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인 묘사력은 만화가에게 있어서 굉장히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연출력, 구상력이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여타 문화권과 비교를 해보아도 작가가 그림과 글을 동시에 작업해서 결과물로 완성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당연 아트의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 만화적인 표현과 구성은 미국식 코믹보다 일본식 형태가 우리나라 출판만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컬러만화 구성이었던 미국과 달리 흑백만화가 기본이었던 형태는 경제성과 더불어 여러 가지 감정표현에 따른 구분을 가지게 됩니다. 연출 구성도 칸과 칸 연결도 스토리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형태가 일본만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시사만화인 경우 사회에 대한 풍자라는 것을 다양하게 표출하기 위해 과장된 표현을 비롯한 직진성이 있었지만 컷만화이면서 최소 수십 페이지에서 수백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형태로 읽혀져야 하는 단락형 스토리만화는 대부분 그 구성과 연출에 있어서 일본식 스타일이 한국시장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물론 오락적인 면만 보면 캐릭터 창조부터 스토리, 배경에 대한 여러 가지 행위표현에 있어서 그렇게 많은 것을 따지지 않게 됩니다. 만담 형식을 캐릭터만 그려서 그 캐릭터에 대사만 써놓으면 충분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지요. 만화라는 것 자체가 스토리성향을 짙게 가지게 된 것은 그 그림체가 바뀌게 되는 형태와도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미국코믹은 대부분 극화적인 표현과 더불어 컬러채색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코믹은 흑백 인쇄제판에서 보여줄 수 있는 형태와 인쇄, 유통 방식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1930~40년대 사이에 일본사회는 만화 자체를 대본소 형태로 출간했고 그 문화적 풍토는 한국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서 해방을 맞이한 한국에서는 기존에 있던 시설와 유통형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대본소 만화체재를 보였습니다. 단 시장 구성에 있어서 가장 큰 기점은 캐릭터의 차별이었다고 하겠습니다. 풍자적이고 아동문화적인 형태로서 보일 수 있는 것을 떠나서 문화적으로 대단위 산업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역시 대중적인 출판사의 등장입니다.
출판사가 큰 기반을 갖추게 되면서 가지게 되는 특색(特色)에서는 표현되는 만화 스타일을 중시하게 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만화체와 극화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성을 동반한 스토리 전개에서는 역시 극화체가, 아동작품이나 간략화된 표현으로 보여주어야 할 미래형 작품이나 판타지, 순정작품에서는 일본식 만화체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것은 이후 세대별 구성에 있어서도 체계화 되면서 1940년대를 전후로 일본은 아카혼(赤本)으로 불리는 대본소 만화와 출판사 만화라는 차이를 두게 됩니다. 때문에 대중문화로서 선을 보였던 대형 출판사의 만화잡지는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을 선별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걸출한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데즈카 오사무입니다,
데즈카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새로운 만화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지금 만화에 있어서 굉장히 기본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심정효과나 내적 표현에 대한 상징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소녀만화 부분에도 통용되는 귀여운 캐릭터 설정과 굉장히 SF스러운 표현에서도 극화체보다 훨씬 호응이 좋았습니다. 만화체는 대부분 저연령층에게 먹히기 쉬운 스타일이라는 것 때문에 자주 활용되었고 캐릭터 연령이 잘 보이지 않는 점 때문에 애용되었습니다. 물론 월트디즈니를 포함한 서양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공통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일러스트 캐릭터를 반영한 만화체라는 말도 있고, 이런 구성은 본래 유럽만화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대량생산성 만화책자를 출간하는 상황에서 볼 때 스타성이 있는 존재는 필요했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발전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축을 보여준 만화 + 애니메이션 + 캐릭터 상품이라는 공식은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면서 굉장히 많은 팬들을 확보하게 됩니다.
만화체는 대부분 아동만화로 이해하게 되고 극화체 만화들은 대부분 청장년 만화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소년만화 부분에서 극화체가 도입되는 것은 극적으로 데즈카의 출판사 편향 때문에 발달하게 되었는데 데즈카를 비롯한 만화체 작가들에 대한 시장반발도 충분히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만화 수요가 늘어나면서 배경과 캐릭터작화가 구분되는 분업시스템이 60년대에는 정착하게 되었고 배경과 같은 작업은 전문성을 떠나서 미술계열 출신 작업가가 만화가로 전향하는 상황도 종종 볼 수 있게 됩니다. 미술적 감각은 사실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시야보다 주변에서 자주보고 느끼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그에 따라 훈련되고 그만큼 경험치를 받아들이는 양이 커지게 됩니다.
