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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tory/Pop

모리타 도지 - 우리들의 실패 ぼくたちの失敗

고교교사(高校敎師) OST 미개봉 새제품
19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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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이나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굉장히 묘~한 비밀이 많아서 별도로 거론하기 어려운 가수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우선 이 가수는 그 정체나 본명, 그리고 활동기 이후의 모습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본명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예명으로 알려진 모리타 도지 : 森田 童子 (발음상 도우지에 가깝지만 여기서는 그냥 도지로 쓰고 있습니다) 19521월 생이라는 바이오그래피만 남아있었을 뿐, 그 황폐한 느낌을 가진 외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성(美聲)을 가지고 굉장히, 아주 굉장히 어두운 노래를 불러온 가수입니다.

 


 

이 가수의 활동기나 작품 구성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시대의 어두움을 굉장히 어두운 시조와 리듬으로 부른 가수이지만 워낙 아름다운 미성이기 때문에 마치 영원한 소녀가 부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하겠습니다.

도쿄 출신 싱어송 라이터라는 경력 때문에 나름 언더그라운드에서 빠르게 그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데 1970년대, 불안한 학생투쟁운동이 시대의 암운을 보여주고 있을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법 방황기 있는 생활을 하던 중 20살 때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프로필 전부입니다.

 

데뷔곡 중 하나가 안녕 나의 친구(さよならぼくのともだち)’인데 이곡을 가지고 1975년 데뷔와 함께 앨범 굿바이를 내놓았습니다. 다만 데뷔 후에도 쭈욱 라이브 하우스를 중심으로만 활동을 했고 1983년까지 앨범 7장에 싱글 4장을 내고 1983년 신주쿠에 유명한 라이브 하우스 신주쿠 로프트(新宿ロフト)에서 라이브를 선보인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그 모습을 전혀 보이지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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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고 하기도 좀 묘한 8년간 활동을 가진 것이 그녀의 전부이지만 그 가련하고 침울한 목소리에 매료된 팬들은 그녀의 세계관을 지지했고 아주 소수이지만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는 절대적인 팬들을 확보했다고 알려집니다.

다만 그녀의 우울하기 그지없는 가사와 분위기(큰 선글래스와 퍼머 머리, 그리고 결코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는 목소리로 여자인 것을 알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성별이나 나이 구분도 잘 안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실제 같이 녹음을 한 당시 일본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 중 최고였다고 알려진 이시카와 타카히코(石川鷹彦)도 레코딩 편곡과 연주를 맡았었지만 일상적인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녀의 생활 자체가 굉장한 미스터리였고 그 어두운 세계관을 공유하는 팬수도 많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탐색망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모리타가 방송, 기자들이 눈에 불을 키고 찾아도 결코 만나지 못한 이유라고 하겠지요. 그녀가 일본 전국에 그 미성과 암울한 가사, 그리고 슬프지만 호소력있는 매력을 알린 노래가 바로 이 노래 우리들의 실패입니다.

버블 경제가 붕괴되어 혼란스러운 일본의 시대상이 엮이면서 굉장히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겠지만 방송 당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고교교사(高校教師)’에 이 노래가 삽입되면서 그 음울한, 절망적으로 가늘고 힘겨운 듯한 아픔을 담담하게 불러 내린 이 노래는 바로 수많은 이들에게 꽂혔습니다.

