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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취미로운 코믹월드도 100회, 그리고 ACA

이런저런 취미로움을 기억하는 많은 생각 중에서 제가 쓰는 만보라는 아이디는

이전에도 이야기를 했던 '만화일보'의 준 말입니다.

 

1980년대, 순수 창작만화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이들의 모임을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는 취미로운 소식지 같은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요.

 

1980년대는 취미로운 만화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 다른 매력을 꿈꾸어 본 시대가 있었지요.

1990년대는 일본생활을 거쳐서 이런저런 사회생활이

취미로운 만남보다는 다른 것을 말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기 직전에 한국에서 만난 코믹월드,

주식회사SE가 한국에 진출시킨 아마추어 행사는 굉장히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지요.

 

어떻게 보면 ACA, 아카로 불리던

전국 아마추어 만화 동아리연합(Amateur Comics Asso ciations)이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루었던 여러가지 모습에서

2011년 현재에 정착된 코믹월드(コミックワールド : Comic World)는

동인 창작활동영역에서 보면 볼 수록

참 많은 것을 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재정리를 하려고 하면 방구석에 머물러있는

수백페이지 분량의 과거흔적을 다시 정리해야하니까

언제인가 여유가 생기면 써볼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생각은 있지만 그놈의 귀차니즘 때문에-

간략해서 회고해보면

 

 

1. 한국에도 독자적인 동인문화가 정착했었다.

2. 일본과 다른 모습으로 갈라진 것은 거대해진(?) 집단형태.

3. 일본만화 문화가 새로운 세대에게 맞물렸고,

4. 이제는 그 세대가 지금을 지켜나가고 있다.

 

라고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고되는 1980년대 한국 창작만화계는

1985년 당시 아무생각없이 만화가 좋아서

에헤헤 하던 저에게 어떤 인간을 알려줍니다.

지금은 한국을 떠난 친구인데 그 녀석은 모 단체소속이었지요.

지금은 굉장히 묘한 흔적으로 기억되는

나르시스, 아람, 아크, KGB, PAC를 바탕으로 연결된 크레파스라는 곳이었지요.

한참 꿈꾸는 ~~~, 푸른 ~~~ 등으로 알려진 여러가지 활동구역에서

놀던 녀석인데 본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녀석이지만

애니메이션 동아리 같은 것이 없어서 그냥 만화동아리에서 놀았지요.

 

그 녀석과 알게되면서 저는 나름 3P~~ 라고 만화창작 동인활동을 하게되었지요.

결과적으로 보면 이 녀석이나 저나 그냥 만화, 애니메이션이 좋지만

대화를 나눌 상대가 무척 적었던 시절에 만난 존재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취미동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다.

 

때문에 저도 덩달아 취미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이후, 88년에 창간된 르네상스를 통해서 저도 연결망을 더 확장시키고 싶었지요.

때문에 이런저런 접근을 하게되었고 그 안에서 전국 만화동아리들의 사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되었습니다.

 

더불어 지역편차가 무척 심하다는 것도 알게되면서 묘한 생각을 하게되었지요.

 

 

어찌되었든 계획은 무산되고 나름 행복한 취미로움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동인생활이라는 것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동인스러운 삶을 지워나가고 있을 때,

문득 어떤 계기가 생겨서 한국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주식회사SE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코믹월드 행사를 주최하려는 그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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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는 주식회사로서 동인지 즉석판매회를 주최하는 회상의 등록상표,

'코믹월드'를 중심으로 다국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일본기업으로서 텔리터 deleter 브랜드 스크린톤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요.

 

SE는 일본을 중심으로 홍콩, 대만, 한국에서 코믹월드 행사를 벌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일본에서는 그만하고 해외에서만

코믹월드 브랜드로 이벤트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단 지금에 와서는 본사가 주최하는 것보다 현지 조직위원회에

위탁하는 형태로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우연치않게 이곳이 태동하던 시기, 1999년에 만나서 그 활동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고 1~6회까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사실상, 한국기반으로 시작한 ACA와 일본자본으로 시작한 코믹월드의

회원간 반목은 제법 심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다시 그 때를 회고해본다면 하면

굉장히 감상적인 추억들을 많이 떠올린게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의 동인문화 환경을 생각해보면

프로작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과

아마, 프로를 상관하지 않고 연결되는 친목관계를 유지해나가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잡지, 만화출판사의 연결과 약소문화권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힘을 위해서는 그 저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다만 1999년만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사회적인 저변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급진적인 이해를 얻기 힘들었다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만화계를 대변하는 형태에서는 기존 한국 사회에서 인정될 수 있는

한국산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문화가 일본아이템에 의해서 완전히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일문화개방에 대한 의식적인