A작가가 그린 Z라는 그림을 볼 때 단순하게 그림으로 보는 사람과 그것이 역사적으로, 미술학적으로,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보는 사람은 당연히 똑같은 사건, 경험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경험치가 다릅니다. 누구는 만화 1권을 보아도 1정도를 느끼고 말지만 누구는 만화 2~3페이지에서 100정도 경험치를 얻는 경우도 생기지요.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당연히 그만큼 만화문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이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요.
이와 함께 그림훈련을 거친 미술관련 출신들이 자신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미술업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웠던 만큼, 개인 창작의 영역에서 인식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만화업계 + 애니메이션 & 게임 분야라고 하겠습니다. 덕분에 만화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사회는 대부분 관련 업계가 동반되어 상승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더욱 고급화된 정보, 세밀하게 그려진 작화, 치밀한 구성력을 평가하는 형태도 당연히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은 여러 가지 장르만화에서도 잘 보여졌고 캐릭터만 가지고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 설정, 효과, 톤 구성들을 어떻게 정리해 나가는가에 따른 ‘만화작업’에 기술적인 논리를 접목하게 됩니다.
실제 의도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도 있지만 단순하게 감각만으로 작품을 그려나가는 작가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멋’만을 위해서 구성한 만화도 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그 작품의 배경을 세밀하게 짜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어떤 이유 때문에 알게 모르게 그 장면, 그 구성에 꼭 미리 설정된 그것을 포함하고 나가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반면 설정되어 나가는 과정들이 너무 복잡한 경우 일인아트로서 가질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서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분화된 작업형태를 통해서 어떤 개성을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또한 이런 부분들은 이후 독자와 함께 성장한 만화시장에 있어서 더욱 세심한 구분을 만들게 됩니다.
반면 만화에 있어서 캐릭터 + 배경설정 + 효과 표현 들은 자연스러운 조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을 무시한 형태로 등장한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의미없는(?) 효과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6~70년대를 거쳐서 완성형에 들어선 일본 만화와 한국만화들은 대부분 의미도 없이 그냥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효과선, 구도 등을 남발했지만 이후 작품의 다양성을 추구하게된 출판사와 독자 시장은 스토리에 연결되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감녀서 세분화된 표현보다 그 스토리 진행에 이해될 수 있는 최소한의 표현만으로도 만화를 보고 감상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만화 문화 자체가 그런 표현을 가질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그 분위기와 느낌을 전달하고자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이제 그런 작업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가다 보면 복잡한 표현 자체도 단순, 규격화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특히 영화적 표현과 연출력이 만화의 상상력 이상으로 상징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만화체나 극화체가 가지는 구분이라는 것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품성향, 문화적 가치론을 본다면 저연령 층에게는 귀엽고 인지하기 쉬운 만화체를 중심으로 나가지만 성장과 더불어 사회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독자들은 더 세밀한, 또는 사회현실과 어울리는 설정을 가진 캐릭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표현력이 수단이상으로 다양한 디테일을 가지게 되면서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만으로 말하기 어려운 과감하고 다양한 표시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또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시대의 만화가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기준이 되어가기도 합니다. 반면 너무 해외만화, 일본만화만을 보면서 자기 사고력을 키운 아이들은 그 정체성에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현실과 만화세상 안에서 생기는 괴리감을 느끼거나 (또는 느끼지 못하거나) 너무 복잡한 것보다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작품에서 가치를 찾기도 합니다.
의미도 없이 그냥 싸운다는 형태로 그려지는 작품들도 저연령층일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머리가 조금씩 똘똘해져가는 상황이 오면 다른 이해를 가지게 됩니다. 만화 하나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정보력과 이해구조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가기 때문이지요. 단,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영원한 꼬맹이는 아닙니다.
어른이 되어도 만화에 대한 감상을 순수한 즐거움으로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화는 소설을 비롯한 극작형태에 있어서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과정이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같은 스토리라고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의 어휘력구사에 따라, 연출하는 감독이나 배우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듯이 만화체 작품과 극화체 작품은 극적 연출이 다른 만큼 이해되는 감상이 다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