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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c Story/Adult

즐거운 만화감상과 비평 (11) - 물질과 정신

깊고 깊은 인간들의 이해력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되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또는 간접경험을 통한 상상력으로서 그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자신의 감정으로 동화시킬 수 있는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남자가 말하는 남자이야기와 여자가 말하는 여자이야기. 어떤 것이 더 진솔할까요?

남자가 알고 있는 남자만 가지고 있는 습성이라는 것은 사실 없습니다. 지금처럼 문화정보가 발달된 사회에서 한국에 사는 일반적인 인간이 문화미개국이 가지고 있는 정도 수준의 정보력과 문화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성만이 알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형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여성으로서 한정된 구분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선, 시야가 달라지는 것뿐이지요. 소년과 소녀, 그리고 성인과 노인이 보고 싶은 만화라는 것이 딱 구분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문화적 사회적 책임론으로서 성적 표현과 무분별한 폭력지향성, 그리고 범죄에 관련된 직접적인 묘사 등은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다양한 미디어들이 그런 형태로 한국적인 문화 표현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들을 보면 한국 만화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 만화보다 규약이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바탕에서 보면 제약이 있는 것과 조건이 붙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이니까요. 소년만화에서 그릴 수 있는 작품구성이나 연출, 스토리 전개는 확실히 이해전달이 쉽고 극명한 대립구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가치를 보여줍니다. 조금 더 머리가 굵어지면 이해할 수 있는 제 3의 존재나 선악역전(善惡逆轉)에 대한 사상적 이해는 가급적 현실과 어느정도 사회를 경험한 이들에게 호응될 수 있는 여건을 기반으로 하니까요.

 

만일 초등학교 1~2학년을 주제반장선거, 오락부장 선출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제 자체는 유치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회법리구조와 조직의 형성 등을 배울 수 있는 교육만화가 될 수 있겠지만 그리는 자의 입장이나 보는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서 사회 풍자만화가 될 수도 있고, 청소년들을 위한 개그만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자가 가진 정신구조상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조금 나중이야기라고 해도 유치한 풍자로 보일 수도 있고 진지한 현실비판이 될 수도 있고 아이들의 눈(시선)을 통해서 본 사회 부조리와 암투를 그리는 대활극, 또는 국가이상론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파시즘과 전체주의, 민주주의의 틈을 노리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줄 수 있는 초대장편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만화를 내는 출판사가 아동학습지를 만드는 곳인데 그냥 단순하게 이론적인 정리와 재미를 더한 작품이 아니라 논리적 비판론이 들어간 사상적인 만화가 된다면 큰일이겠지요? 작가가 가지는 상상의 한계라는 것은 사실 현실에 묶여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보는 사람도 그렇지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선을 돌려보게 됩니다.

가끔 보면 인터넷에서는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이 힘을 얻고 그것이 진실처럼 여겨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대화하는 곳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 주장이 오고가는 형태가 인터넷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개인의 감상보다도 주변 환경, 또는 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보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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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고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는 것이지만 그 만화를 보면서 눈물, 기쁨, 슬픔,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는 다른 형태를 논한다면 이것은 오락문화로서의 가치보다 순수 문학적인 가치를 논하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즐기고자 하는 만화는 많이 있습니다. 통속적인 일본만화의 기능성을 볼 때 의미도 없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짧은 치마와 더불어 속옷을 보여주는 행위 등이나 신체접촉을 통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연출, 정밀한 묘사력을 동원해서 자극적인 시퀀스를 줄줄이 이어나가는 형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 구성이나 연출보다 우선은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효과를 가지고 제약이 없는 만큼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폭력과 성은 여러 나라가 표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오락만화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어떤 나라이건 사회적 문화적 체계가 성립된 경우, 나이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악당이라고 해도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나 잔인한 폭력묘사 등은 자제를 하게 되어 있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일본만화는 소년만화영역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표현의 제한을 받지 않는 나라입니다. - 근래에는 이런저런 움직임이 있지만요. -

 

표현의 제한과 상식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볼 때 현실에 존재하는 물질론 이상으로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있고 현실 이상의 것을 정신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표현주의나 현실주의에 입각한 자유로운 발상에서 등장할 수 있는 만화라고 하겠는데 그 가능성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작가활동을 하는 존재가 있지만 대부분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인정되는 소수와 예술적 가치를 일부분에서 인정받은 소수가 있습니다.

물론 문화적 이해지수가 높다 낮다 를 떠나서 신나는 존재’, 캐릭터를 부각시켜서 영웅주의를 보여준 미국 만화들도 있지만 그 영웅이 가진 갈등이라는 것은 대부분 보통인간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 다를 것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정체의 모호함이나 그 것이 악과 대립되는 과정에 있어서 숨겨야 할 것, 지켜져야 할 것, 그리고 보호받거나 숭배되고픈 욕망에 대한 개인적인 정신의 혼동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인간 개인이 영웅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은 사실 그 인간 자체가 뛰어난 인물이라기보다 그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를 더 높은 경지의 인간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극단적으로 남성이건 여성이건, 또는 소년이건 청년이건 노인이건 함께 성장하는 사회구조와 함께 더불어 보여주는 다양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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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가진 주제는 대부분 작가와 독자들이 소속된 영역에서 이해되는 정의를 가지고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선, 시야, 이해하는 감상의 기준을 달리 잡으면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볼 수도 있고 그릴 수도 있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이라는 것이 가진 폭발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통감되는 아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숙아들에게는 그냥 그런 작품으로서 이해되고 말겠지만 그런 것이 어떤 것을 유발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하는지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보는 감상은 다른 경우가 나온다고 하겠습니다. ‘때린 자는 모른다, 맞아본 사람이 아는 폭력의 진실이라는 면을 보면 그 고통의 가치와 자신과 주변이 생각하는 작품 내 표현이 어떤 가능성을 가진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비자극적인 소재를 가지고 일상적인 감상과 느낌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이라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장르적인 이해로서 폭력과 성, 무분별한 묘사의 성장을 나쁘게 보는 것도 나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무자극 순수성에도 즐겁게 논을 돌릴 수 있는 만화감상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