, 물론 저도 두두두두 달려가서 음반을 구입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 그녀가 내놓은 음반은 구경하기도 힘든 녀석이었습니다. 간신히 드라마용 음반이 나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일반시장에서 그녀의 음반 자체를 구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당연하지만 유명 렌탈점이나 중고음반을 취급하는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환상이었지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LP녹음 시대에서 CD로 넘어오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음원 자체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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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가수의 목소리, 어쿠스틱 기타 정도로 녹음된 단출한 구성이었기 때문에 CD음반으로 나와도 그녀가 부른 투명하고 맑은 소리를 죽이지 않고 전달될 수 있었는데 드라마의 인기를 이끈 주역은 사실 이 음악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특히 드라마 진행이 굉장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그녀의 노래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데 전혀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고 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나중에 모리타 음악들이 가진 색깔을 되돌아보면 상처입기 쉬운 소년, 소녀들의 영혼이 말하고 싶은 지금 세상에 대한 아픔을 그렇게 청명하고 깔끔하고 담담하게 부른 모리타 도지의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일본 사회가 가치관의 혼동 때문에 죽음이라는 선택에 대해서 무자비 할 정도로 노출되어 갈 때 나온 드라마와 노래 한 곡은 그것만으로도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방송 뮤직저널에서도 긴급히 그녀의 특집을 구성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 엄청난 사회적인 주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코 방송이나 연예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학생운동말기였던 70년대 중반의 사람들은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정체성 혼란과 더불어 일본 자체가 패망 후 급격하게 불어온 경제 부흥 속에서 사회적 신념과는 다른 경제적 가치관을 논하게 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체의식과 더불어 자국에 대한 자부심, 애국심을 이용한 극명한 대립과 함께 결코 무너지지 않을 80년대의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상징성까지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90년대 초부터 삐꺽하더니 부동산시장 붕괴와 함께 경제, 은행권 몰락은 엄청나게 가정과 사회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환율은 널뛰고 정치권은 책임공방 때문에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면서 사회, 국민이 받게 된 엄청난 상실감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책임보다는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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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대에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낸 모리타 도지의 노래 한 곡은 그런 시대의 아픔을 마치 감싸 안아버리듯,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한 것처럼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암울한 곡이나 분위기를 부르는 것으로 알려진 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나 다카하시 요코(高橋洋子)의 장절함과는 또 다른, 그러나 그런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의 음반은 모리타 본인이 결코 자신이 메이저 음반계에 진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마이너한 팬층에게만 알려진 소수만의 문화였고 결코 메이저 방송관련에도 사용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된 것은 당시 각본가였던 노지마 신지(野島伸司 : 당시 저에게는 <101번째 프로포즈> 작가로 크게 다가온 작가였다고 하겠습니다)가 고등학교 동창생의 권유로 방문했던 라이브 하우스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게 되어 음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지마는 이후 카펜터스나 아바 같은 고전적인 선곡을 통해서 세상에 고전음악 붐을 일으키는 드라마 작품들을 선보였고 워낙 다양한 면을 가진 이색적인 드라마들을 선보였기 때문에 저도 그가 쓴 각본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을 두고 보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고 하겠습니다.

1993TV드라마가 큰 반향을 부르고 (방영당시 전 11화 평균 시청률 21.9% 마지막회 시청률은 33%였습니다) 그 안에 등장한 모리타의 노래는 우리들의 실패 외에도 4화 엔딩으로 등장한 남자인 주제에 울어주었다(のくせにいてくれた)’, 5화 엔딩곡으로 ‘G선상에 혼자(G線上にひとり)’, 7화 엔딩곡에 내가 너의 추억이 되어줄게(ぼくがになってあげよう)’, 8화 엔딩곡에 너와 쓸쓸한 바람이 되어(しいになる)’, 그리고 9화 엔딩곡으로 너는 변하고 말았네(わっちゃたネ)’가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극장판에서도 주제곡으로 모리타의 만일 내가 죽는다면(たとえばぼくがんだら)’이 사용되었는데 이런 점을 볼 때 작가 노지마는 그녀의 노래를 기반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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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결국 그녀는 베스트 음반이 발매되었고 이후 오리지널 앨범이 CD로 재발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그녀의 음반 3장이 공식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CD로 제작된 것이지요. 이로 인해 그녀는 과거의 절대적인 지지층 외에도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었지만 모리타는 그저 지금의 주부로서의 입장에 만족하고 음악활동을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업다는 공식발언만 남겼을 뿐 역시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2003년도판 고교교사가 새롭게 방송되고 다시 우리들의 실패가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근래에도 기억을 하는 이가 있게되었는데 이때 발매된 베스트 음반에서 일부 가사를 변경하여 녹음하는 일이 있어서 살짝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2010년도 5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의 취재에 따르면 여전히 음악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지금까지도 그녀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물씬 배어있는 이 노래는 제법 여러 번 다른 가수들에게 불렸다고 하지만 저로서는 역시 이 모리타 도지가 부른 원곡을 애정을 가지고 들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 드라마 작품의 큰 화제거리였던 엔딩에 대한 해석에 대한 수많은 팬들의 공론이 있었지만 1993년도에 나온 영화용 책자 고교교사 수첩(高校教師手帳)에서 원작가 노지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엔딩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다만 한마디 하고 싶다면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드라는 것, 둘의 생사는 작가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지막 화 타이틀이 <永遠りの>였고 주인공 하무라(羽村)의 꿈, 히로인 마유()의 손에 묶인 붉은 실에서 그들의 영원한 행복을 빌어보는 것이 팬의 입장이겠지만요.