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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xul Story

로맨티스트와 현실주의자



전에 친구,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니아나 취미인들이 가지는 일상적인 취향은 로맨티스트인 경우가 많고 그 로맨티스트들의 상상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사실적인 현실주의자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현실에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 주변에서 보면 아무래도 상상력의 날개를 펼치는 과정을 많이 겪어가는 것이 바로 취미인들의 꿈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상상과 꿈, 이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노력을 어떤 형태로 받아들이는가? 에 대한 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의 중심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사람, 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요구조건을 바라는 경우가 있지만 현실과 이상이 언제나 꼭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만화나 소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라는 존재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존재로서 등장하고 그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주인공이 될거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라는 희망과 꿈을 펼쳐볼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꿈꾸는 이상이 원더풀~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도 합니다. (이것도 전인교육에 의한 이상적인 바람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전통있고 뼈대가 있는 집안 출신 사람도 몇몇 만나보면서 느낀 점도 있지만 학교 교육의 중요성과 더불어 가정환경교육이 가지는 중요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인격형성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으로 자신의 매력을 성장시켜나갈 수 있는 훌륭한 인격형성이라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교육이라는 것은 어떤 이상적인 인간을 만들기 위한, 부국강병으로서 입장을 더욱 강화시키는 형태로 인간을 만들어갔고 그런한 가운데 한국의 교육이라는 것은 알개모르게 극단적인 형태로 실용성이나 높은 능력을 가진 인간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교육이 아닌 전인교육(全人敎育 : 지적·정서적·신체적·사회적으로 조화롭고 균형잡힌 전일체로서의 인간을 육성하려는 교육)형태라는 새로운 장을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입신출세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 기반이나 그런 시대를 지양하는 부모를 만든 것이 바로 기존 교육이었고 그 성향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지금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신세대들도 알게모르게 관련 교육을 받았고 성장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확실히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공통된 목적을 가진 일을 하는 경우,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와 일을 통해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경우에 나온 이야기에서 낙천적인가 아닌가를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생활, 경험, 결혼과 미혼이라는 경계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취미적인 구분을 가질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은 확실히 인간의 느낌을 다른 형태로 규정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실제 전인교육을 받아서 등장한 신세대, 젊은 친구들이 신입이나 초보로 일에 참가하는 경우를 보면 선배나 담당자로서 이런저런 일과 함께 오랜시간 인생과 취미를 통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교육관련으로 일을 하는 취미인맥도 있어서 인간으로서 필요한 폭넓은 교양과 인격형성을 통하여 더욱 인간적인,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을 통한 교육을 받았지만 결국 가정에서는 기존 교육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과 마주하게 되면서 상당히 많은 혼란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인간에게 취미라는 생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인 기간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잘살고 못살고의 기준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꼭 인간문화의 기준을 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화, 정치, 사회, 취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있는 개성의 차이라는 형태로 좋다 싫다라는 기준이 제각기 다르게 작용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감성이라는 것이 완전하게 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100점이라는 감상기준을 만들어주는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면 볼 수록 역겨운 작품이라는 느낌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감상기준이 만드는 차이일 뿐이지 그것이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취미에 대한 감상기준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시선이 잇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끔 듣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본 적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군대라는 장소가 인생이나 성격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A였던 성격이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는 F라는 성격이 되서 나오는 경우지요. 솔직히 이런 경우는 강제적인 집단생활을 통하면서 생기는 문화적인 충돌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이 파괴되어서 전혀 다른 편협함을 기준으로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대부분 교육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생성된 인격의 변화에서 그런 면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적인 기준과 취미적인 기준의 변화가 꼭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되는데 그런 점을 보면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달리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