거절을 진행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정치, 사회적으로도 한국은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일본과

더욱 진보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지금과 같은 문화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그때는 단순하게 거대해진 ACA의 활동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게된 계기가 순수하게 프로작가를 지향하는 예비군 역할과

단순하게 팬으로서 모여서 즐기려고 한 취미인들의 모임이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덕분에 실제로 작가지향, 프로작업 지향만으로 본다면 PAC나 아람같은

의식적인 집단과 달리 그것을 추종해서 분위기를 따라서 즐기고자 하는 입장을

전부 ACA안에 두었기 때문에 굉장히 큰~ 조직으로 보여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크레파스' 정도의 조직적 단체가 적당한 수준이었지만

ACA라는 활동조직으로서 비대해진 구성은 확실히 묘~~한 아쉬움으로 기억됩니다.

더불어 이벤트, ACA전시전 + 코스튬 플레이 + 동인지판매 등을 통합하려는 것보다

어느정도 분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코믹월드, 주식회사SE가 기업형 이벤트 기획을 가지고 오는 것 때문에

반발력은 의외로 강했지만 바로 시장흡수가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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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해보면 한국에서 코믹월드 행사가 100회를 넘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래 시작한 일본 코믹월드는 이미 끝난 상황이고 (2008년 이후 코믹월드 행사는 멈추었습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관련 행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런 점을 보면

일본문화의 전파역을 직, 간접적으로 알린 형태로 인식하게 됩니다.

 

실제, ACA의 불화점을 만들게 된 1998년도 '청소년 보호법'의 발령은

직접적인 영향력으로 보기에는 미비한 상황이었지만 단체로서

존립해야 하는 ACA핵심 구성원들에게는 아픈 추억으로 다가갑니다.

본래는 1997~2000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방되기로 한 일본문화 개방보다도

이 청소년 보호법과 개방단계에 따라서 만화 문화와 함께

약소문화로 인정받았던 일본음악, 패션, 영화 관련 취미인들의

활로가 여러가지 갈래길을 가지면서 교집합을 만들게 된 것이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일본문화'자체가 터부시되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 중후반은

전후세대(356세대로 불리는)와도 다른 X세대 구성을 만들면서

세데적인 갈등을 만들어 보여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주얼 락을 구사한 몇몇 일본 밴드의 음악성과 함께

카피밴드, 무분별한 일본어 혼용, 뜻이나 의미도 모르고 그냥 따라하고 보는

비전문적인 취미인의 양산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 문화권내에서도 다시 비주류 취급을 받던 코스튬플레이 관련이

대중적인 활약세를 보여준 1992년 후반부터 지위는 향상되었고

일본계 애니메이션 전문잡지 Newtype이 1999년 7월,

한국어판을 내게되면서 새로운 세대가 즐거워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X세대 N세대, Y세대 등 다양한 세대별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론되었지만

이상하게도 한국 내에서는 게임관련으로 피폐해진 IT취미인들의 세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이 산업적으로 키우려고 했던

정책적인 모습이 더해진 것도 있지만 세대별 갈등을 키워준 것도 사실입니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부모들과 소통하지 않고 단절된 자기들 세상에서만

살아가는 모습을 꾸려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는 어느정도 현실이 되었다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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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한국 취미계의 대표적인 연중 행사인 코믹월드가

어느사이에 100회를 맞이하게 된 것에 큰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어쩌다가 초기 한국 동인문화권부터 ACA를 거쳐서 코믹월드로 정착되는 현재까지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맺게 된 것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참 놀라게 됩니다.

 

물론 코믹월드는 현재 부산과 더불어 크게 문화적 취향을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에

100회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자체가 의미없을지 몰라도

21세기형 한국 취미문화, 약소문화권을 대표하는 행사가 된 만큼

그 가능성과 함께 다양한 행복을 추구해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더불어 코믹월드 홍콩(コミックワールド香港 : Comic World Hong Kong)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빠른 파워를 보여주면서 한중일 취미문화권에

큰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홍콩은 만화, 코스튬분야를 넘어서 모형이나 인형 제품 등에 대한

모임까지 함께 포함하고 있어서 더욱 다변화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이 만화&모형계가 동시에 접근된 행사를 벌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본과 홍콩이 그런 매력을 잘 흥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잘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2011년 2월을 기준으로 이런 세상이 등장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제 기준으로 본다면 정말 놀랍고 빠른 취미문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21세기의 1/10 시간을 넘어간 코믹월드가

한국 취미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기게 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ACA의 몰락과 코믹월드의 등장, 성장은 어디까지 취미적인 시점을 떠나서

사회, 문화로서 정착되는 가능성을 가진 경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코믹월드 100회를

어떤 형태로 기억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게 됩니다.



P 만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