주인공의 감정에서는 사랑스러운 질투겠지만 라이벌, 또는 악의 대상이 보여주는 질투는 집요한 집착이나 패륜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면 (여기서는 주인공과 동화된) 당연히 나의 감상이 올바른 것이고 제대로 된 사랑의 기준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겠지요.

 

성적충동이나 심화된 정신병같은 상태를 만화로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과정들은 교육으로 알게 되는 것과 달리 경험을 통해서 습득하는 것이 훨씬 많은 경험치를 남기게 되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계기가 완전히 다른 상황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있는 것과 경험한 것은 다른 차이, 결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이것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결론을 내린다고 하는 부분이라고 해도 결과가 그렇다고 할뿐, 실제 개인이 가진 이해능력과는 또 다른 경지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똑같은 A학점을 가진 부분이라고 해도 누구는 논리적인 연산에 의해서 A를 받을 수 있고, 누구는 감상적이고 충동적이지만 독특한 해석으로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 냈기 때문에 A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실제 일반인, 비접촉인이 보면 다 똑같은 A학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진출시 면접이라는 과정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같은 A라고 해도 그 A의 성질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다른 A, 특별한 A를 찾기 위한 것이 일반적인 사회이해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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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같은 장르에 속한, 비슷한 평을 듣는 만화작품이라고 해도 실제 보는 것과 제목만 알고 있는 것은 다른 감상을 알려줍니다. 10년 전에 보았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해력과 10년 후에 볼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해력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같은 감상, 비평을 가질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이해와 교육을 통한 자신의 감상기준을 정립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제대로 된 기준을 만들어 그 안에서 다시 독립적인 논리적용과 이해될 수 있는 평론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 적당한 교육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인간은 공부를 안 한다, 못한다는 라는 정설이 있습니다. 제 기준으로 보아도 실제 만화책을 너무 좋아해서 빠져있으면 대부분 일반적인 공부는 물론이요 사회적응력, 이해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을 기준으로 하면 약 70%정도가 그렇다고 하겠지요. , 그 대신 얻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상상하는 다양한 감수성이나 그림을 통한 이해력, 동년배 수준에 비해서 조금 더 어른스러운 문구들을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 두 분야에 전문적으로 노력하고 살아가는 만화가는 그 장르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노력과 연구,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이해력을 높여주고자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보는 이도 그렇지만 그리는 이도 굉장히 많은 공부, 교육을 통한 이해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만화가라는 존재가 일상적인 사회를 기준으로 보면 일반 회사원이나 보통 사회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특징이 있는 문화적 세상을 창작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작가와 독자의 이해관계는 또 다릅니다.

 

현실 사회가 원하는 일반적인 능력과는 거리가 있는 부분에서 살아가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전부 이해하고 교육된 상황을 가지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보여준다는 것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화가나 편집자, 그리고 독자도 다 그런 부분들을 가지고 있지요. 일반적인 논리로 본다면 작가는 돈을 벌게 해주는 팬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치한 감정, 자기관리를 못하는 어벙한 인간이라고 해도 자기작품을 좋아해주는 팬이 보여주는 성의에 보답하고자 하는 상상력의 대화를 즐길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당연이 서로 이해가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경우가 됩니다.

그러나 작품이 끝나거나 그 작품이 그려준 세계가 붕괴되면 팬은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너무나 사랑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반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평을 하는 과정은 이런 구분보다 조금 더 논리적이고 사회적인 이해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화가의 능력이 펼쳐진 만화책 내의 세계에서 얼마나 멋진 표현을 통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지. 그것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평론가의 기본덕목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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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냉정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작품을 만나도 사리분별이 바른 작품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점을 본다면 저라는 인간은 역시 논리적인 비평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작품을 접하면서 좋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영원한 독자, 아마추어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추어적인 취미인으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작품을 접한 재미를 기록하는 형태로 자기기준을 적용시키고 있지요.

 

이 이야기의 발단은 어디까지나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남에게 권장하려는 경우, 얼마나 그 재미나 즐거움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어떤 작품 A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어린 친구 하나가 다른 친구에게 그 작품이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너무 자기 생각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상대가 전혀 이해할 수 없어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작품 안에 있는 전문용어나 캐릭터 등을 그대로 꺼내어 말하는 것은 그 세계에 접근하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요. 간단하게 말해서 기동전사 건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모빌슈트 : MS를 잘 모르는 사람에서 MS라는 지칭을 써주면 아마도 마이크로 소프트나 다른 부분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무로 레이가 주인공인지 샤아 아즈나블이 주인공인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샤아 아즈나블의 대사가 멋져~ 하면서 떠들면 샤아가 주인공이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 몇 번 정도 이야기가 헛갈려 나가버리면 관심을 가졌던 작은 불을 바로 꺼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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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부분들을 보면 만화를 보고 감상하는 과정은 적절한 이해와 교육을 통한 비슷한 환경, 논리를 가지고 말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너무 전문적인 이해론을 가지고 만화나 영화나 소설을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보고 즐길 수 있는 이들이 접하기 쉬운 영역에서 말, 단어를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물론 평론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위한 다양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철학, 문학, 사조,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부분이 잘 녹아들어간 종합적인 의견은 굉장히 다양한 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실질적으로 이해되는 과정애서 작품 표면이 보여주는 것과 내면이 가진 정신적인 응시력(이해과정)을 완전하게 다 이해시킬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작품을 만나기 전에 보는 비평과 본 후에 접하는 비평에 대한 시선이 또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는 보기 전을 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용설명부터 여러 가지 세부사항을 자잘하게 이야기 하면서 그 안에서 다시 평균적인 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정석이고 일반적이지요.

작품을 본 후에 만나는 평이라고 한다면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는 상황에서 그 부분 부분에 대한 접근을, 또는 독특하거나 특징적인 부분에 대한 해석과 평을 가지고 다른 부분, 감상에 대한 논을 하게 된다고 봅니다. 또한 평자와 독자가 다 본 그 부분에 대한 이해를 찾아가기 때문에 그만큼 더 깊이가 있는 심도를 논하게 되지요.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만화작품을 보고 감상하는데 있어서 평균이 되어야 할 이해와 교육이 있다.

독자 A가 본 감상을 기준으로 BC에게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누구나가 알 수 있는 평범한, 또는 대중적인 조건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교육되는 만화, 이해가 되는 만화라는 것은 중요한 평론의 기초이면서 대론, 논점의 근거이다.

 

보는 사람도 평하는 사람도, 그리고 작가도 생각을 하면서 보고 감상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부분들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점은 굉장히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반면 가르치려고 하는 만화도 있습니다. 가르치고 이해시키려는 평도 있지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가진 기준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만화가 인생을 가르쳐 주지는 않겠지만 인생의 한 부분을 말하거나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도 극적인 비현실성 때문에 그런 감상을 일탈을 꿈꾸는 청춘의 오락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성숙해나가는 엄청나게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것 때문에 저는 만화책 보는 것을 결코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